안용호⁄ 2025.08.09 15:29:02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하 박물관)은 광복 80주년 기념 《화가의 해방일지》展을 2025년 8월 18일부터 10월 1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이자 화가인 도상봉·오세창·이상정·최덕휴 4인을 조명하는 전시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혼을 놓지 않으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저항했던 화가 4인의 이야기들을 익명의 일지로 재구성해 전달한다.
관람객들은 '어떤 화가의 일기'라는 익명의 텍스트들을 통해 당시 화가들의 고뇌와 의지를 체감하게 되고, 전시 밖을 나서기 전, 터치스크린을 통해 그 일기의 주인공들이 누구였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뜻깊은 감동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번 전시에 의도적으로 부여한 익명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을 숨겨야 했던 화가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개인의 이름보다 광복이라는 대의가 우선되었던 시대정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이육사, 김단야 등 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대의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듯이, 전시는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화가들을 익명으로 재구성하며, 개인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진정한 연대와 공동체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지역의 출신과 다른 생애를 살아오면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항일운동과 자신만의 화업을 전개해온 도상봉·오세창·이상정·최덕휴 4인을 선정하였다. 특히 오세창과 이상정은 1800년대 중후반, 도상봉과 최덕휴는 1900년대 초 각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오세창과 도상봉은 3.1운동, 이상정과 최덕휴는 중국에서의 항일투쟁을 펼치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부, ‘화가가 되기까지 : 식민지 미술교육의 현실’에서는 당시 한국화단의 역사적 흐름을 조망한다. 일기 텍스트와 인터뷰 영상을 통해 미술교육 현실을 조명하며, 소장 아카이브 『제1회 제국미술원 미술전람회원색화첩』(1919)부터 『이왕가미술관요람』(1941)까지 일제강점기 미술기관 자료를 소개한다. 아울러 1918년 우리나라 최초로 결성된 근대적 민간 미술단체인 서화협회의 『서화협회회보』 창간호(1921) 2호(1922)와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미술교과서 『정정 보통학교학도용 도화임본3』(1911) 등도 함께 전시한다.
2부, ‘근역 땅에 새긴 저항과 예술’에서는 익명의 화가 4인의 일기 텍스트와 유족 인터뷰 영상을 통해 독립운동과 예술활동 이야기들을 조명한다. 특히 박물관의 소장품인 <전서>(1942)와 영상 2점을 통해 해방 이전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어두운 시대상을 보여주는 신문기사 텍스트의 극명한 대비감을 통해 화가들의 고뇌와 의지를 체감할 수 있다.
3부, ‘붓끝의 행적 : 해방 전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에서는 대형 작품인 <서울시경>(1984, 경희대학교 소장)과 소장 아카이브를 통해 화가들의 해방 전후 예술활동과 행적을 조망한다. 전시 마지막에 터치스크린 존에서 익명의 화가 4인의 연보와 행적 등 관련 정보와 해설을 확인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도상봉(都相鳳, 1902-1977)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자 서양화가다.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주관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을 거부하며 독립적 예술활동을 펼쳤다. 조선 백자를 소재로 한 정물화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표현했으며, 1949년 국전 창설과 1958년 목우회 창립에 참여해 한국화단 발전에 기여했다.
"실행은 되지 않더라도 역사에 남기기 위하여 조선인도 민족자결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오세창, 경성지방법원 신문조서 중, 1919.4.9)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서울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다. 천도교에 입교한 후 항일언론지 『만세보』와 『대한민보』 사장을 역임하며 일진회에 대항했다. 한국 서화가를 집대성한 『근역서화징』(1928)을 저술했으며, 1918년 서화협회 창립에 참여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상형문자를 응용한 독창적인 전서와 예서 작품으로 독자적인 서풍을 확립했다.
이상정(李相定, 1896-1947)은 대구 출신 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로, 1921년 대구 최초 개인전인 《이상정양화개인전람회》를 개최하고 미술연구소 벽동사를 설립해 예술 보급에 힘썼다. 1925년 사회주의 독립운동 단체 용진단을 결성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일제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에서는 국민혁명군에 참여해 항일무장투쟁을 펼쳤으며, 망명 시기 『중국유기』와 전각 작품을 남겼다.
"나는 공직보다 나의 전공으로 돌아가 못다 한 미술창작 작업에 전념하는 길을 택하겠다." (최덕휴, 환국 선상에서, 1946)
최덕휴(崔德休, 1922-1998)는 충남 홍성 출신으로 동경제국미술학교 재학 중 1943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중국 전선에서 탈출해 중국군을 거쳐 광복군에 합류하며 항일투쟁을 펼친 독립운동가이자 서양화가이다.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며, 국제미술교육협회 한국위원회장을 역임하며 미술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1955년 설립된 백우회와 1958년 도상봉 등과 함께 창립한 목우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국내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졌고, 1980년대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담은 '서울풍경'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전시와 연계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존을 마련하였다. ‘화가의 책상에서 적는 나의 해방일지’라는 주제로 화가의 책상에 구비되어 있는 메모지에 익명의 저자로 자유롭게 글을 써서 전시장 벽면 태극기 문양에 부착할 수 있다. 전시 말미에 태극 문양의 형태가 갖춰지면서 화합된 장으로 형성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익명의 일지를 따라가며 화가-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고,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공동체 의식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