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6.03.09 17:35:45
IBK기업은행이 ‘총자산 500조 원’이라는 지표를 달성하며 장민영 신임 은행장 체제의 막을 올렸다. 내부 출신인 장 행장은 취임과 동시에 ‘생산적 금융’으로의 체질 개선을 선언하며 파격적인 인사와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 지표 이면에 자리 잡은 노사 갈등과 국책은행으로서의 가치 제고라는 해묵은 과제는 그가 풀어야 할 핵심 숙제로 꼽힌다.
기업은행은 2025년 말 연결 기준 전년 대비 2.4% 증가한 당기순이익 2조 7189억 원을 기록하며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주목할 지표는 총자산이다. 전년 대비 6% 증가한 500.7조 원을 기록하며 국내 강소기업 지원의 ‘병참기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자산 확대 과정에서도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을 1.28%로 낮추는 등 건전성 관리에서 긍정적 성과를 나타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8.4% 소폭 감소했으나, 이는 조달 비용을 선제적으로 통제하고 비이자이익 구조를 다각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37년 IBK 외길’ 장민영 행장의 발탁 배경
장 행장은 조준희, 권선주, 김도진, 김성태 행장에 이어 기업은행 역사상 다섯 번째 내부 출신 행장이다. 특히 장 행장은 37년간 자금운용, 리스크관리 등 핵심 요직을 거친 ‘전략통’이다.
장 행장의 발탁은 금융권에서 ‘안정과 혁신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 이른바 ‘관치(官治)’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혼란을 겪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 인사는 내부 사정에 정통하면서도 경영 능력을 입증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조직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내부 구성원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6년 1월 임명 당시 금융위원회가 그를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이끌 적임자”라고 치켜세운 것은, 단순히 연공서열에 따른 인사가 아니라 그가 보유한 ‘현장 장악력’과 ‘정책 이해도’를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장 행장의 진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위기 상황에서 드러났다. 당시 리스크관리그룹장(부행장)을 맡았던 그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 금융의 최전선에 있었다. 자칫 은행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스크 통제 감각을 발휘해 은행의 재무 구조를 안정적으로 방어했다. 이러한 성과는 그를 ‘시장 흐름을 읽는 눈과 통제력을 겸비한 전문가’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행장 취임 직전 맡았던 IBK자산운용 대표 시절의 성과는 그를 ‘검증된 경영자’의 반열에 올렸다. 그는 자본시장 특성에 맞춰 보상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성과 중심의 문화를 정착시켜 이직률을 급감시켰다. 그 결과, 2025년 당기순이익 106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2023년 말 대비 69.5% 성장한 수치로, 행장 후보로서 우수한 경영 성과를 보여주었다는 분석이다.
장 행장은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학구파 CEO’로 통한다. 그는 바쁜 업무 중에도 방송통신대에 편입해 법학(2020년)과 통계데이터학(2024년) 학위를 취득했다. 이는 금융업의 본질인 ‘법률적 판단’과 미래 생존 전략인 ‘데이터 분석 능력’을 동시에 갖추기 위한 선제적 노력이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취임사에서 강조한 ‘AI 기반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이 단순한 구호가 아닌, 준비된 전략임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현장’과 ‘경청’으로 요약된다. 보여주기식 성과보다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업무 추진으로 “현장을 이해하는 리더”라는 신망을 얻고 있다. 이러한 평판은 취임 초기 노사 갈등 국면에서도 그가 “현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명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전략가’ 장민영의 승부수, ‘30-300 프로젝트’
신임 행장으로서 그의 경영 철학은 취임 일성인 ‘생산적 금융 대전환’에 집약돼 있다. 2030년까지 미래 신산업에 300조 원을 투입하는 ‘30-300 프로젝트’는 단순히 대출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벤처 투자와 펀드 조성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직접 육성하겠다는 ‘모험 자본’ 성격이 짙다. 이는 은행을 단순 자금 공급원에서 산업 육성 파트너로 격상시키겠다는 장 행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기업은행이 지난 1월 13일 금융위원회 소속 공공기관 합동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30-300 프로젝트’는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혁신을 지향한다. 2030년까지 투입될 300조 원은 첨단·혁신산업, 창업·벤처기업, 지방 소재 중소기업 등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을 뚫는 데 집중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종합 지원 패키지’다. 기업은행은 단순 유동성 공급에 그치지 않고 ▲모험자본 투자 확대 ▲경영 컨설팅 ▲디지털 전환(DX) 지원 등 비금융 서비스까지 결합한다. 이는 자금난뿐만 아니라 기술 및 경영 노하우 부족으로 성장에 한계를 느끼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는 전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생산적 분야 금융 대전환 정책에 맞춰,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비금융 영역까지 확대한 실전 로드맵”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공격적 투자는 기업의 재무 구조가 뒷받침되고 있다. 지난해 은행의 매출액은 다소 감소했으나 조달 비용 감축과 비이자이익 개선을 통해 연결 기준 2조 7,189억 원 규모의 순이익을 지켜냈다. 특히 은행 기준 총자산이 500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기초 체력을 확보했다는 점과 중소기업 대출 시장 점유율 24.4%라는 지표 역시 ‘30-300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다.
이 밖에도 지난 27일 단행된 2026년 상반기 인사는 장 행장의 혁신 의지를 보여주는 가늠자였다. 신임 윤인지·오정순 부행장을 포함해 여성 부행장을 4명까지 늘린 것은 창립 이래 최대 규모다.
특히 IT 전문가인 윤인지 부행장에게 AI 대전환의 지휘봉을 맡긴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장 행장은 방대한 기업 데이터를 AI와 결합해 대출 심사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을 현실화하고 있다. 또한, 영업 현장의 성과자들을 본부장으로 대거 발탁하며 “답은 현장에 있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명확히 했다.
35년 IT 전문가인 윤 부행장을 통해 ‘AI 대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영업 일선의 성과자만을 골라 본부장으로 발탁 승진시킨 것은 “현장의 성과가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조직에 심어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사 갈등 봉합과 주가 부양… 리더십 시험대
그러나 장 행장 앞에는 가시밭길도 놓여 있다. 우선 노사 갈등이 최대 복병이다. 약 78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시간외수당 미지급분 분쟁은 단순한 임금 문제를 넘어 국책은행의 ‘총액인건비 제도’라는 해묵은 규제와 맞물려 있다. 내부 출신 행장으로서 조직의 안정을 꾀해야 하는 장 행장에게 노조와의 화합은 ‘생산적 금융’의 성공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주가 관리 역시 아픈 손가락이다. 기획재정부가 대주주인 국책은행 특성상 민간 금융지주처럼 공격적인 자사주 소각이나 분기 배당 확대가 어렵다. 민간 은행과 같은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쓰기 어렵다는 점은 주가 흐름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신한투자증권 등 시장 전문가들은 “기업은행의 배당 수익률은 안정적이나, 정책 금융 수행에 따른 자본 활용 제한으로 주가 상승 모멘텀이 민간 은행 대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정책금융 수행이라는 공공성과 시장의 기대라는 수익성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장민영호(號) 기업은행은 재무적 안정성과 조직 쇄신이라는 초기 동력은 확보했다. 하지만 내부의 노사 갈등을 매끄럽게 봉합하고, AI 기반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실제 수익성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준비된 전략가’ 장 행장의 진정한 실력을 판가름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300조 원의 거대 자금 투입과 AI 기반의 조직 혁신이 실제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