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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초 흑인 대통령 오바마 ‘세계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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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1호 김원섭⁄ 2008.11.04 17:57:03

1767년 아프리카의 감비아에서 노예로 팔려 미국으로 건너온 후 그곳 신대륙에서 온갖 박해를 견디며 살아온 모습을 그린 ‘쿤타킨테’. 이들이 미국의 흑인사회의 역사이다. 건국 이래 시종일관 다수 백인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해 왔던 미국에서 44대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혁명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46세 오바마는 상원에서 유일한 흑인이자 사상 다섯 번째 흑인 상원의원이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사람이다. 염소를 치던 청년은 공부도 잘해 장학금을 받아 들고 하와이로 유학 갔다. 거기서 만난 미국 여성과 결혼해 오바마를 낳은 뒤 2년 만에 이혼했다. 오바마의 이름 ‘배럭’은 케냐의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오바마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후 많은 좋은 법률회사에서 직장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시카고의 남쪽 흑인 거주 지역에서 보수가 낮은 ‘인권변호사’로 일하면서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 강의를 하였다. 역시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미셸도 좋은 법률회사의 직장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가 나서 자란 시카고의 남쪽 흑인 거주 지역으로 다시 돌아와 도시 빈민운동에 투신하였고, 최근에는 시카고대학 병원에서 부원장으로 활동해 왔다. 오바마 부부의 변화의 꿈은 바로 여기 흑인 밀집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계의 샛별로 떠오르며 힐러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는 오바마에게 ‘힐러리의 악몽’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오바마는 예전의 흑인 지도자들과 달랐다. 과거의 지도자들은 차별당하는 흑인들을 대변하며 미국인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거북한 존재였다. 오바마는 대신 매력을 발산한다. ‘투쟁하는 흑인’이 아니라, ‘안심시키고 결집시키는’ 흑인 지도자의 모습이다. 이번 11월 4일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그에 의하여 45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되어 미국이 더 이상 전쟁과 침략·약탈을 중단하고 자주·평화·친선을 지향하는 모범국가로 발전할 것이다. 오바마의 효과는 미국의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이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인은 미국의 국익과 국제사회의 기대가 서로 충돌하게 될 수많은 이슈들과 씨름해야 한다. 우선 8년 동안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뿌려놓은 일들을 어떻게 잘 조화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오바마 효과’의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오바마는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받지 말아야 할 유산인 북핵,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사태, 금융위기 등을 깨끗이 세탁해야 할 짐을 지게 됐다. 오바마는 이를 청소함으로써 미국의 위상을 평화의 나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특히, 부시 정권 동안 해결하지 못한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오바마가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북핵 해결은 곧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에 평화를 정착, 한반도가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수 있다. 10년 만에 보수정권으로 회귀한 이명박 정부는 8년 만에 진보로 돌아간 오바마 정부와의 대미 외교정책을 재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미 민주당은 상원까지 장악, 미 의회를 사실상 거머쥐게 돼, 보수정권인 부시 정부가 추진해 오던 정책을 취임 1년 만에 전면 수정해야 한다. 부시 정권에서 터진 금융위기 대책도 내년 오바마 정부와 다시 짜야 하며, 촛불집회의 화살을 당겼던 한미 FTA도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 오마바는 초기 내각구성에서 초당적 내각을 구성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도 내년 1월 오바마 정부 출범 전에 미국의 새 정부와 함께 한미공조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내각을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신뢰를 잃은 한미관계를 21세기에 맞게 새로 구축하고, 나아가 동북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새 동반자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 시대를 맞아 진짜 ‘오바마 프렌들리’의 요구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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