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를 통해 유통업계 오너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이에 따라 다가오는 2026년, 이들은 내수 시장 정체 속 글로벌 시장에서 부는 K푸드 열풍을 발판 삼아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농심 신상열·삼양식품 전병우
30대 젊은 감각으로 미래사업 이끌어
먼저 K라면 선봉장인 농심과 삼양식품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농심은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전무를 부사장으로, 삼양식품은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장남인 전병우 최고운영책임자(COO) 상무를 전무로 선임했다.
신 부사장과 전 전무는 30대 비슷한 나이다. 1993년생인 신 부사장은 미국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2019년 농심 경영기획팀으로 입사한 뒤 2021년 구매담당 상무를 거쳐 지난해 미래사업실 상무에 올랐다. 같은 해 말 전무로 선임된 데 이어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94년생인 전 전무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9년 25세의 나이로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입사하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1년 만에 자회사 삼양애니 대표이사로, 2023년 상무로 승진했다. 이들은 각각 입사 후 7년, 6년 만에 기업 내 중요한 자리에 올랐다.
비슷한 나이 외 글로벌 인지도 확장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신 부사장은 지난해 신설된 미래사업실을 이끌며 신사업 발굴, 글로벌 전략, 투자·M&A(인수합병) 등 농심의 미래 방향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특히 신 부사장은 농심이 추진하고 있는 ‘비전 2030’ 프로젝트의 핵심인 해외 사업 확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매출 7조 3000억 원, 영업이익률 10%, 해외 비중 61% 달성을 목표로 한다.
전 전무는 올해 ‘불닭’ 브랜드 글로벌 프로젝트와 해외사업 확장을 총괄해 온 실적을 인정받아 전무 자리에 올랐다. 특히 중국 자싱공장 설립을 주도해 해외사업의 성장 동력을 마련했으며, 코첼라 등 불닭 브랜드 글로벌 마케팅과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해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또한 신규 브랜드 ‘맵탱’ 기획에도 참여해 제품군을 확장해 왔다.
이들은 30대 젊은 감각을 기반으로, 미래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다. 농심은 사업 체질 개선을 통해 기존의 ‘라면’ 중심에서 벗어나 ‘스낵’을 제2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을 넘어 멕시코·브라질·인도·영국 등 7대 글로벌 핵심 국가를 중심으로 투자·M&A·전략적 제휴를 검토 중이다. 이와 같은 글로벌 확장 전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신 부사장이 이끄는 미래사업실이 맡았다. 신 부사장이 승진하면서, 스마트팜·건강기능식품 등 신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 전무에겐 글로벌 흥행이 입증된 불닭 브랜드에 이어 제2의 대표작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 일환으로 최근 삼양삭품은 ‘삼양1963’을 내놓기도 했다. 과거 ‘삼양라면’ 제조 레시피의 핵심이었던 우지를 활용해 선보인 프리미엄 미식 라면으로, 이를 통해 침체된 내수 시장을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단백질·헬스케어 신사업을 추진하는 등 글로벌 식품기업으로서 체질 전환에 힘쓰고 있다.
CJ 이선호·SPC 허진수·허희수
미래 먹거리 발굴 과제
CJ그룹도 오너 3세 이선호 미래기획실장을 그룹장에 선임하며 미래 준비 강화를 위한 영(young) 리더 발탁을 강화했다.
이 그룹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1990년생이며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금융 경제학을 전공했다. 2013년 CJ그룹 공채로 CJ제일제당에 입사해 사업 관리, 전략 기획, M&A 등 다양한 부서를 거쳤다. 2022년 10월 식품성장추진실장을 지내다가 올해 9월 지주사인 CJ로 6년 만에 복귀했다.
이 그룹장은 CJ제일제당에서 ‘비비고’와 ‘슈완스’를 중심으로 글로벌 식품 사업 확장을 주도해왔다. 특히 미국 냉동식품회사 슈완스 인수 후 통합 작업을 주도한 점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이로 인해 CJ제일제당 글로벌 매출은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CJ제일제당의 식품 사업 내 해외 매출 비중은 지난해 전체 52%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 밖에 이 그룹장은 사내벤처·혁신조직 육성을 비롯해 K푸드의 세계화를 위한 퀴진K 기획 등의 성과를 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서는 미래기획그룹장까지 겸임하며 경영 보폭을 넓히게 됐다. 미래기획그룹은 기존 미래기획실과 디지털전환(DT) 추진실을 담당하는 상위 조직으로 분류되며, 미래 신사업 확대 역할을 맡았다.
대표적으로 CJ제일제당의 냉동식품 자회사인 슈완스는 사우스다코타주에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 공장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비고 만두의 글로벌 입지를 더 공고히 굳힌다는 계획이다. K푸드의 불모지였던 유럽에서도 헝가리에 건설 중인 K푸드 신공장을 교두보로 비비고 로드를 넓혀가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CJ가 미래 먹거리로 키워온 바이오 사업도 고부가 소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전망이다.
30대는 아니지만, SPC그룹도 오너 3세를 핵심 요직에 전진 배치했다. SPC그룹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차남 허희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시켰다.
1977년생인 허진수 부회장은 파리크라상 최고전략책임자(CSO)와 글로벌BU장으로 파리바게뜨 글로벌 사업을 총괄해 왔으며, 올해 7월 출범한 ‘SPC 변화와 혁신 추진단’ 의장도 맡고 있다. 1978년인 허희수 사장은 비알코리아의 최고비전책임자(CVO)로서 배스킨라빈스, 던킨 등의 혁신을 비롯해, 글로벌 브랜드 도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신사업 추진도 이끌어 왔다. 쉐이크쉑·에그슬럿 등 해외 브랜드의 국내 안착도 그의 작품이다. 최근엔 미국 멕시칸푸드 브랜드 ‘치폴레’를 국내와 싱가포르에 도입하는 성과를 냈다.
이들은 앞으로도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한 미래 사업 발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허진수는 그룹 부회장으로 사업 전반 운영과 제빵을, 차남 허희수 사장은 비알코리아 사장을 맡으며 파리바게뜨와 던킨·배스킨라빈스 사업 확장과 재정비를 총괄한다. 더 나아가 허 부회장은 ‘글로벌’과 ‘체질개선’, 허 사장은 ‘혁신’, ‘디지털 전환’을 중심 키워드로 글로벌 확장과 브랜드 혁신을 병행하는 투트랙 성장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포착된다. 북미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해 온 파리바게뜨는 최근 영국 런던에 ‘웨스트필드점’을 열며 글로벌 700호 점 돌파 소식을 전했다. 또한 충청북도 음성군에 AI와 자동화 로봇, IoT(사물인터넷) 센서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혁신 생산시설 ‘안전 스마트 신공장’ 건립 소식도 전했다. 신공장은 내년 착공해 오는 2028년 준공이 목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내수 시장의 오랜 침체 속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으며 브랜드 파워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경쟁 무대는 이제 세계 시장”이라며 “단순 승계뿐 아니라 글로벌 경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오너 3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내년엔 이들을 중심으로 글로벌 마케팅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