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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자전거 ‘골치’

‘자전거 붐’ 속, 자전거보관대마다 ‘고물상’ 방불…도심미관 해치고 자원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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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8호 박성훈⁄ 2009.05.19 14:13:03

한 시민단체가 광주의 상무시민공원 앞 아파트 단지에서 방치 자전거 실태조사를 벌였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몇 년째 방치된 듯 보이는 녹슨 자전거들이 즐비했다. 단지 내 자전거 보관대는 마치 폐자전거 고물상을 방불케 했다. 안장이 뽑히고 핸들이 휜 자전거, 타이어 고무가 삭고 프레임에 녹이 슨 자전거들이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모습도 조사자들의 눈에 띄었다. 이 같은 모습은 이 아파트 단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서울의 역사 주변이나 공원에도 이 같은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매여 있는 자전거들 중에는 약간만 손질하면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도 많다. 대부분 심각하게 훼손된 이 자전거들은 자리를 크게 차지해, 정작 자전거 보관대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시 미관도 저해하고 있다.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에는 과자봉지·음료수 캔·전단지 등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다. 공기가 빠져 납작한 바퀴에 체인이 늘어진 자전거, 안장이 없거나 찢어져 스폰지가 삐져나온 자전거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전거 보관대에 매어져 있는 자전거 10대 중 3~4대는 몇 개월 혹은 몇 년째 방치된 버려진 자전거이다. 이는 도시 미관을 저해하기도 하지만, 자원 낭비로 이어진다는 데서 더 심각성을 가진다. 버려진 자전거들은 주요 부품이 훼손된 채 방치돼 있지만, 간단히 수리만 하면 타고 다닐 만한 자전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보관대에 많게는 절반이 ‘버려진 자전거’ 건강과 경제성 등이 맞물리면서 자전거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전거를 대안 교통수단으로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자전거산업을 지원하고, 자동차 위주의 도로체계를 자전거 위주로 바꿔 나가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자전거 활성화가 붐처럼 일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방치 자전거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60~70년대의 자전거는 한 집안의 재산목록 1호였지만, 소득이 늘면서 자전거의 재산적 가치가 사라지고 가격도 저렴해 쉽게 사고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전거 보관대와 지하철역 주변 등에 버려진 자전거들은 지저분하고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자전거는 대략 800만 대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시내에만 자전거가 약 600만 대에 이르니,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8년에 버려진 자전거는 5561대이다. 이는 2006년에 버려진 자전거 1606대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대구시에서 수거한 방치 자전거는 2008년에 1000여 대였는데, 올해는 1300여 대까지 늘었다고 한다. 인천 부평구의 주요 역사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에는 장기간 무단으로 방치되고 있는 자전거가 총 87대에 달한다. 광주시에는 자전거가 일반용과 어린이용을 합하면 22만8000여 대에 이른다. 이 중 상당수가 방치 상태여서, 관내 지역마다 많게는 절반 가량이 방치돼 있다는 통계까지 나온 실정이다. ■지자체, 방치 자전거 수거하는데 54일 소요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치 자전거 수거는 지하철역 주변과 공원 등 공공 장소의 자전거 보관대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10일 간 무단 방치된 자전거는 보관 장소로 이동한 뒤, 14일 간 공고하고 그 이후 한 달이 지나서야 매각 처리할 수 있다. 54일 정도가 소요되는 셈이다. 그러나 자전거를 되찾는 경우가 10대 중 1대도 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공고 후 바로 매각할 수 있게 된다면 처리기간을 최소 1개월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이를 아파트 등 주택까지 합하면 방치 자전거 규모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를 수거·수리해 복지단체에 기증하는 민간단체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의 추정치로는 국내 아파트의 방치 자전거가 1000가구 당 86.7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 단체가 2007년에 서울·수도권 43개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한 방치 자전거는 2216대이고 전체 자전거는 1만6400여 대여서 13% 가량이 버려진다고 볼 수 있다. ■자전거법…매각처분 ‘허용’, 재활용 ‘불가’ 방치 자전거는 수리를 거치면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뚜렷한 규정이 없어 고철로 버려지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에서도 관내 일부 도로변과 역사 등의 자전거 보관소에 무단으로 방치되어 있는 자전거를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1조에 의거 수거하였으며, 공고 후 1개월이 경과하여도 권리행사를 하지 않는 자전거에 대하여는 고철 등으로 매각 처리했다. 구 관계자는 “장기간 방치된 자전거는 녹이 슬고 펑크가 나거나 휠이 찌그러지는 등 고장 난 것이 대부분이라 미관상 좋지 않고, 실제로 보관대를 필요로 하는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거된 방치 자전거는 고철로 처분된다. 방치 자전거는 각 구청이 10일 이상 수거 안내문을 붙인 뒤 수거해 1개월 이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매각 처분한다. ㎏ 단위로 고물상에 팔린 뒤 고철로 활용되는 것이다.

서울시 자전거교통추진반 관계자는 “수리만 하면 다시 쓸 수 있는 자전거도 많다”면서 “현행법상 방치 자전거는 일괄 매각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복지단체 등에 기부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용석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 사무국장은 “방치 자전거는 수리하거나 부품을 재조립하면 3대당 1대 꼴로 재사용이 가능하다”며 “자전거 생산만 늘릴 것이 아니라 방치 자전거 재사용도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수거된 자전거는 매각만 가능해 활용방법이 있어도 실행이 불가능하다. 자전거 처리 법률에는 매각 처분에 관한 내용만 있고 재활용에 관한 내용은 없어, 이 문제에 대하여 서울시에서 법률 개정 준비를 하고 있다. ■일부 단체, 자전거 수리 후 무상 기증 혹은 저가 판매 이들 자전거들은 소유자가 자물쇠를 풀지 않으면 마냥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공에서 자물쇠를 따서 수거하기도 한다. 서울에서도 자전거 수거 공지 이후 일정 기간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를 수거해 간다. 광주시도 지난달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해 방치 자전거를 수거하고 처분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상위법인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시의 조례안에 근거, 10일 이상 같은 장소에 무단으로 방치된 자전거는 절차에 따라 처분할 수 있다. 구청장은 방치 자전거를 옮겨 보관한 뒤 자전거의 종류 및 제조회사, 방치된 장소 및 이동·보관한 일시, 자전거를 보관한 장소 등을 공고한다. 이어 공고 후 1개월이 지나도 소유자가 찾아가지 않으면 매각이 가능하게 된다. 광주YMCA빛고을바이크사업단에서는 ‘민관합동 방치자전거 실태조사 및 수거’를 광주시에 제안해 방치 자전거를 수거하고 수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같이 수리 과정을 거친 방치 자전거들은 저소득층 등 어려운 이웃에게 무상 제공하거나 일반인에게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고장 난 채 장기간 방치된 자전거 대책 마련해야” 일부 행정기관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에 방치된 고장 난 자전거를 관리사무소를 통해 기증을 받고, 수리 후 저소득 가정 등에 기탁하는 등 방치 자전거를 선용하기 위한 방안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방치 자전거를 수리해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희망 자전거 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노인들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고용해 자전거 수리 인력을 충원하고 자전거도 수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버려진 자전거를 재활용해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희망 자전거 사업은 지난 2007년 대구에서 시작됐다. 말끔하게 고쳐진 자전거가 시중 가격보다 훨씬 싸다 보니 자전거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에만 1,300여 대가 팔렸고, 올해는 두 배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장애인과 노약자 등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자전거를 제작하는 등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자전거의 디자인과 구조를 개조해 만든 ‘아트 바이크’로 생활 속의 자전거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도 힘쓰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민들에게는 녹색 교통수단을 싼 값에 제공하는 희망 자전거 사업이 경기 침체 속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김경민 희망자전거제작소 단장은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용되는 맞춤형 자전거 제작사업이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무단으로 버리는 사람이 줄어들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방치 자전거의 합리적이고 신속한 처리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경제불황으로 자전거 이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고장 난 자전거의 재활용과 수리센터 확대 설치를 위한 방안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 등 외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고장 난 채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자전거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 이는 자원재활용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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