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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감독님, 당신의 역사적 보물은‘오발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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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호 ⁄ 2007.07.09 13:37:18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영화에 기울인 애정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두 독재자 모두 선전선동 영화, 군대 영화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죠. 특히나 괴벨스라는 천재적인 선전의 귀재를 부하로 두고 있었던 히틀러는, 영화를 비롯한 영상매체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해 선동하는 것에 있어서는 세계 역사상 따를 자가 없던 독재자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북쪽 나라 ‘뽀글이 장군’도 영화광이라고 알려져 있죠? 언젠가, 뽀글이 장군이 다름 아닌 이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귀순자들에 따르면 뽀글이 장군이 히틀러에게서 ‘존경할 부분’이라고 했던 것이 바로 그 영화를 통한 대중선동, 대중조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간편해 보이는 인민복이나 점퍼로서 편안한 이미지를 유도하려 노력한다고 합니다. 모두들, 그 혹은 그의 아버지였던 수령이 북한 주민들과 마주하는 영상물을 보신 적이 있을텐데, 연출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쁨이 넘치는 표정들이었던 거죠. 하지만 뽀글이 장군이 출연한 그 선전물은 제가 지금 이야기할 작품에 비하면 ‘삼류’, 아니 표현이 가능하다면 ‘십류’라는 말까지 나올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도,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작품을 제작한 적이 있다는군요. 1990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기록영화 <조국의 등불>을 제작한 적이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보도와 영상물의 5분 정도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유명한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이 편집하고 연출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촌스럽기 이를 데 없는 영상이었습니다. 그 작품이 왜 그렇게 의도가 나쁜 작품임에도 영화사에 기억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앞서 히틀러를 이야기했던 점에서 어떤 영화인지 눈치 채신 분이 계실 겁니다. 레니 리펜슈탈 감독이 1934년에 연출·각본·제작을 담당한 ‘의지의 승리’입니다. ■ 역사적 대작 ‘의지의 승리’ 사회주의 선전영화의 대표작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1925)’이라면, 나치를 대표하는 선전영화는 역시나 ‘의지의 승리’입니다. 두 작품 모두 대단히 훌륭한 미학적 완성도를 지녔고, 웅장함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대중의 분노와 뜨거운 감수성은 어떻게 자극해야 하는지, 그 정석을 가르쳐줄 교과서에 가까운 작품들입니다. ‘의지의 승리’는 세계를 휩쓴 경제대공황에서 조국 독일을 구한 아버지 아돌프 히틀러를 신격화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띤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미학적인 포커스가 히틀러에게 맞춰져 있죠. 첫 장면부터 아주 기가 막힙니다. 저 높은 하늘의 구름을 뚫고 비행기를 착륙시켜 땅으로 내려오시는 위대한 히틀러. 레니 리펜슈탈은, 그런 히틀러를 향해 독일을 구원해줄 신이자 예언자처럼 바라보는 대중의 간절한 눈빛과 진심어린 기쁨을 세밀하게 포착해 렌즈에 담아갑니다. 그러면서 표현된 거대한 규모의 메스게임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 군대의 모포 저리 가듯 각이 확실하게 잡힌 독일 거리의 미관. 마약보다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전함 포템킨’을 연출할 때, 그 유명한 오뎃사 계단 장면 등에서 활용된 ‘몽타주 기법(교차 편집)’은 이 ‘의지의 승리’에서도 기가 막히게 활용됩니다. 히틀러와 나치에 무한한 기대와 희망을 걸듯 밝은 표정을 유지하는 독일 군중의 얼굴이 바로 이 몽타주 기법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직 히틀러의 모습을 담기 위해 존재한다는 식의 태도를 유지하는 카메라와 마주치면서 역시 대단히 미학적인 장면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미학적인 장면들은 히틀러의 패망과 인종범죄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없이 착잡하고 무거운 장면으로 돌변하고 맙니다. 잘 다듬어진 영상과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 마약으로 돌변해 이성을 흔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줬던 사례로 전락한 거죠. 이미지 효과, 역시 내용이 중요합니다. ■ ‘조국의 등불’, 한없이 민망하다 불과 5분 정도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조국의 등불’은 그 5분만으로도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보세요. “박정희 장군의 5·16은 안정을 갈구하는 온 국민의 여망을 그대로 무심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시대적 소명”이었으며 “무혈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정희 장군이 워낙 청렴결백하셔서 국민의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랍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히틀러처럼 멋진 연출이 가미된 장면을 찾아내 편집하기가 몹시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말이 많아지면서 촌스러워지죠. ‘오발탄’에서의 대담하면서도 냉정한 리얼리즘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유현목 감독에게 대단한 실망을 느낄 것 같습니다. 새마을운동 이후엔 그저 이북의 뽀글이 장군의 주민담화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흔히들 “극우와 극좌는 통한다”고 하는데, 그 말을 이렇게 잘 뒷받침해주는 장면도 드물 것입니다. 당당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주민과 악수하는 지도자. 그 지도자를 향해 희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주민들. 그런데 너무 노골적인 찬양이 드러나 ‘의지의 승리’를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장면이 됐음에도 삽입곡까지 분위기를 확 깹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어쩔 수 없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 본인이 만드신 노래라잖아요. 절정은 장례식 장면입니다.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울먹울먹하면서 한편의 자막이 나오는데, 정말 폭소할 뻔 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의 한 장면이라 봐도 무방할 정돕니다. “위대하고 영원한 모습이시어, 사랑하는 우리들의 내일이시어.” 군부독재세력들의 국방색 미감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미감은 정말 어딜 못가는 모양입니다. 뭘 해도 코미디가 되고 맙니다. 히틀러와 괴벨스, 그리고 레니 리펜슈탈. 역시 나치 독일이 자랑했던 ‘천재 삼총사’였다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 박근혜의 유산, 스스로 책임지길 박근혜 예비후보의 정치적 기반은 부모님입니다. 줄곧 고집하는 헤어스타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영부인상이라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지지기반은 ‘아버지를 향한 추억’이죠. 아버지의 유산에서 빚과 같은 치명적인 부분이 더 많다면 상속 포기 절차도 있지만, 박근혜 예비후보는 청와대 입성을 위해 과감하게 유산을 상속받습니다. 그렇다면 ‘빚’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진 않고 있습니다. 그의 반응은 “민주화 운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제가 사과드린 것은 순수하게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친북 좌파들이 민주화의 탈을 쓰고 나라의 전복을 기도한 것은 분명 잘못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 잣대가 뭔지 궁금합니다. 누가 친북 좌파였고, 민주화의 탈을 쓰고 나라의 전복을 기도한 것은 누구인가요? 정말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저같이 무식한 시민도 알아들을 수 있게끔, 명확하게 얘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의 재산에서 열매는 적극적으로 챙길 자세인 것 같은데, 그 명암에 대해서는 이렇게 모호하게 나오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가끔은 아버지의 어두운 유산과는 별 관계가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의 정치적 기반은 아버지의 영향력이며, 그 스스로도 ‘조국의 등불’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책임지셔야 됩니다. 이 영상물에 대해, 박근혜 캠프 측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해집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엄청난 치적의 분량을 단 두 시간 내로 축소편집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렇게 한다 해도 그분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슴 아픈 심경이었다. 수백 수천 년 후에 세계인들이 참고해야 할 자료이기에 이 필름은 영구보존의 방법을 강구해야 하며, 역사적 보물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런 반응을 보이신 유현목 감독입니다. 나이 팔순을 넘기신 원로 영화감독으로서, 정치적 구설수에 오르실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 감독님, 당신의 역사적 보물은 ‘조국의 등불’이 아니라 ‘오발탄’입니다. <박형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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