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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박형진 작가, 페이토 갤러리서 ‘오후 3시’를 맞이하다

신작 ‘마음의 정원’ 비롯해 ‘비터스위트’ 등 대표 시리즈도 아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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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25.10.29 09:31:01

페이토 갤러리 전시장 입구. 사진=김금영 기자

페이토 갤러리가 박형진 작가의 개인전 ‘오후 3시’를 다음달 22일까지 연다.

작가는 집과 정원에서 이어지는 삶의 루틴, 가족과 반려동물과 맺는 관계, 계절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유기적 관계에 주목하며 작업해 왔다. 즉, 작가의 작업은 그가 느끼는 매일의 감정과 미세한 감각을 기록하는 일기와도 같다.

실제로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이른 아침, 부지런한 새들 소리에 눈을 뜬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오늘의 공기를 확인 후, 하루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을 한다. 고양이들 아침 먹이를 주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간다. 산책길 중간에 위치한 부모님 댁에 들려 부모님 안부를 살피는 일은 몇 년 전부터 중요해진 아침 일과”라고 일상을 전했는데, 이 모습들이 화면에서 엿보인다.

박형진 작가의 신작 '마음의 정원'.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아이 ‘타이니키즈’를 통해 돌봄과 공존의 감정을 구체화해 눈길을 끈다. 또한 작가는 물감을 칠하고, 말리고, 닦아내는 행위를 축적하면서 이를 자신의 사적인 경험에만 두지 않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감각적 언어로 변환한다.

그런 작가가 이번엔 ‘오후 3시’전으로 돌아왔다. 오후 3시란 어떤 시간이고, 무슨 의미일까. 바로 작가, 그리고 우리네 삶과 연결된 시간이라는 이야기다. 1990년대부터 작업을 시작해 오랜 시간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작가는 몇 년 전 코로나19 시기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의 일상을 뒤바꿔 놓았고, 이때 작가에게 사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터져 하루를 버티는 게 일이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를 버티고 지나오자 마치 깊은 잠에 잠들었다가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박형진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현장에서 만난 작가는 “오후 3시는 보통 흔히들 낮잠을 자며 잠시 쉬다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사람의 일생을 약 80살이라고 봤을 때 이를 시간에 대입하면 지금 딱 내 나이인 50대가 오후 3시 즈음이더라”며 “낮잠을 자고 일어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다시금 심기일전할 시기, 오후 3시는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새 도전을 볼 수 있는 신작 ‘마음의 정원’ 시리즈를 비롯해 앞서 선보여온 ‘비터스위트(Bittersweet)’, ‘블루 그레이 드로잉(Blue gray drawing)’ 등 작가의 대표 시리즈도 함께 살필 수 있도록 구성하며 작가의 작업 일대기를 다룬다.

휴식 이후 보다 굳건해진 이야기들

박형진 작가의 작업엔 아이, 동물, 식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사진=김금영 기자

마음의 정원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함께 자라는 정원’을 꿈꾸게 하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작가의 작업에 등장해온 아이와 동물, 식물들이 정원을 가꾸던 존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정원과 일체화된 듯한 모습이다. 초록빛깔에 각자의 자리에 자리 잡은 이들 중 일부는 눈물을 흘려 슬퍼 보이기도, 아직 낮잠을 자는 듯 평온한 모습에서 고요한 정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기쁨과 슬픔 등 양면성이 공존하는 작가의 비터스위트 시리즈도 떠올리게 한다. 비터스위트는 말 그대로 쓴맛과 단맛이 공존하는, 즉 하나의 기쁨, 하나의 슬픔, 하나의 즐거움, 하나의 분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공존하는 ‘달콤쌉싸름한’ 우리네 인생사를 담은 시리즈다.

그래서 화면 속 인물, 동물, 식물들의 모습은 마냥 평온해 보이기도, 애처로워 보이지도, 불안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 달콤쌉싸름한 감정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그 존재하는 모습 자체가 축소나 과장 없이 바로 삶을 표현하고 있어 보는 이에게 작은 평화와 위로를 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모노톤으로 그려낸 '블루 그레이 드로잉' 연작. 사진=김금영 기자

또한 동물들과 함께하는 ‘낮잠’, ‘꽃 세 송이’, ‘단잠’, ‘허그 ’등의 작업은 모든 생명체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가족의 일원으로 서로 고독과 외로움,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큰 낙이 되고 의지가 되는 관계와 교감을 통해 희생과 사랑, 배려와 관계에 대한 작가적 성찰을 담고 있다.

기존 작가의 작업 스타일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심경을 모노톤으로 그려낸 블루 그레이 드로잉 연작도 눈길을 끈다. 알록달록한 색이 위주였던 작가의 화면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또 다른 드로잉의 힘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가 좋아하는 것, 인상 깊었던 그림책의 한 장면 등 사소하지만 소중한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순간들을 작은 캔버스에 차곡차곡 그린 삶의 퍼즐 조각과도 같은 드로잉 ‘스몰 피스 페인팅(Small Pieces Painting)’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페이토 갤러리 측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작품 속 도상은 단정해지고 색과 질감은 더 절제됐지만, 일상의 반복 속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변화, 돌봄이 남기는 흔적, 선과 손이 맞닿는 순간의 온기와 같은 것들은 캔버스 위에서 확장되며 현재형으로 지속 중”이라고 밝혔다.

박형진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에선 인생에서 오후 3시를 맞이한 작가의 특별한 감정들도 느껴진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캔버스를 세워 놓고 거친 붓질을 한다. 이젤을 눕혀놓고 물기 가득한 물감을 캔버스 위에 떨군 후, 말리고 닦고를 반복한다. 러프하게 그려놓은 형상들은 물감을 칠하거나 닦아내기를 반복하면서 점차 그 모양을 갖추게 된다”며 “원하는 모습의 형태와 원하는 만큼의 밀도가 나오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욱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라고 했다.

이어 “정오가 지나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느낌이다. 아침보다 조금 더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고 오후 활동을 위한 충분한 휴식도 필수다”라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오후 3시 이후 다가올 시간을 다시 달리기 위해 스스로를 보채기만 하지 않고, 휴식 이후 보다 굳건해진 작가의 마음과 의지가 이번 전시에서 평화롭게, 또 강하게 드러난다.

한편 작가는 중앙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1996년 도올아트타운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노화랑(2004), 자하미술관(2012), 스페이스 K 대구(2014),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어린이미술관(2025) 등 2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으며, 멍멍이, 야옹이, 너 그리고 나의 상상일상을 담은 동시 그림책 ‘너와 함께’(2020)와 반려동물, 가족, 환경, 작업 그리고 소소한 단상을 78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오랫동안 그려온 본인의 그림 81점을 함께 담은 책 ‘빅허그’(2020)를 출판하기도 했다. 작품은 부산시립미술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양평군립미술관, 북촌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 여러 기관에 소장돼 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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