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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개장 앞둔 풍물시장 국제명소될 수 있나

서울시 상인들 갈등 미해결, 입지조건도 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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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62호 박성훈⁄ 2008.04.08 09:45:22

서울 신설동 청계천변의 숭인여자중학교가 있던 자리. 지금 그곳에는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까르르 웃으며 떠드는 사춘기 여학생들의 잔망스러운 수다 대신, 철골건물을 짓는 인부들이 빚어내는 쇳소리와 콘크리트 바닥을 가는 글라인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마사토가 깔린 너른 운동장에는 하얀 천막 지붕을 얹은 2층짜리 거대한 철골구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철근을 옮기는 인부에게 물으니 공사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서울 풍물시장 건물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시와 약속한 공사 마감시한에 맞추기 위해 인부들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고, ‘내천(川)’자를 형상화해 만들었다는 철골건물은 휘어진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 이 건물은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상인들이 입주할 건물이다. 공사현장의 이귀현 소장은 “준공을 이틀 앞두고 있다”며 건물 준공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4월 4일부터 7일까지 상인들의 입주를 완료해 임시개장을 하고, 중순쯤에는 정식으로 개장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내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시…“서울풍물시장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세계적인 디자인센터와 테마파크가 들어서는 ‘월드 디자인 플라자’를 짓는 대규모 도시환경 개조·조성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동대문운동장과 풍물시장 가건물의 철거가 불가피하게 됐고, 동대문운동장 상인들과의 마찰은 극에 달했다. 현재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에서 생업을 이어나가는 1000여 명의 상인은 대부분 청계천 복원공사 과정에서 자리를 옮겨온 청계천 일대 ‘벼룩시장’ 노점상이다. 상인들은 공원화 사업 발표 이후 수십 차례 반대집회·시위를 벌였으며, 서울시는 800차례를 넘도록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는 동대문 풍물시장의 상인들이 상업행위를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89억5,000만 원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신설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다른 나라의 벼룩시장과 같이 새로 들어서는 신설동 풍물시장을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의 관계자는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싱가포르 등도 자국의 고유 풍물과 정서를 담은 시장을 개설하여 주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서울 역시 신설동에 새로 들어설 서울풍물시장을 집중 육성해 민족의 볼거리·먹거리·살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서울시에서는 우리 고유의 봇짐장수인 장돌림(장돌뱅이)을 현대 감각으로 표현한 ‘장똘이’를 서울풍물시장 캐릭터로 선정하고, 기와지붕 아래서 흥겹게 춤추는 모양의 상징 이미지(CI)를 선정하는 등 풍물시장의 브랜드화 홍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한 쪽은 ‘반색’, 한 쪽은 ‘반대’ 서울시의 이 같은 배려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풍물시장의 분위기는 신설동 신축 시장으로 이주하는데 대해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풍물시장 한편에 세워진 조명탑 위쪽에는 “현대판 디자인센터는 문화유산이 아니다” “풍물시장 이전합의는 원천무효다”라고 쓰여진 펼침막이 나부끼고, 그 옆에는 주황색의 작은 천막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자칫하면 추락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어 조마조마했다. 천막 안에서 위험천만한 고공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은 동대문 풍물시장 상인회 소속 노점상으로, 3월 20일 밤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추진한 청계천 개발로 동대문운동장에 조성된 풍물시장에 이주해 온 ‘원조’ 청계천 노점상들이다. 이들 중에는 63세의 동대문운동장 민속풍물공원 조성 추진위원회 위원장도 있었다. 이들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옛 숭인여중 부지로의 이전이 상인들과의 합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서울시의 풍물시장 이전계획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들은 풍물시장을 숭인여중 부지로 옮기려는데 대해 “그곳은 유동인구가 적어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하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장 내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풍물시장 식당 지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인은 “이곳에 있는 상인들은 서울시의 신설동 시장 신축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몇몇 상인들은 이미 이주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고공 시위자들에 대한 질문에도 “어디에나 좋은 일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 아니냐”며 시장 전체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일선 상인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동대문 풍물시장의 상인들은 “공사를 제대로 끝내 놓지도 않고 이사만을 강요한다”며 짐을 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장사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전기설비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한 시장 안에서 다른 두 목소리가 나오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상인들… “우리는 서울시와 합의하지 않았다” 2007년 8월에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자치위원회 한기석 위원장은 서울시 행정부시장과 함께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이전합의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으로 입주할 의사를 밝혔다. 이어 서울시는 언론에 “2008년 3월까지 풍물시장을 동대문구 제기동 옛 숭인여중 부지로 이주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2007년 12월 13일 공사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8월 당시 상인들과의 합의가 끝났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서울시가 합의한 주체는 상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가 아니었다고 반발하고 있었다. 상인들은 “동대문 풍물시장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5인 대표’라는 임의단체가 등장했고, 이들은 풍물시장 상인 자치회를 자칭했다”고 전했다. 상인들은 서울시와 이전에 합의한 사람들은 바로 이 ‘자치회’였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이 서울시에서 돈을 받아 동남아 여행을 하는 등 풍물시장 회원들에게 돌아올 수천만 원의 비용을 여행경비로 썼다”고 성토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종상 씨는 “지역장들은 서울시에서 워크샵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지부장이라는 사람들도 강원도 등지의 온천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며 서울시와 자치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상인들은 서울시가 정작 이전에 반대하는 대다수 상인과는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인들과 서울시의 면담은 작년 2월 29일에 처음 이뤄졌다. 상인들은 “면담에서 서울시 담당관은 풍물시장 상인들이 서울시와 주체적인 계약 체결권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했다”며 자치회와 서울시의 이전 합의는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새 점포는 너무 좁아” 불만 서울시에서는 새 풍물시장으로 옮기면 가로 2m 세로 2.4m 크기로 규격화하여 설치된 901개의 부스를 각 노점상에게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그 부스가 장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청계천에서만 10년을 장사하다가 동대문운동장에 자리를 잡은 가구상 김모 씨는 “장식장 한 개만 들여놓아도 한자리를 가득 차지한다”며 물건을 들여놓을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소파와 장식장, 탁자들이 빈틈없이 놓인 김 모씨의 점포 자리는 줄잡아도 가로 3m에 세로 6m를 넘었다. 그는 신축된 풍물시장 건물의 앞에 있는 구 숭인여중 건물도 허물어 시장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시계상이나 잡동사니를 파는 점포의 크기도 김 씨의 점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포의 두 배 가량 넓은 자리를 배당받는 식당의 상인들도 불평하기는 마찬가지이다.식당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서울시에서 허락한 자리가 식당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좁다”며 하소연했다.

■입지조건, 주차공간 열악 신설동 지역에 상권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도 상인들의 불만을 심화시키고 있다.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의 주변에는 학원가와 병원이 위치해 있으며, 그 바로 옆에는 현재 교육청 부속 기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숭의여중 건물이 바투 자리잡고 있다. 또한, 그 옆에 동대문도서관이 있고, 영천군에서 상경한 학생들의 기숙사인 영천학사가 자리잡고 있어 주변 학생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오세훈 시장이 얘기하는 세계적인 풍물시장이 되려면 주위 환경과 입지조건이 좋아야 한다”면서 “가봐서 알겠지만, 신설동은 겉으로 보기에도 상권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은 곳”이라며 지역적 한계를 지적했다. 옆의 신발가게 상인도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은데 비상권 지역으로 내몰릴 판”이라며 “이사 가지 않고 이 지역에서 계속 장사를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게다가 신축된 서울풍물시장 건물이 다소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이 찾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풍물시장의 사면이 3층 이상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아도 시장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차장 규모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70대 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서울풍물시장 주차장은 관광객이 몰리면 주차난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말에 관광 버스들이 몰려 올 경우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다. 또한, 건물 안의 점포와 주차장 사이에 아무런 차단막이 없어 시장 바로 옆에 주차장이 조성될 경우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서울시는 노후된 신설고가차도를 걷어낸 난계로 구간에 200면 정도의 지하 주차장을 만들고, 지하광장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서울풍물시장 인근 주류공장 부지 2479㎡를 사들여 주차장으로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시 김병환 가로환경개선담당관은 “주류공장 부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만들면 그 동안 상인들과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던 주차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상인 속히 이해관계 정리해야 상황이 어떻든 간에 건물은 현재 거의 완공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서울 풍물시장은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일단 신설동에 건물이 지어진 이상 장소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4월 안에 개장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상인들이 제시간에 입주하기를 계속 거부할 경우 풍물시장의 새출발은 물론, 동대문 월드 디자인 플라자의 조성작업도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일단, 개별 상인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 건설적인 대안과 합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세계적인 풍물시장이 되려면 서울시와 상인들의 협력과 각고의 노력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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