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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그년(근혜) 그놈(최태민)한테 홀려’

76년 박 대통령, 김재규 중정부장 보고 받고 大怒
김재규 10·26 동기, 박정희 문란한 사생활과 자식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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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호 ⁄ 2007.07.02 13:07:00

“나보고 갑자기 ‘최태민을 아는가’ 하고 물으셨다. 김재규한테 들었다는 소리는 안하고 ‘예,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놈이 말이야, 근혜를 홀려가지고 내가 혼을 좀 내줬지’ 하셨다. 경상도 사투리로 도깨비한테 홀린다는 표현을 쓰지 않나. 대통령은 ‘그년(근혜)이 그놈한테 홀려 도무지 시집가려고 해야 말이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재혼할 수 있겠나’ 하셨다.” 이는 지난 98년 11월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월간 WIN에서 최초로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후견인 행세를 해온 최태민 씨(전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는 지난 94년 5월1일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지만 이를 숨겨오다가 그해 7월에 뒤늦게 밝혀졌다. 또 김재규 중정부장이 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간접적 동기도 박 대통령의 사생활과 박 대통령의 자식문제들로 알려졌다. 이명박-박근혜 두 한나라당 예비 대선후보들이 경선에 돌입하면서 사생활 폭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로 자제하지 않고 사생활 폭로전이 계속될 경우 경선도 물건너 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구국여성봉사단 부패의 온상 김 전 비서실장은 인터뷰에서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재규는 큰 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해요. 박정희는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요.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改惡)’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라며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 외에도 박근혜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함께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어요. 김재규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제게 되묻기도 했어요.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걸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조갑제 닷컴에 따르면 「박근혜가 최초의 사회활동(구국여성봉사단)을 하게 된 계기는 최태민의 권고에 의해서였다. 1975년 2월 박근혜는 안면 있는 치안본부의 고위간부에게 최태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 간부가 최태민을 만나러 갔더니, 최 씨는 당황한 모습으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간부가 근혜 양의 부탁으로 왔다고 했더니 최 씨는 갑자기 거만해졌다. ■박근혜, 최태민 직접 불러 자주 만나 이 간부는 뒷조사를 시켰다. 최씨가 자유당 시절에 경찰관을 지냈다는 것, 정규과정을 밟은 목사가 아니라는 사실 등 불미스러운 점들이 드러났다. 이 간부는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이 정보를 근혜 양에게 알려주고 주의를 주었다. 박 대통령은 으레 그러듯 “누가 그러더라”는 식으로 정보의 소스를 밝혔다. 발끈한 박근혜는 치안본부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섭섭해 하였다. 이 간부는 그 뒤로 박 대통령과 근혜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도 그만두었다. 근혜는 최태민을 직접 불러들여 만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최태민이 추천한 김모씨가 근혜의 비서가 되었다. 1978년 김재규 정보부장은 구국여성봉사단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최태민의 비행을 검사 출신인 백광현(白光鉉) 안전국장에게 조사시켰다. 박승규(朴升圭) 민정수석비서관이 여러 차례 비행보고를 대통령에게 올렸는데도 먹혀들지 않아 그가 나섰다는 것이다. 최 씨가 여러 재벌 총수들이 구국봉사단에 기탁한 수십억 원을 횡령한 사실, 여비서들과의 불륜 등이 드러났다. 김재규 부장이 이 조사 결과를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확인 작업을 벌였다. ■전두환, 최태민 조사 지시 “옛 임금의 친국을 연상시키는 방식이었다. 대통령은 한쪽에 김재규 부장·백광현 국장, 그 반대편에 박근혜·최태민을 앉히고 직접 신문하기 시작했다. 먼저 김·백 두 사람에게 최 씨의 비행을 보고하게 했다. 대통령은 딸과 최 씨에게 “이게 맞느냐?”고 물었다. 딸은 울면서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최 씨는 “고문을 당해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했다. 판단이 서지 않았는지 대통령은 검찰에 또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의 조사 결과도 김 부장의 그것과 같았다. 그러나 최태민은 구국봉사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명예총재로 뒤로 물러난 것 같았지만 총재가 된 박근혜에게 계속 영향을 끼쳤다. 한편 지난 90년 조갑제 기자가 쓴 월간조선 2월호에 따르면 ‘전두환 씨는 박근혜 씨 이야기(5공이 박 대통령을 섭섭하게 대우했다)를 듣고 대단히 화를 냈다. 박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그 부분의 조사를 저지했기 때문인데 “저럴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전 씨는“접수된 박 대통령과 그 친인척 비리에 대한 신고와 진정서만 해도 한 트럭분은 족히 되었다. 내가 물러나면 저렇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 씨 측근에서는 “지금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친인척 관리를 잘했다고 하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지금 5공 비리 수사하듯 3공 비리를 조사했다면 그 규모가 전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났음이 드러났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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