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 2025.12.24 10:55:18
2025년 12월 13일 카카오게임즈가 핵앤슬래시 장르 대표 게임 ‘패스 오브 엑자일 2(Path of Exile 2, 이하 POE2)’의 네번째 대규모 업데이트 ‘최후의 드루이드(The Last of the Druids)’를 선보였다. 얼리액세스 출시 이후 약 1년이 지난 시점에 공개된 이번 업데이트는 ‘드루이드’라는 새 클래스와 신규 시즌 콘텐츠 ‘바알의 운명’이 추가돼 게이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곰, 늑대 변신에 ‘와이번’도 추가
이번 업데이트의 핵심이자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신규 직업 ‘드루이드’다. 드루이드라 하면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디아블로 시리즈’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했던 동명의 클래스를 떠올리게 된다. 늑대나 곰 등의 야수로 변신이 가능하고, 야수나 나무, 덩굴 등 자연계의 여러 존재들을 소환수로 부리며, 지진, 벼락, 돌풍 등 자연계 마법을 사용하는 자연친화적 하이브리드 클래스다.
POE2의 드루이드 역시 야수 변신과 자연계 마법을 사용하지만, 선행 게임의 드루이드들과는 조금 다르다. ‘동물 부적(Animal Talisman)’이라는 신규 무기를 이용해 인간 형태와 동물 형태(늑대, 곰, 와이번)로 빠른 변신이 가능한데, 인간 형태에서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다양한 자연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늑대 형태에서는 빠른 기동성과 냉기 공격, 소환수 동료를 활용한 근접 전투가 가능하며, 곰 형태에서는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며 화염 속성의 묵직한 한 방 공격력을 보여준다.
기존 드루이드와 가장 두드러진 차별 포인트는 ‘와이번 변신’이다. 다른 드루이드들이 대개 곰, 늑대 변신만 가능했던 것과 달리 POE2의 드루이드는 용(드래곤)의 아종으로 거대한 날개를 가진 와이번으로 변신이 가능한 것. 와이번 변신은 지면 공격 뿐 아니라 비행도 가능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지상과 공중을 오가며 번개 폭발을 일으키거나 화염 브레스를 쏟아붓는 강력한 원거리·광역 공격이 가능하며, 특히 주변의 시체를 섭취해 강력한 권능 충전을 얻는 ‘포식’ 스킬도 제공한다.
변신을 활용하는 방식도 조금 다르다. 기존 드루이드가 변신을 하나의 독립된 상태로 취급했다면, POE2의 드루이드는 변신을 일종의 스킬 콤보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인간 상태에서 ‘화산’ 주문을 바닥에 깔아둔 뒤, 곰 스킬을 시전하면 바로 곰으로 변신, 적을 화산 중심부로 밀어넣고 때리는 식의 연계 플레이가 가능하다. 스킬 콤보를 활용한 즉각적인 태세 전환은 전투의 다양성을 넓히며 템포를 비약적으로 높히는 효과가 있다.
기자는 드루이드 클래스를 생성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해봤는데, 각각의 변신 형태가 모두 차별화된 재미를 제공해 어떤 변신을 주로 사용할지 선택이 쉽지 않았다. 일단 레벨링 단계에서는 곰 변신이 유리하다는 커뮤니티의 의견을 참조, 곰 위주로 캐릭터를 성장시켰지만, 와이번과 늑대 스킬을 사용해도 레벨링이 느려지는 일은 없었다. 각 캐릭터의 스킬을 적절히 조합하면,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상황에 맞는 공격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앗지리 여왕의 재림… ‘바알의 운명’ 리그
이번 업데이트의 리그 콘텐츠는 ‘바알의 운명(Fate of the Vaal)’ 리그다. 과거 POE 시절 ‘기습(Incursion)’ 리그과 유사한 시스템으로, 게이머는 필드 사냥을 통해 ‘등대’를 발견해 사원의 방을 추가하거나 연결, 최종 보스 ‘앗지리 여왕’에게 도전할 수 있다.
POE 게이머라면 익숙할 ‘바알 사원’에는 다양한 함정과 특이한 기믹이 준비됐다. 특히 이전에도 인기있던 ‘타락’ 시스템이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이를테면, ‘희생의 제단’ 방을 3단계 업그레이드하면 만들어지는 ‘봉헌의 정점’ 방의 경우 ‘바알 함양 오브’라는 새로운 화폐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마석학자의 실험실’ 방을 3단계 업그레이드한 방에서는 ‘이중 타락(더블 커럽)’된 스킬 젬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런 류의 아이템들은 대부분 높은 가치를 갖는다.
‘타락’과 ‘이중 타락’은 아이템을 아주 좋은 성능으로 바꿔줄 수도 있지만, 한 순간에 고급 아이템을 날려버릴 수도 있어서 ‘한 방’을 노리는 게이머들에게 적합하다. 반면, 아이템 파밍에 집중하고 싶다면, 고유 아이템, 혈통 젬, 특수 룬, 화폐 등 다양한 보상을 주는 방들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기존 POE 게이머로서 약간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였다.
드루이드 액션은 합격점…엔드게임 피로는 여전
짧은 시간의 플레이로 이번 업데이트의 전모를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기존 0.2, 0.3 업데이트 때보다는 확실히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업데이트였다. 특히 드루이드의 변신 애니메이션이 매끄러웠으며, 각 변신 형태마다 고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제공해 전투의 몰입감이 높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업데이트 당일의 서버 접속 문제는 이번에도 피하지 못했지만, 다음날부터는 안정적인 접속이 가능했고, 플레이 도중 튕기는 문제도 이전 업데이트들과 비교하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이 역시 개발사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GGG)가 게임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게이머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많은 유저들이 “드루이드의 콤보 시스템은 ARPG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지나치게 넓은 맵, 강력한 몬스터 패턴 때문에 렙업이 쉽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게이머들도 많다. 또, “와이번 변신이 지나치게 강력해 빌드가 획일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체적으로 신규 유입자나 캐주얼 게이머의 만족도는 높은 편으로 보인다. 신규 클래스 ‘드루이드’의 차별화된 손맛과 기존 업데이트에 비해 낮아진 난이도가 이들이 만족하는 주요 포인트다. 스팀 리뷰를 살펴보면, 최근 30일 리뷰의 86%가 ‘긍정(Very Positive)’ 의견이다.
반면,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아틀라스 매핑, 바알 사원 등 엔드게임 단계의 주요 콘텐츠들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에 비해 보상은 부족하다는 점, 레벨업 시간이 길어 부캐를 키우기 부담된다는 점 등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총평하자면, 이번 ‘최후의 드루이드’ 업데이트는 드루이드 클래스의 리뉴얼에는 성공했지만, 이전부터 지적됐던 엔드게임 완성도 문제, 캐주얼 게이머와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각기 다른 눈높이를 어떻게 만족시킬지 등의 과제는 여전히 풀지 못했다. 다음 업데이트에서는 GGG가 미구현된 클래스들을 드루이드 수준으로 공개하고, 엔드게임 콘텐츠의 재설계까지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