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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대선 3수생, 그 열정과 냉정 사이

이회창, 이인제, 권영길…같지만 또 다른 그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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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호 ⁄ 2007.07.09 17:17:59

올 연말로 다가온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는 눈에 띄는 후보들이 몇 있다. 이른바 ‘대선 3수생’들이다. 이들 중에는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들도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도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이인제 통합민주당 의원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이가 바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우리 정치의 대권 도전사를 보면 재수, 3수를 넘어 4수생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7대 대선부터 시작해 1987년 13대, 1992년 14대를 거쳐 무려 네 번의 도전 만인 1997년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경선부터 따지면 1971년, 1987년에 이어 3수만에 14대 대통령이 됐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15, 16대 대선에 연속 출마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출마를 선언한 이들 가운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도 각각 대권 재수, 3수생의 범주에 들 수 있다. 정 전 의장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 후보였으며, 권 의원은 15대에 국민승리 21, 16대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를 한 적이 있다. ■ 천만 표의 추억(?), 이회창 한나라당 지지층 일각에서는 최근 당내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막가파 식’ 검증공방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지자, “이제야말로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 복귀와 대선 출마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들은 특히 이 전 총재가 지난 1997년과 2002년의 대선에서 ‘천만 표’를 득표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검증되지 않은 의혹은 언제든지 한나라당 분열로 이어질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전 총재 같은 검증된 후보가 제3의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이회창 전 총재의 팬클럽인 ‘창사랑’의 정해은 회장은 최근 대구 지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나라당 내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로는 좌파정권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며 “이 전 총재만이 지난 10년간 지루하게 이어져온 좌파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한나라당 내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 전 시장의 경우 좌파적 성향을 가진 인물군으로 완전 포위되어 있고, 박 전 대표도 자신의 집권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좌파 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며 “이러한 정치·사상적인 정체성이 모호한 후보들이 지금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50% 이상이 바라는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또한 한나라당 내의 ‘후보 검증 광풍’에 대해서도, “특히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불거진 감정격화 등으로 인해, 뭉쳐도 정권교체가 힘든 상황에서 분당위기설마저 나돌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 전 총재가 나서 내분상황에 치달은 한나라당을 다시 하나로 통합하고 좌파정권 종식을 위한 국민 총동원령을 내려야 할 상황”이라고도 했다. 정 회장은 “대통령이란 자리는 하늘이 ‘점지’해야만 가능하며 지금과 같은 한나라당의 자중지란의 모습에 국민들도 실망하고 있다”며 “국민들도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갈망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위해 조만간 팬카페인 ‘창사랑’외 새로운 결사체를 발족키로 하고 이미 지도부 구성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7월 중순경 핵심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산행을 통해 대사를 앞두고 결의를 다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6월 18일 국회에서 ‘홍준표 망발 규탄대회’를 갖고 홍준표 의원이 지난 6월 13일 경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자리에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우리(한나라당)가 엘리트 후보(이회창)를 내세우고도 패배한 것은 국민 눈에는 흠 있는 후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맹렬히 성토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지난 6월 초 이 전 총재와 면담을 가진 바 있다고 소개하고, “이제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모든 체제를 전투모드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회창사랑, 창사랑, 한국창 등 이 전 총재 지지모임은 지난 7월 4일 ‘이회창 팬클럽연합 2차 모임’을 갖고 “이제 그동안 분산됐던 무궁무진한 잠재능력을 하나로 합쳐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며 “대한민국 국민의 열망인 ‘이회창 대통령 시대’를 만드는데 기꺼이 한줌의 밀알이 되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사실, 창사랑 등의 이러한 입장과 관계없이 이회창 전 총재는 지난해 10월부터 정치적 발언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13일 경희대 특강에서 그는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았다 풀려난 예를 들며, “순신불사(舜臣不死). 이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대선 출마를 강력히 시사하기도 했다. 또 지난 7월 5일에는 한나라당이 전날 추인한 새 대북정책에 대해 “상호주의를 포기한 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측근을 통해 “지난 10년 간 상호주의를 도외시하고 일방적인 대북지원을 한 결과,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방·개혁으로 나왔느냐”며 “한나라당은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의 측근은 이날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이 대선을 의식해 중도로 가면 오히려 국민에게 나쁜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이 전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경우, 한나라당의 셈법은 복잡해진다. 현재의 이명박-박근혜 ‘빅2’의 검증 공방만으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자칫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가 ‘한나라당 대세론’에 재를 뿌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 전 총재에게도 고민거리는 남는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자신을 따랐던 당내 인사들 대부분이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측으로 나뉘어 있는데다가, 최악의 경우, ‘정권 탈환의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회창 전 총재는 지금의 정치상황이 자신의 정계 복귀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1144만 표를 얻었던 것에 대한 회한은 두고두고 남을 일이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돌아선 민심을 보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또 이 전 총재 측이 여전히 지난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김대업 사건 등 이른바 ‘각종 風’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요컨데 이 전 총재 자신의 흠결로 인해 대선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가 과연 한나라당에 어떤 이익이 돌아갈까 반문해본다면 일각에서처럼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가 “진정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대권욕이 없다면 자신이 죽어야 산다”는 ‘밀알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한나라당 측의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 지난 7월 5일 대선 3수를 선언한 이인제 중도통합민주당 의원은 범여권 단일후보 선출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 3수생 이인제, 범여권 단일후보 변수 될까 이 의원은 지난 5일, 출마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1997년과 2002년에 이은 세 번째 대선 도전이다. 이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열렬한 지지와 기대를 모아주셨지만 국민께 실망만 안겨 드렸다”며 “부덕함과 능력 부족 때문으로,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경선 이후의 새로운 상황에서 40대인 저로선 독자 출마를 바라는 국민 여망을 저버리기가 어려웠다”고 당시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이유를 해명했다. 또 2002년의 경선 불복과 탈당에 대해서는 “집권이 확실해진 급진 노선을 추종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탈당했을 뿐”이라며 “하지만 원숙하게 행동했어야 한다고 자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자신이 또 다시 출마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통합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데 이어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며 “중도개혁주의 깃발을 들고 연말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눌러 이기는 선봉에 서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반한나라당 전선의 최적임자’는 자신이라는 논리다. 이날 그는 권력을 의회와 지방에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개헌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놨다. 그러나 이 의원은 앞선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불복의 정치인’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하자 이에 불복,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독자 출마했다. 당시 그의 출마로 대선은 이회창-김대중(DJ)-이인제의 3파전이 됐고, 결국 DJ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 의원은 이 때문에 한나라당 쪽으로부터 ‘불복자’로, 여권에선 ‘정권 교체의 일등 공신’이라는 정 반대의 대접을 받았다. 이후 이 의원은 DJ의 국민회의를 거쳐 2002년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맞붙었다. 그러나 판세가 노 후보 쪽으로 기울자 경선을 중도 포기한 뒤 대선 직전 탈당했다. 일각에선 그가 범여권 대통합 내지는 막판 후보 단일화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칫 이 의원이 박상천·김한길 공동 대표가 이끄는 통합민주당의 독자 후보로 굳어질 경우 범여권의 막판 후보 단일화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선 출마 선언 직후 광주를 방문한 이 의원은 우선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있는 경선 불복과 잦은 당적 변경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이날 자신을 윈스턴 처칠 전 영국수상에 비유하며 “영국의 처칠 전 수상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 분도 고집이 세고 성질이 불같아서 탈당을 6번했다”면서 “처칠은 법안 처리를 두고도 당과 자신의 입장이 다르면 탈당했지만 그래도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니 영국 국민들은 처칠을 수상으로 뽑아서 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당 창당 등을 언급하며 “언론은 제가 8∼9번 탈당했다고 하는데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며 “전체적인 정치 상황에서 신당을 창당해서 몸만 빠져나온 경우는 탈당이 아니며 이 기준으로 하면 딱 2번만 당적을 옮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1997년에 경선에 불복했다고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데, 국민들이 이인제 나오라고 열화와 같은 요구가 있었다”면서 “맨주먹으로 국민의 요구에 나선 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이러한 항변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범여권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범여권의 한 유력 인사는 이 의원의 대선 출마에 대해, “참여정부 들어 5년 동안 잠행해온 이 의원이 또 한 번의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것 아니냐”며 “97년 대선에서 500만 표를 얻고 충청권이 지역 기반인 이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자신이 후보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면서 “이 의원이 통합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대통합신당 측과의 막판 후보 단일화를 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이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지더라도 킹메이커 역할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정치적 지분을 나눠 가지려는 전략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며 “어쨌든 이 의원의 권력을 향한 ‘불굴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꼬집었다. ■ 인물난 민주노동당, 권영길의 딜레마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번이 세 번째의 대선 출마다. 권 의원은 지난 5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진보적 경제성장론’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대선 3수를 선언했다. 권 의원에게는 ‘대선 3수론’과 ‘통합적 리더십’이 강점이자 약점으로 따라붙는다. 지난 1997년과 2002년에 이은 권 의원의 대선 3수를 놓고 당 안팎에서는 “민주노동당에는 새 인물이 없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또 권 의원이 그간 강조해온 ‘통합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통합이 아닌 봉합”이라는 내부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 대표는 ‘창업주 프리미엄’과 두 차례 대선 출마에 따른 인지도가 강점이지만, 지금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필요한 건 통합이 아닌 혁신의 리더십”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 의원은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등의 예를 들면서 “세 번 나가서 당선되는 게 진짜 감동의 드라마”라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나와 동갑인데, 나이가 많은 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나 당내 정파 갈등 문제 등이 온존하는 당 상황에 대한 책임론도 권 의원이 ‘창업주’로서 넘어야 할 과제다. 권 의원은 초대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의원단 대표 등 당 지도부를 두루 맡아오면서 이들 문제에 “쓴 소리를 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지만, 당내에서는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 더 많다. 올 연말의 대선도 지난 2002년 대선처럼 “민주노동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이 된다”는 구호가 범여권에서 등장할 것이라는 것도 권 의원의 고민거리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 측의 단일화가 막판에 결렬되면서, ‘가슴은 진보’인 이들이 실제 투표에서는 ‘될만한 후보’에게 몰아주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 범여권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정부 계승론’을 권 의원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대선 주자들이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과제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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