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영국 원자력 시설 해체 현장에서 고위험 작업을 수행하며 산업 현장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영국 원자력 시설 해체 당국(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 산하 공기업 셀라필드(Sellafield Ltd)는 최근 자사 핵시설 해체 현장에 스팟을 활용한 로봇 기반 점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셀라필드는 영국 내 원자력 시설 해체와 방사성 폐기물 관리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으로, 방사선 영향과 복잡한 내부 구조로 인해 작업자 안전 확보가 가장 큰 과제로 꼽혀왔다.
셀라필드는 사람이 직접 진입하기 어려운 고위험 구역에서 스팟을 활용해 데이터 수집과 원격 점검을 수행하고 있다. 현장에 투입된 스팟은 방사선 환경에 맞춰 다양한 감지 센서를 장착했으며, 계단과 거친 지형을 포함한 복잡한 구조물 내부에서도 안정적인 이동이 가능하다. 360도 영상 촬영과 3D 라이다 스캐닝을 통해 시설 구조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관리자는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으로 원격에서 현장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스팟은 감마선과 알파선을 측정해 방사선 물질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방사선 특성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시설 내 방사선 오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료 채취 시험에도 성공했다. 기존에는 작업자가 직접 수행해야 했던 작업으로, 스팟 도입 이후 작업자의 방사선 노출 위험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 셀라필드 측 설명이다.
스팟은 사람보다 오랜 시간 현장에 머물며 점검을 지속할 수 있어, 해체 작업 전반의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다. 개인 보호 장비 사용 감소로 인한 폐기물 저감 효과와 함께, 고품질 실시간 데이터 확보를 통해 의사결정 속도 역시 개선됐다는 평가다. 반복적이고 일관된 검사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운영 효율성도 높아졌다.
셀라필드는 이번 사례가 보스턴다이나믹스를 비롯해 현장 맞춤형 로봇 솔루션 기업, 시스템 통합 전문 기업, 영국 로봇·인공지능 협업 조직인 RAICo 간 협력을 통해 추진됐다고 밝혔다. 2021년 스팟 시험 운영을 시작으로 2022년과 2023년에는 복잡한 환경에서의 운용 가능성을 검증했고, 2024년에는 고위험 방사능 구역에서 실제 점검 작업에 활용했다. 2025년에는 영국 원자력 분야 최초로 발전소 허가 구역 외부에서 스팟 원격 시연을 성공시키며 완전 원격 작업 가능성도 확인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 역시 셀라필드의 스팟 기반 시료 채취 시험을 보도하며, 작업자가 위험 구역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오염 시료를 채취하고 방사선 수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셀라필드 관계자는 “스팟은 위험한 구역에 민첩하게 진입할 수 있고, 조작자가 이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며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시설 해체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비롯해 스팟과 스트레치 등을 선보이며,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하고 인간은 감독과 창의성에 집중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이미 스팟은 에너지, 철강, 식품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 투입돼 감지, 검사, 순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열린 ‘휴머노이드 테크콘’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 프로덕트 세이프티 부문 총괄 페데리코 비첸티니는 “스팟은 전 세계 다양한 산업 현장에 배치돼 설비 이상을 사전에 감지함으로써 고객의 재무적 손실을 예방하는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 생산 라인에서는 스팟이 설비 고장 부위를 촬영해 관리자에게 전달했고, 이를 통해 대규모 손실을 막은 사례도 소개됐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스팟은 포스코를 비롯해 호주 우드사이드 에너지, 글로벌 식품 기업 카길 등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위험하거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로봇이 현장을 대신 누비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산업 현장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경제 김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