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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능력 높이면서 힘든 일 시켜야 몰입”

“신뢰 낮으면 사내정치 횡행”…몰입경영의 과제와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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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7호 최영태⁄ 2010.04.26 15:51:02

<신뢰의 속도>란 저서를 내놓은 스티븐 코비는 “낮은 신뢰는 관료주의를 낳는다. 신뢰의 반대말은 정치다”라고 밝혔다. 서로 믿지 못하면 결국 관료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정치가 최고의 가치로 떠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역시 정치가 최고’라는 말이 영원한 진리가 된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정치는 단지 여의도에 머무는 게 아니다. 신뢰도가 낮은 한국의 직장 사무실에선 이른바 ‘사내 정치’가 판을 치는 경우가 많다. 줄서기가 승진 여부를 결정하고, ‘일은 못해도 사내 정치를 잘해야 출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내 정치는 직원들이 일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최근 국제 컨설팅 업체 타워스 왓슨의 조사에선 한국 직장인의 94%는 ‘일에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딴전을 피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에 몰입하는 ‘바보’보다는 적당히 일하면서 사내 정치 동향에 눈치가 빠르거나,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태도가 만연돼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몰입경영 전문가인 미국의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저서 <몰입의 경영>에서 직원들이 직장에서 완전히 몰입해 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펼쳐 보였다. 그는 직장 내 몰입이 “과제와 개인의 능력이 모두 높으면서도 대등한 수준일 때 가장 잘 나타난다”고 했다. 직원의 능력과 비교할 때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쉬운 과제를 내주면 몰입이 발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서로 믿는 직장’의 반대편에 ‘정치하는 직장’이 존재 경영층이 직원들을 믿고 격려해야 몰입 근무 가능해져 실제로 미국 기업들을 조사해보니, 직장에서 최고의 몰입 근무가 이뤄졌던 시기는 대개 ‘회사가 위기 상황이었을 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태를 맞았지만 좌절부터 하지 않고 직원 전체가 이에 맞서며 난관을 뚫고 나갈 때 직원들은 ‘모든 규칙을 잊어버리며’ 일에 몰두했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잘한 규칙’은 사내 정치·관료주의가 판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제와 능력이 엇비슷해야 직장 내 몰입이 일어난다’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결론은 질 낮은 직원을 채용해 질 낮은 일을 맡기라는 소리가 아니다. 질 높은 직원을 채용해 그의 능력을 살짝 뛰어넘는 어려운 과제를 맡겨야 사내 정치를 잊고 일에 몰두하는 직장 환경이 갖춰진다는 소리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직원에 대한 교육, 직원 개개인의 능력 개발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직원의 능력을 높이려는 노력은 ‘직장 일과 개인 생활 사이의 균형’을 갖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에도 잘 들어맞는다.

‘몰입 근무’가 이뤄지면 시간개념이 달라진다고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말한다. 일에 몰입한 나머지,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가거나(“아니 벌써 퇴근 시간이야”라는 말이 나오도록), 아니면 시간이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매분·매초가 의미있는 행동으로 채워지기 때문). 근무시간에 맞춰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에 맞춰 시간이 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일의 내용에는 상관없이, 즉 일을 하건 안 하건 밤 9시가 넘도록 늦게까지 직장에 붙어 있도록 강제하는 한국의 일부 직장들은 정말 바보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일보다는 상사와의 눈맞춤이 더 중요한 회사는 바로 ‘낮은 신뢰 때문에 자잘한 규칙이 많이 생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몰입 근무 뒤에 근로자는 행복·자부심·실력의 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행복은 큰 목표를 향해 열심히 일하다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로서 나타나야만 한다”고 했고, “몰입 경험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과 자아를 망각하지만 그 후에는 자부심과 실력이 높아진다”고 책에서 밝혔다. 직장 전체로는 실적과 수익이, 직원 개개인에게는 행복과 실력이 각각 높아지는 결과다. 한국베링거잉겔하임, 10시~4시만 자리 지키는 근무제 운영 “이게 될까” 의심하던 직원도 “문제없고 생산성 높아져” 이런 ‘몰입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는 직원 각 개인의 노력보다 경영층의 의지가 중요하다. 경영층의 의지로 효과를 본 곳으로는 독일계 제약업체인 베링거잉겔하임 한국 지사가 꼽힌다. 이 업체의 사장 군터 라인케는 2008년부터 탄력근무제를 시작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없애고, 중요한 핵심 근무시간대(오전 10시~오후 4시)에만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제도다. 이렇게 제도를 바꾼 뒤, 직원들은 우선 출퇴근시간대에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핵심 시간대에는 몰두해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가족생활에 더 충실하거나 자기개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를 15년 간 다닌 한 직원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까,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아무 문제없이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놀랍다”고. 직장 일을 하는 데는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얼마나 몰입해 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증거다. 군터 사장은 이 제도를 택한 이유로 최근 중앙일보 칼럼(4월 16일자)에서 “한국 직장인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고, 2007년 한국스트레스학회의 연구 결과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95%로, 미국의 40%, 일본의 61%보다 굉장히 높다. 본인을 위해 쓰는 시간은 적고, 업무 스트레스는 많다. 무쇠로 만든 기계라도 기름칠 없이 쉬지 않고 돌리면 탈이 난다. 일은 오래 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대다수의 최고경영자(CEO)가 훌륭한 경영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은 휴식이나 자기관리, 가족에 있다”고 밝혔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몰입 근무는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위치한 레저용품 제조업체 ‘파타고니아’ 직원들은 파도가 멋진 날이면 언제든 근무시간 중에 바다에 뛰어들어 서핑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세계적 서커스 공연단 ‘시르크 드 솔레유’는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한 환경에서 단원과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학교와 식당을 ‘들고’ 다닌다. 서커스가 열리는 지역에 바로 학교와 식당이 설치되고 동일한 선생님과 식당 직원이 근무해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인에겐 꿈 같은 소리로 들리는 일들이지만, 직원들이 몰입 근무를 할 수 있도록 경영자가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선진국 수준의 생산성 향상은 이뤄질 수 없음을 이런 사례들은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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