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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사라진 죽음 “이제는 진실을 말하라”

군대내 자살사건,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유족들 아픔 치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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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호 ⁄ 2007.07.03 14:42:11

최근 우리 사회는 자살을 한 개인의 문제로만 떠넘겼던 과거와 달리 ‘시스템에 의한 살해’라는 사회책임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나 군 당국은 물론 사회 일각에서 조차 군내 자살처리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군 병력 손실이나 군 질서 문란행위로 보는 차가운 시각은 여전한 것. 그러나 군 자살처리사건은 군대가 갖고 있는 특유의 경직된 구조와 비밀주의로 인해 숱한 의혹과 함께 유족들로부터 군과 국가를 향한 불신과 분노를 사고 있다. ■‘타살’을 ‘자살’로… 의혹 속에 묻힌 아들의 죽음 김정숙(가명,58)씨는 2004년 10월 17일에 자신의 아들 강도훈(가명, 당시 21세)씨가 경기도 의정부 모 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도중 부대 근처 공사장에서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대한 지 넉 달도 안 된 아들의 죽음 앞에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유족들은 직접 사고 현장을 찾고 같이 군 복무 중이었던 사병들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추락사를 위장한 타살’이라는 의혹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머니 김씨에 따르면, 망자는 사령관 차량을 모는 운전병으로 일하면서 몇몇 장교 등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실제로 남들보다 휴가를 일찍 받기도 했다. 이를 시기했던 한 선임병은 평소 망자에게 ‘너 무슨 빽으로 들어왔냐’고 하곤했으며, 망자가 사망한 날 오전엔 함께 부대 내 식당 청소를 했다. 당연히 유족들은 이 선임병의 구타에 의한 사망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군은 추락사로 변사처리했다. 유족들은 “옥상에서 이 부대의 한 지휘관의 지문까지 나왔고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 당일 당직이었던 장교가 진급을 불과 한 달 앞둔 상황이라 유족들은 구타에 의한 타살을 추락사로 위장한 것이라는 의혹을 떨쳐내지 못 하고 있다. 어머니 김씨는 애지중지 하던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2년째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살고 있다. 최근엔 환청까지 듣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마저 겪고 있다. 어머니는 “우리 애기를 이 땅에서 난 것이 너무 미안할 뿐이다”면서 “진실을 알아야 용서를 하던지 처벌을 원하던지 할 것 아니냐”며 원통해했다. 그녀는 목이 메인 채로 “우리 아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밝혀져야 다른 ‘애기’들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 아닌가요”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경우처럼 상당수 유족들은 군내 자살처리사건이 부대 지휘관의 진급평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축소·은폐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직접 조사를 하는 헌병이나 군검찰 역시 군에 속해 있어, 군의 지휘 감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점도 유족들이 수사 결과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물음표를 둘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신속히 처리되는 군내 자살사건 처리과정도 유족들의 의혹을 증폭시킨다. 국방부 ‘전사상자처리규정’은 초동수사를 담당하는 헌병이 24시간 안에 사망원인을 소속 부대장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또 48시간 안에는 사망원인 및 사망구분에 대한 소견이 담긴 사망확인조서를 작성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촉박한 조사시간은 최초수사의 잠정적 결론이 군 조직문화의 경직성 등의 이유로 최종결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점과 합쳐진다. 결국 군이 발표하는 수사내용에 대해 유족들은 불신할 수 밖에 없는 것. ■ 고통의 세월을 안고 세상 떠나기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난 유족도 있다. 고 김순영(가명)씨는 1972년 강원도에서 폭발물 사고로 사망 처리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가슴에 간직한 채 올해 4월 3일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사건 당시 군은 폭발물사고라고 유족들에게 알렸지만 정작 유족들은 시신조차 보지 못한 채 군의 권유로 망자를 화장했다. ‘국가유공가자가 될 수 있도록 하고 국립묘지에 안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군 관계자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지만 나중에 변사처리되었다. 어머니는 이 일을 평생 후회하며 살았다. 망자의 누나 고영희(가명)씨는 “매일 매일이 초상집이었고 웃는 것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끝내 아들의 죽음의 진상을 알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어머니는 “내가 대한민국에 기만당하고 산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올해 11월까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203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군내 자살처리사건의 시체처리는 화장 후 산 또는 강에서 산골하는 경우가 31%로 가장 많았다.

현장보존이 안 된 경우도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70~80%를 넘고 2000년대에도 53.2%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장소도 2000년대 들어 50%로 증가했지만 1950년대의 경우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초동수사를 위한 현장보존의 중요성은 상식이지만 군내 자살처리사건 방식은 이런 상식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같은 숱한 의혹으로 가득한 군내 자살처리사건은 유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만다. 실제로 군의문사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군의문사위 진정인 가운데 4명 중 1명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2명 중 1명은 불면증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가운데 2명은 고혈압·심장병 등 지병이 악화됐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 유족들도 2.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은 “갑작스런 죽음에 당황해 마음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절차대로 부검과 화장을 해버린 유족은 장례식 후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며 “유족이 겪는 고통들이 만성화로 진행되지 않기 위한 사후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고민이나 대책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군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 유족에 떠넘겨졌던 입증 책임 김정자(가명,72)씨는 1988년 4월 21일 당시 수도방위사령부에 군 복무 중이던 아들 김영철(가명, 당시 20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나무에 목을 매달아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고 실신하고 말았다. 김씨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88년 1월에 군에 입대했다. 군 입대 3개월만에 들은 막내 아들의 죽음에 어머니 김씨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군에 가기 전에 착실하게 성당을 다닌 ‘우리 애기’가 자살할 애는 아니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넋을 잃었고, 유족들은 3년만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소송을 진행했지만 대법원까지 가는 오랜 세월의 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유족들이 직접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입증해야 했던 현실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과 같이 군 복무를 했던 동료 병사들과 수차례 면회했다. 결국 한 사병은 어머니에게 망자가 ‘구타로 괴로워했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증인이 되어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겁에 질린 동료들은 ‘무서워요, 우리도 죽어요’라며 증인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씨의 사례를 보면 현행 법상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증거들은 모두 유족들이 찾아야 한다. 또 유족들이 찾아낸 증인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도 드물고 무엇보다 관련 법규의 문제로 사법처리도 어려운 현실이다. 최근 법원은 구타·가혹행위와 자살과 상관관계를 인정하고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살자가 가혹행위에 대해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한 잘못’을 감안해 국가 책임을 20~40%로 제한하고 있다. 임성훈 판사(서울북부지방법원)는 ‘군내 자살처리자 관련 판례분석과 현 제도의 문제점’이라는 토론문을 통해, “군복무 중 자살자에 대해 사회보장적인 국가책임의 인정이라는 점에서는 국가배상 이상의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나 현행 국가배상제도와 국가유공자법에 의한 보상제도 내에서는 적절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족들 고통,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위로해야 군의문사 관련 전문가들은 수사기구의 전문성 확보와 현재 군의문사위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 10조)’는 정신에 맞게 군내 자살처리자 유족들의 처우에 대한 관심과 관련법령 개정 및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연금이나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돈 몇 천 억원을 준다한들 죽은 아들을 살려낼 수 있나”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알고 싶다’는 것이 유족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올해 출범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에도 유족들의 기대가 크다. 군의문사위는 올해 11월까지 264건의 진정을 접수받았고 연말까지 300건 이상의 진정 건을 접수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직접 조사인력이 46명에 불과하고 국방부 담당부서의 업무폭주를 이유로 조사에 필수적인 자료 확보마저 지체되고 있는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관련 참고인들도 소환에 불응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면서 조사기한도 길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군에서 사라진 죽음’을 찾아내 진실을 밝히는 일은 오랜 세월 의혹 속에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던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최소한의 국가 책임이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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