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88돌을 맞이하여 항일투쟁자료가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친일명단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명단’ 3,090명을 발표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방응모·김성수·홍진기(홍석현씨 부친, 일제 때 전주지법 판사 역임) 등 <조선>·<중앙>·<동아일보> 전 사장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오는 8월경에 출간될 예정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총독부 또는 소속 관서 고위직의 경우 행정관료로는 군수 이상, 경찰은 경부 이상, 사법부는 판·검사, 군대는 위관급 이상 장교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돼 이러한 기준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 명단에 일단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친일분자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라고 독립유공자들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독립유공자들은 친일부역의 정도에 따라서 A급, B급, C급 등으로 나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A급으로는 부족하여 특급 친일파(A+)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 독립유공자 가족은 가장 저질적인 친일파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철저한 인권유린에 바탕을 둔 군사파쇼로 통치를 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휼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들어갔다. 한편 2005년 2월 <연합뉴스>가 입수한 ‘임시육군군인군속계(臨時陸軍軍人軍屬屆)’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940년 4월 1일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해 두 해를 보낸 뒤 42년 10월 1일에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고 44년 12월 23일에는 보병 소위로 임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국가기록원에 보관돼온 이 문서에는 박 전 대통령이 일제 때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한 사실, 해방전까지 만주군 보병 제8군단에 근무한 사실 등이 적시돼 있다. 이 문건은 박 전 대통령의 큰 형인 고(故) 박동희씨가 박 전 대통령의 병적사항을 알리기 위해 45년 3월 작성해 경북 구미 면사무소에 제출한 것으로 나와 있다. <실록 군인 박정희> 저자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박 전 대통령의 창씨개명, 만주군 복무 등이 만주 현지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공문서로 다시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명 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 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는 ‘선서’를 힘차게 낭독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돼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했다. -김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