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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을 멸시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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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3호 최영태⁄ 2010.01.18 11:44:19

“건강해지려면 BMW를 하라”는 말이 있다. 버스(Bus) 타고 전철(Metro) 타면서 걸으라(Walk)는 뜻이다. 서울처럼 BMW 하기 좋은 곳도 드물다. 전철·버스·마을버스가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BMW 체계는 잘 돼 있지만, 이 체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무섭다. 어느 날 저녁, 버스를 타고 차 앞쪽에 앉았다. 운전사는 뭐가 불만인지 계속 뭔가를 시부렁거렸다. 그러다 어느 대로에서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지만 이 불만에 찬 운전사는 그냥 “고” 했고, 파란불로 바뀐 걸 보고 도로로 나서던 남자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신호등만 믿은 죄 없는 삶이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편한 게 전철이지만, 출퇴근 시간대 운행 체제를 보면 걱정스럽다. 인파가 몰리는 2호선의 경우 앞뒤 열차가 거의 초 단위로 붙어서 역으로 달려 들어온다. 초과밀 인구 때문에 이렇게 운행하지 않으면 역이 사람으로 미어터질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러다가 언제 한번 큰일 나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걷기는 또 어떤가. 보도의 주인공은 차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런데 이 보도는 ‘점령 차’에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걸어가라는 것인지, 도보 전체를 가로막은 차를 거의 매일 만난다. 차도로 걸어가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건널목에서의 그 공포란…. 건널목에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차가 속도를 멈춰야 하지만, 한국의 룰은 항상 ‘차가 먼저’다. 강한 놈이 먼저, 다 먹는다는 약육강식 논리는 이렇게 우리 일상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건널목을 건너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옆의 미국 여자가 말을 건다. 자기 아버지가 “이런 건널목을 건너다 차에 치어 돌아가셨다”며 주의하란다. 건널목에 파란 불이 들어왔는데도 우회전하던 차가 치었다고 한다. 이렇듯 미국에서도 횡단보도 교통사고가 나지만, 그래도 보도·건널목은 철저히 ‘사람 몫’이라는 룰이 거의 철저하게 관철된다. 횡단보도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멈춰 서는 게 룰이고 상식이며, 이 상식은 지켜진다. 한국인이 말로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고 행동은 ‘철저히 한국식’으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횡단보도에서 겪는 한국인의 잔인함은 유별나다. 사람이 있어도, 아니 사람이 횡단보도에 이미 발을 들여놨어도 한국의 운전자들은 속도를 더 내 달려온다. 힘 있는 자가 주인이란 논리를 모두 실천하고 계시다. 행정 당국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횡포를 못 부리도록 법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청은 요즘 ‘시민의 몫’인 도보를 빼앗지 못해 안달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2020년까지 서울 120개 거리에 길이 120~1500m 길이의 실개천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물길이 들어설 자리는? 인도를 잘라내 만든다. 차도를 찢어내 물길을 만들면 난리가 나겠지만, 인도를 찢어내도 시민들은 거의 입을 다물고 있으니, 서울시청이 걷는 사람들을 ‘하찮은 인간들’ 취급할 만도 하다. 여기가 만약 미국이라면 이렇게는 일을 못한다. 사소한 변경 사항이라도 시청은 ‘시티홀 미팅(city hall meeting)’을 여러 차례 개최해 계획을 알리고, 시민들은 의견을 개진한다. 그러다 보니, 일 추진 속도는 굼벵이지만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일을 시청은 못 한다.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게 다 별 게 아니다. ‘사람이 먼저’ ‘사람이 소중하다’를 실천하는 일이다. ‘디자인 서울’로 도움을 받을 사람은 재선을 노리는 오세훈 시장, 돈을 버는 건설업자들, 그렇게 깨끗한 서울을 즐길 외국인인 것 같다. 점점 멋있어진다는 서울 거리는, 그래서 오늘도 내 마음에 모멸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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