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5.10.31 09:08:17
앞에 펼쳐진 스크린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연주를 들으니 지금 여기가 영화관인지, 공연장인지 묘했다. 그런데 그 묘함은 긍정적이었다.
LG아트센터 서울이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과 손잡고 ‘무성영화극장’을 28~30일 선보였다. 무성영화극장은 2020년부터 선보여온 피크닉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무성영화와 공연의 신선한 만남을 시도하는 장이다.
무대 위 스크린에 무성영화를 상영하고, 같은 무대 한켠 자리 잡은 뮤지션들이 실시간으로 직접 영화에 맞춰 연주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특히 뮤지션들이 영화를 보고 재해석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감상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무대가 된다.
올해 무성영화극장은 한층 확장된 규모, 구성으로 재탄생해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그간 무성영화극장에서 상영된 약 20편 영화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 네 편으로 ▲찰리 채플린의 ‘키드’ ▲버스터 키튼의 ‘셜록 2세’ ▲오즈 야스지로의 ‘태어나기는 했지만’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을 엄선해 선보였다.
이중 29일 전개된 버스터 키튼의 ‘셜록 2세’와 윤석철트리오 만남의 현장을 찾았다. 버스터 키튼은 1920년대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감독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기발한 몸짓을 펼치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셜록 2세는 영사기사 청년이 꿈속에서 명탐정이 돼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발한 연출이 특징이다.
이 영화에 피아니스트 윤석철을 중심으로 정상이(베이스), 김영진(드럼)으로 구성된 윤석철트리오가 함께했다. 이들은 정규 앨범 ‘그로우스(Growth)’(2009)로 데뷔 이후, ‘러브 이즈 어 송(Love is A Song)’, ‘즐겁게, 음악.’ 등 다수의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윤석철트리오는 EP ‘익숙하고 일정한’(2022)에서는 재즈와 국악의 접목, 정규 앨범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2024)에서는 재즈의 문턱을 낮춘 서정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등 항상 활기찬 그루브와 섬세한 감성, 유기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번에도 이들은 영화 속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면서도 역동적인 추격전, 범인을 추리하는 심리전 등에서는 실험적인 사운드로 스크린과 절묘한 호흡을 이뤘다.
개인적으로 과거 찰리 채플린의 ‘키드’를 통해 무성영화를 처음 접한 적이 있다. 배우들의 목소리 없이 영상만으로 이뤄졌음에도 몰입도가 있어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역시 영화와 더불어, 그것도 실시간으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시너지 효과가 확실했다. 셜록 2세 공연을 찾은 관객은 영화의 스토리에 집중하면서도 여기에 자연스럽게 호흡을 얹는 윤석철트리오의 음악을 통해 무성영화극장의 매력을 더 몸소 느끼고 접했다.
이는 최적의 음향 환경을 갖춘 LG아트센터 무대의 영향도 있었다. LG아트센터 무대는 다양한 연극, 뮤지컬, 클래식, 콘서트 공연 등을 선보이는 만큼 최첨단 음향, 조명 시스템을 갖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영화가 막을 내리자 윤석철트리오가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주는 시간도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윤석철은 이번 공연뿐 아니라 2020년에도 셜록 2세에 맞춰 음악을 연주한 바 있는데 “그때는 재미있겠다는 생각만으로 부담 없이 공연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섭외 요청을 받고, 걱정이 되더라”며 “이전 공연에서는 생각보다 영화가 오래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025년 시점에서 바라보니 셜록 2세가 1924년 작으로 100년이 넘었더라. 전통을 지닌 이 영화에 현대적인 음악이 동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하기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행히도 공연을 즐겨줘서 감사하다. 공연이 끝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말해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후 윤석철트리오는 오리지널 곡을 추가로 들려주며 공연에 여운을 남겼다.
한편 LG아트센터는 기획공연 브랜드 중 하나인 ‘크리에이터스 박스(CREATOR’S BOX)’의 일환으로 무성영화극장을 마련했다. 크리에이터스 박스는 2023년 시작된 LG아트센터의 기획공연 브랜드 중 하나로, 흥미로운 시각과 접근법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과 공연장이 함께 만드는 경계 없는 협업 프로그램이다.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블랙박스 공연장 U+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2023년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과 ‘로미오와 줄리엣 앤 모어(and more)’, 지난해 ‘P와 함께 춤을’을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며, 올해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과의 협업을 통해 관객 경험을 확장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