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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박힌 외로움과 열정 - 송용 화백

宋龍 화백 渡佛展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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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호 편집팀⁄ 2008.05.19 17:25:56

개인전 16회 Leaders’ 갤러리 수 초대전 2007 / 인사동 미술회관 개관기념 초대전 / 미술회관 정부수립 30주년기념 초대전 /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자연전 /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 초대전 / 국립현대미술관 한, 중, 일 수채화전 / 대만 대북국가화랑 일본 이기전 초대출품 / 일본 고베 한국 수채화 Paris전 출품 /한국 문화원 Paris Salon de Dessin et de la Peinture a leau/Paris 한국현대미술전 / 독일, 러시아, 한국 한국의 수채화 / 문예진흥원 초대 한국 중진작가 10인 초대전 / 미국 시카고 KBS TV 미술관 초대전 / 신세계미술관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전 고구려·발해 유적지 답사전 / 롯데갤러리 일본 조선통신사의 길 답사전 / 롯데갤러리 심사 목우회 공모전, 한국수채화 공모전, 무등미술제, 금강미술대전, 한독미협 공모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대한민국수채화대전 대회장 역임 현재 한국미협 회원, 한국기독교미술협회 회원, 한국전업작가회 회원, 사단법인 목우회 감사, 한국수채화협회 회원, 신작전 회원, 세계미술교류협회 상임부회장, 무진회 고문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햇살 120호, 황토 150호), 서울시립미술관(해변 50호), 조선대학교미술관(설악추경 100호), 고려대학교박물관(벽 100호), 광주시립미술관(여명 100호, 계곡 100호), 국민은행본점(백두산 천지도 2000호), 제일은행본점(저동항 700호), 경남은행본점(거제도 해금강 600호), 문광부(나들이 100호), 대법원(아침 100호), 독립기념관(살수대첩도 500호)

宋龍 화백을 가리켜 우리 옛친구들은 흉허물없이 「물두부」라는 별칭을 던진다. 이 별칭은 결코 웃어 넘기기 위하여 쓰이는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말이 농담과는 다른 「사랑」을 지니지 않고서는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宋龍이라는 사람이 그리고자 할 때, 그림의 구도나 색채나 주제 이상으로, 꼼짝없이 필요하고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도 또한 자신에게 던져지는 이 별칭을 결코 싫어하거나 못마땅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

「물두부」는 무엇인가? 부드럽고 연하고 하얀 순두부도 부족해서, 더 부드럽고 더 연하고 더 물기가 많은 두부일성 싶다. 그것은 결코 이빨로 씹어서 삼켜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위장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며, 우리들의 복잡한 정신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편안하다. 고요하게, 순리대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누구든 이 宋龍이라는 사람과 자주 만나다 보면 왜 그에게 이 별명이 붙었는지를 곧 이해하게 되리라. 그는 물두부처럼 착하고 부드럽다. 보송보송 하얗게 살이 찐 얼굴, 천진스런 황소처럼 껌벅거리는 큰 눈, 항상 웃기 위하여, 그리고 맛있고 복있게 먹기 위해서만이 만들어진 듯한 큰 입, 둔하게 움직이는 통통한 胴체…. 그는 이 각박한 세상의, 쫓기듯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는 어쩌면 종자를 달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흔히 착하고 순진한 사람을 가리켜 「법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꺼꾸로 「법이 있어야 살 사람」이라고 바꿔 놓고 싶다. 만약 법이 없다면 저 많은 고약한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무엇이 이 아름다운 사람의 삶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宋龍과 가까이 지내오면서, 나는 그가 누군가와 만나서 말다툼을 하거나 흥분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헐뜯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현실을 요령있게 살아가는 것과는 인연이 멀고, 언제나 그 자신의 손해나 피해에 더 잘 길들여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고도 그는 허허 웃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를 설명하다 보니,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그는 바보가 아니냐」「그는 뼛대없는 사람이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니다. 나는 그의 인간적 의지가, 그리고 집념이, 예술적 열정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 것을 보아왔다. 8~9년 전의 일이다. 宋龍은 항상 그와 가깝게 지내오던 가난과 외로움을 데리고 서울 변두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이무렵 조그마한 마루방에서 1백호짜리 크기의 「壁」을 그렸었다. 그는 이 작품을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국전에 출품, 첫 출품이 곧 첫 특선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었다. 무명의 청년이 하루아침 국전에 충격을 던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충격」이라는 표현을 빌린것은, 내가 과장하거나 나의 신중하지 못한 발상에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림에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국전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예쁘고, 여인네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실내, 정물, 풍경 등을 화폭에 담는 정도의 상식밖에 지니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 국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려 준것이 宋龍의 「壁」이었고, 이 「壁」앞에 유례없이 많은 관중들이 몰려 있음을 보고 나는 가슴 벅찬 희열까지 느끼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壁」을 「충격」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확실히 「壁」은 그 소재에 있어 이색적이었다. 화면 가득히 들어찬 벽돌벽에 찢어진 벽보 자국, 전선줄의 그림자, 그리고 벽 아래 혼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쓸쓸한 소년, 양말을 신지 않은 발과 검정 고무신, 그것들은 모두 한데 어우러져 무슨 소리인가를 소리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서로 힘없고 외로워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지탱하며, 어쩌면 안으로 흐느끼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넓고 깊은 생각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아름다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머물다 가는 이 자리, 이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시대가 거기 조명되고 있었다. 宋龍은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 소년이 곧 어린 시절의 자신의 초상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의 어린 시절이 우리 또래의 많은 다른 사람들이 겪어온 바와 같은 어둡고 고난에 뒤섞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민족분단과 6·25의 와중에서, 가족과 헤어지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소년이 어찌 그 뿐이랴. 宋龍은 그와 같은 많은 비극적인 소년상 중에서도 그 한복판에 나부끼는 소년을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대는 어린 시절 외로웠기에/다른 아이들이 볼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잔잔하게 볼 수 있었다. 외로운 눈이 밤이 깊어도 기다림으로 혼자 빛나고/먼 개울음 소리, 솔바람 소리에도 모습을 모르는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다./겨울밤 도둑기차를 탄 그대의 가출이/새벽녘 폭격으로 허물어진 명동거리에 이르고…/그대는 청년이 되고서도 늘 외로웠기에/그대의 외로움을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어/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던져 보냈다./어둠의 심장에 꽂혀 어둠의 고요함과/어두움의 함성을 듣고/함께 피 흘리며 울 수 있었다…> 宋龍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하여 씌어진 개작 「Y에게」라는 시의 몇 구절이다. 「壁」에 그려진 소년을 언어로 되풀이한 셈인데, 여기서 말하는 외로움이란 한 시대의 처절한 상황과 한 가족의 비극이 함께 응결된, 어쩌면 한으로 연결된 외로움이기도 하다. 그는 항상 그 외로움을 그의 내면 가득히 담고 다니는 사람이며, 이것은 고집스러우리만큼 그의 작품의 근저가 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는 흔히 그를 잘 아는 선배 화가들로부터 「그림이 너무 어둡다」느니 「소재가 너무 사회성을 띄지 않았느냐」느니 하는 등의 충고를 들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롭고 어두운 그림을 한동안 꾸준히 그려온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신하고 의식화시키는 집념을 가진 작가이다.

최근에 들어 그는 이 외로움으로 채색되는 일련의 그림들과 함께 자연을 정직하게 재현하는 작업에도 열중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평범한 풍경, 정물 따위의 그림에서도 그의 내면의 뜨겁고 단단한 가슴이 보이는 것 같고, 화사한 색동옷을 입은 여인을 그려도 어딘가 한구석 쓸쓸한 물기가 도는 아픔의 흔적을 읽을 수가 있다. 이것은 곧 그의 개성이자 그의 의지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가 곧 파리에 날아가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도불기념 작품전을 가진다고 한다. 반갑고 흐뭇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바라건대, 고국을 떠나거든 마음놓고 한번 「놀고」 오기를 기대한다. 여기서는 그토록 바쁘고, 쪼들리고, 정신없이 살아온 宋龍, 그곳에 가서 비로소 자유에는 왜 고통의 그림자가 늘 묻어 있는가를 보고 오기를 기대한다. 「물두부」로 가서, 더욱 키가 큰 「물두부」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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