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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병원을 왜 미국 선교회에 맡겼나

미국에 대한 고종·조선인의 짝사랑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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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1호 최영태⁄ 2010.03.15 15:49:30

국립병원인 제중원의 운영이 미국 북장로회에 맡겨진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짝사랑, 그리고 알렌에 대한 고종의 개인적 친밀감이 작용했다. 당시 조선에서 미국은 최고 인기 나라 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러시아는 남하하고 일본은 북상하는 와중에서 한반도에 대해 전통적으로 지배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나라가 ‘조선에서 여러 열강이 세력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청나라 이외에는 다른 나라들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갖기 못하게 한다’는 외교적 작전이 크게 작용했다. 청나라의 이런 입장은 1880년에 수신사로 일본을 견학해 일본의 국력에 깜짝 놀란 김홍집에게 주일본 청국 공사관의 참사관 황준헌이 자신의 저술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전달하면서 본격화된다. 이 책은 조선이 살아나는 길을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으로 정리했다. 청나라에 기대면서 일본·미국과 손을 잡아야 러시아·일본의 야욕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중국의 전통적 외교전략인 이이제이(以夷制夷)가 표현된 것이며, 주일본 청국 공사관은 자신의 책략을 ‘조선이 살아날 방책’이라며 넌지시 건네준 것이었다. <조선책략>의 내용이 알려지자, 국제 정서에 무지했던 조선에선 큰 반향이 일어났으며, 수구 세력은 외세를 물리쳐야 한다면서 대대적인 위정척사(衛正斥邪, 바름을 지키고 사악함을 척결함)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이런 와중에서 왕조를 지키려는 고종은 무서운 청나라의 지배력에 대항하기 위해 때로 러시아 또는 일본과 부분적으로 손을 잡으면서 저항했고, ‘식민지 지배를 겪었으며, 조선 땅에 영토적 야욕이 없을 것이 분명한’ 미국에 맹목에 가까운 사랑을 보냈다. 그러나 고종을 비롯한 조선인들의 ‘미국 사랑’은 짝사랑에 불과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당시 미국은 유럽의 열강에 대항할 만한 군사력이 없었으며,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사는 오로지 ‘장사’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고종과 조선 사람들은 “미국은 한반도에 영토 야망이 없어 러시아·일본의 야망을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짝사랑했지만, 미국은 한반도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김 교수는 “당시 미국은 일본을 발판 삼아 중국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했을 뿐이며, 조선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는 조선에서는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일부 광물 자원 말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종은 미국 북장로회에 국립병원의 운영을 맡김으로써 미국에 혜택을 주고, 이러한 시혜를 통해 미국의 지원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는 조선을 도울 실력도, 의지도 없었다. 알렌을 필두로 하는 선교사의 행렬은 오로지 기독교 선교를 위한 것이었으며, 선교를 위해서는 의료가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고종이 알렌에게 병원 운영을 맡긴 데는 갑신정변(1884년) 당시 자객에게 찔려 죽을 고비에 처한 민영익을 알렌이 외과수술로 살려난 데도 이유가 있다. 갑신정변 당시 24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하는 민씨 세력의 떠오르는 중심이었던 민영익을 알렌이 ‘신묘한 의술’로 살려냄으로써 고종의 전폭적인 사랑을 알렌이 받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의 칼날에 세상을 떠난 뒤, 고종은 언제라도 일본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살았다. 그리고 이런 공포 속에서 그는 알렌 등 미국인 선교사에게 크게 의존했다. 알렌에 대한 고종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렌 등 선교사들이 고종의 식사를 마련했다는 일화에서도 드러난다고 김상태 교수는 전했다. 궁중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들도 일본 세력에게 매수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 고종은, 선교사가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철가방에 자물쇠를 채워 궁중으로 들고 들어가 고종이 보는 앞에서 자물쇠를 따 꺼내놓아야 안심하고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고립무원 상태의 궁궐에서 느꼈을 그의 고독과 공포가 느껴지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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