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정 총리, 거짓말 ABC부터 배워야

  •  

cnbnews 제143호 최영태⁄ 2009.11.10 11:02:46

11월 4일 오후 4시, 정운찬 총리의 이름도 거창한 ‘대국민 발표’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기다려진 이벤트였다.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대국민 발표로 세종시 로드맵을 발표한다’니 뭔가 대단한 게 나오는가보다라는 기대를 가질 만했다. 결과는? 그냥 “연구하겠다”였다. 총리실 산하에 민관합동위원회(가칭)를 만들어 1월까지 두세 달 동안 세종시 원안을 뜯어고칠 여러 방안을 연구해 발표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동안 뭔가 있는 듯이 취임 전부터 세종시 수정론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거짓말 얘기를 좀 해보자. 정치인과 국민의 관계는 어차피 거짓말을 주고받는 관계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절을 하며, ‘존경하는 여러분’을 난발하지만, 절 받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존경받는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존경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심지어 그 정치인이 나를 멸시하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도 절을 받는다. 왜? 정치판에서 거짓말을 주고받는 행사가 선거이기 때문이다. 선거판에서 후보의 첫째 목표는 당선이다.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 게 당선에 앞서는 첫째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당선되려면 유권자가 ‘듣고 싶어하는 거짓말’을 해줘야 한다. 이렇게 유권자가 듣고 싶어하는 거짓말을 찾는 과정에서 민의가 반영되며, 그렇게 발설된 공약 중 일부라도 실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판에서 거짓말이 거래되는 것은 정치 후진국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찰스 포드(Charles V. Ford)는 저서 <마음을 읽는 거짓말의 심리학>에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믿고자 하는 것만 이야기한다’고 썼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과 캐럴 태브리스는 저서 <거짓말의 진화>에서 미국 정치인들이 수동태로 둘러대 말하는 방식을 고도로 발달시켰다고 썼다. 예컨대, 헨리 키신저는 자신이 국가안보보좌관이며 국무장관일 때 문제가 터지자 “정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때 실수한 정부는 누구인가? 바로 키신저다. 그래도 그는 ‘정부’라는 가공의 실체를 들이대며 책임을 자기는 지지 않겠다는 어법을 구사한 것이다. 이들 저자들은 미국 정치인들이 ‘실수가 만들어졌다(mistakes were made)’는 수동태로 책임을 회피한다고, 그리고 이런 어법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지적했다. 흔히 ‘거짓말’이라면 사기·속임수를 생각하기 쉽지만,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듯 거짓말 없이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녀 사이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 인간이 진실밖에는 말하지 못하는 동물이라면, 내 곁에 있는 남자-여자의 사소한 단점, 작은 결점까지도 모두 얘기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남녀관계는 물론 인간관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거짓말 연구가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정치란 듣기 좋은 거짓말을 정치가와 유권자들이 주고받으면서 나라든, 정당이든, 개인이든 발전시켜 나가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정 총리는 ‘그럴 듯한,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거짓말’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세종시 수정론, 세종시 로드맵을 거론해서는 안 됐다. 정말로 정 총리나 이 대통령이 세종시를 수정하고 싶었다면, 우선 ‘말이 되는(국민들이 받아들일 만한)’ 플랜을 만들어놓은 뒤, 말로 이걸 풀어내면서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전략을 수정하고 하는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한다. 세종시 설전에는 도대체 그런 ‘뒷그림-숨은 플랜’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멋진 거짓말로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래서 그 거짓말의 일부를 정말로 실현해내는 그런 정치가가 그립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유는 그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거짓말을 멋지게 해냈고, 이런 거짓말 같은 비전을 국민이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