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화장품 비즈니스의 중심축은 이커머스와 온라인 마케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가격 비교가 쉬운 온라인 환경에서는 ‘효능’과 ‘가성비’ 중심의 기능 경쟁이 과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아모레퍼시픽은 본사와 오설록, 플래그십 스토어 등 오프라인 공간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며 ‘경험 경제’의 전략적 역설을 선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본사 사옥, 미술관, 플래그십 스토어, 헤리티지 공간을 통해 브랜드 세계관을 시각, 촉각과 정체성 경험으로 확장하며, K-뷰티 기업 중 유일하게 ‘건축, 예술, 공간’을 핵심 자산으로 전환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수많은 뷰티 브랜드 가운데 아모레퍼시픽 만의 독자성과 프리미엄 포지션을 공고히 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회사의 공간마케팅 전략은 단순한 체험 제공을 넘어 온라인이 담아내지 못하는 철학적 깊이와 미학적 가치를 소비자의 인지 속에 각인시키는 고도화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기업이 구축한 다양한 공간은 단순한 매장이나 전시관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미학·정체성을 소비자의 감각 구조 안으로 침투시키는 설계된 장치로 기능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이같은 공간을 통해 제품과 브랜드를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인식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브랜드 의미 구조를 재정의하고 있다.
본사 사옥, 기업 이미지의 물리적 선언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은 기업의 공간 전략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프로젝트다.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이 사옥은 단순한 업무 공간을 넘어 브랜드가 추구하는 ‘절제된 아름다움’과 ‘동양적 여백의 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거대한 오브제다. 정면에서 보면 커다란 정사각형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내부에는 중앙정원을 배치했다. 이는 아모레퍼시픽이 강조하는 동양적 균형감과 자연주의, 그리고 여백의 개념을 건축 구조로 번역한 장치다.
사옥 내부의 자연광 처리 방식, 수직적 비어 있음, 복도와 로비의 절제된 조명은 직원뿐 아니라 방문객에게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적 기준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이 공간은 기업의 미학적 기준을 외부에 보여주는 함축된 메시지이다. 대규모 광고보다 강력하고, 제품 설명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 기업은 아름다움에 대한 독자적 철학을 가진 회사”라는 정체성을 전달한다. 공간은 기능적 영역을 넘어 기업의 가치관을 물리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나아가 아모레퍼시픽의 공간 전략에서 미술관은 단순한 문화 공헌이 아니라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는 핵심 축이다. APMA(아모레퍼시픽미술관)는 전통 예술과 현대 예술을 동시에 전시하며 동양의 심미성과 서구 현대미술의 언어를 하나의 공간 안에 결합한다.
이는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정체성과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한국적 원료와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럭셔리 시장을 지향하는 브랜드 전략이 시각 예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도록 시각화한 셈이다.
미술관은 소비자에게 “아모레퍼시픽은 미적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이는 설화수와 헤라처럼 프리미엄 이미지가 중요한 브랜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예술 전시의 큐레이션 방식은 제품의 패키지·리테일 공간의 구조·메시지 톤까지 확장돼, 기업 전체의 ‘문화적 권위’를 강화하는 심층적 브랜딩 장치로 작동한다. 즉 미술관은 브랜드의 외연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브랜드의 깊이를 확장하는 도구인 것이다.
브랜드의 철학을 감각화하는 장치
이 밖에도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가장 중요하게 강화하고 있는 공간 유형은 ‘헤리티지·리추얼’ 기반 공간이다. 이 공간은 제품보다 브랜드의 뿌리와 철학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대표적으로 설화수의 헤리티지 공간은 한국적 원료, 장인정신, 발효 방식, 동양적 아름다움 같은 브랜드의 정수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공간 전체가 '제품이 나오기까지의 문화적 깊이'를 경험하게 설계돼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소비자에게 특정 감정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브랜드의 역사적 깊이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단순 화장품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로 기억하게 만든다. 또한 리추얼을 기반으로 한 설계는 소비자의 자아 이미지를 전환한다. ‘이 브랜드를 사용하는 나는 깊이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아 강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가격 저항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플래그십 스토어, 제품이 아닌 ‘경험을 구매하는 장소’로 진화
아모레퍼시픽 플래그십 스토어는 기존 화장품 매장이 제공하던 기능적 공간의 경계를 완전히 벗어난다. 단순 구매와 상담 중심 구조가 아니라 감각적 몰입을 기반으로 소비자의 심리적 체류 시간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공간들은 불필요한 그래픽 요소나 제품 정보의 과도한 시각적 자극을 배제한다. 대신 여백·조명·동선·향·소리의 조화를 통해 브랜드의 감각적 기조를 경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간 내부는 회사의 독자적 기술과 성분을 강조한 다양한 시도들을 담았다. 아모레성수에서는 사용자의 피부 톤에 꼭 맞는 파운데이션과 립을 만드는 '커스텀 뷰티 서비스', 정밀한 피부 분석을 바탕으로 나만의 에센스를 제조하는 '커스텀 미', 프로 아티스트로부터 메이크업 팁과 노하우를 배우는 '메이크업 터치업 서비스'와 '메이크업 클래스'까지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나만의 시간을 제공한다.
다만, 이 같은 회사의 공간마케팅 전략은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되며, 브랜드 가치의 확장성에서 한계를 부여하기도 한다.
젠틀몬스터와 아모레퍼시픽, 같은 ‘공간 브랜딩’ 다른 결말
젠틀몬스터가 파격적 예술성을 앞세워 세계 주요 도시에 침투한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적 철학과 깊은 서사를 전제로 한 공간 전략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양 시장에서는 느린 확장 속도를 보였다. 두 전략의 구조적 차이는 글로벌 소비자의 문화적 수용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두 기업은 공동적으로 매장, 갤러리, 플래그십 스토어, 아트 스페이스를 활용해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으로 전달해왔고, 그 결과 공간 자체가 브랜드를 설명하는 주요 자산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젠틀몬스터는 중국, 미국, 유럽 등에서 빠르게 확장하며 글로벌 매출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확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확장성을 기록해왔다. 이 차이는 제품 경쟁력이나 마케팅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에 투영된 철학의 보편성’이라는 근본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바로 젠틀몬스터는 보편적 언어를 사용했고, 아모레퍼시픽은 문화적 해석이 필요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두 전략은 각각 장점이 있지만 해외 확장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보편적 감각 언어'의 압승이었다.
글로벌 브랜드 확장성의 핵심 변수는 ‘미학의 보편성’
젠틀몬스터는 처음부터 공간을 실험적 설치 예술로 다뤘다. 매장마다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고,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설명하기보다 시각적 충격을 기반으로 한 감각적 몰입을 제공한다. 이 전략은 언어와 문화, 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외국인 방문객은 한 문장의 설명도 없이 “이 브랜드는 대담하고 미래적이며 쿨하다”는 인식을 형성한다. 즉 젠틀몬스터의 공간은 ‘보편적 미학’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국경을 넘어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반면 아모레퍼시픽의 공간은 구조적으로 문화적 학습이 필요하다. 설화수의 한옥 공간, 본사 사옥의 동양적 여백, 다례와 기원 의식에서 출발하는 서비스, 기업의 역사적 미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 등은 모두 한국적 맥락과 아시아적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공간들은 내부 구성원이나 한국 및 아시아 소비자에게는 깊은 감정적 울림을 주지만, 글로벌 소비자에게는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아름답지만 보편적 미학보다는 지역적 미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젠틀몬스터는 ‘즉각적 이해’를, 아모레퍼시픽은 ‘해석적 이해’를 기반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그리고 이 차이가 해외 확장성의 핵심 변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 밖에도 젠틀몬스터의 공간은 감각적 자극이 강하다. 매장 내 설치물은 현대 미술의 언어를 차용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복잡한 의미 해석 없이도 놀라움과 신기함, 이질감을 경험한다. 이는 관광 명소화 효과를 만들고 SNS 확산을 촉발하는 기능을 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젠틀몬스터를 단순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아니라 ‘체험하고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아트 플랫폼’으로 인식한다.
아모레퍼시픽의 공간은 심리적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공간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정체성, 전통, 기업의 철학’이며, 이는 소비자에게 자전적 기억과 문화적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울림이 생긴다. 예를 들어 설화수 북촌의 한옥 미학은 한국적 여백과 고유의 비례감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이해하려면 동양적 미적 체계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 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해외 소비자가 이를 마주할 때, 감정적 즉시 반응보다는 ‘예쁘다’ 수준에서 정체성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젠틀몬스터는 감각을 자극해 즉각적 정서를 만들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철학과 역사적 서사를 전달해 장기적 정체성을 만든다. 그러나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확장하기 위해서는 젠틀몬스터의 전략이 압도적인 효율을 갖는다.
젠틀몬스터 매장은 어디에 있어도 문화적 오해가 없다. 예술적 파편과 실험성이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동일한 의미를 발현시키며, 공간 자체가 독립적 콘텐츠가 된다. 이것이 젠틀몬스터가 해외에서 압도적인 수용성을 얻는 이유다.
반면 아모레퍼시픽의 공간은 한국적 가치와 아시아적 미학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특정 지역에서는 오히려 ‘배타적 경험’이 된다. 소비자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그 깊은 구조를 해석할 문화적 근거나 의도가 없다. 그 결과 브랜드 경험은 단편화되고, 제품 구매와 브랜드 충성도로 연결되는 효율은 한국 내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해외 확장을 위한 아모레퍼시픽 공간 전략 재설계 전략은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매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공간 전략의 ‘철학 중심 구조’를 ‘보편적 경험 중심 구조’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철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글로벌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미적 세계관은 깊고 아름답지만, 해외 소비자에게 언어적 설명없이 전달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건축, 다례, 전통 문양 등을 그대로 해외로 가져가기보다, 그 본질적 가치를 현대적 설치 예술 형태로 번역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옥의 여백과 균형은 빛, 공간, 음향을 활용한 글로벌 아트 스튜디오로 재해석될 수 있다.
이 전략은 젠틀몬스터처럼 감각적 충격을 기반으로 하되, 아모레퍼시픽만의 미학을 잃지 않는 방식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적 아름다움은 지역적 경험에서 보편적 예술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글로벌로 확장하는 K-뷰티 브랜드와 공고한 차이를 가르는 아모레퍼시픽의 강점은 첨단 연구 기반과 농원과 원료의 깊이에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이 한국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제한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 강점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이동형 원료 연구소 형태의 팝업을 주요 도시에서 운영하는 전략 등을 구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소비자가 미디어 아트, AR, 향, 텍스처를 통해 회사가 강점으로 갖는 화산암반수, 인삼, 녹차 등의 원료가 어떻게 변하고 피부에 어떤 유익을 제공하는지를 시각과 촉각으로 직접 체험하게 할 수 있다. 이 경험은 소비자의 자전적 기억을 형성하며 브랜드 충성도 형성에 동기로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이 밖에도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 ‘톤워크 바이미’, ‘AI 피부 진단’, ‘커스텀 에센스’처럼 개인화 서비스를 새로운 강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글로벌 매장에서 충분히 확장되지 못해 브랜드의 독자적 역량이 해외에서는 희미해진다.
따라서 해외 플래그십 매장의 필수 기능으로 AI 기반 개인화 진단 기술을 동일하게 탑재하고, 이를 현지 문화에 맞춘 내러티브로 재구성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전략은 소비자가 브랜드 경험을 “나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실현해주는 기술 플랫폼”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해외 시장에서의 구매 저항을 줄이고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이 향후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사의 깊고 우아한 철학을 유지하되, 그 철학을 ‘즉각적으로 이해 가능한 경험’으로 번역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글로벌 확장의 본질은 문화적 배타성을 줄이고 경험의 보편성을 높이는 것이다. 젠틀몬스터는 온라인 마케팅이 강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공간을 통한 글로벌 브랜드의 확장성을 이미 증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보유한 자원을 기반으로 제한된 구조를 넘어설 수 있다면, 한국적 미학 역시 지역적 브랜드를 넘어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