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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스토리 산업’이 꽃피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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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8호 최영태⁄ 2010.05.03 15:43:57

최영태 편집국장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1723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해리포터’ ‘한국형 아바타’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계를 휩쓴 해리포터나 아바타 같은 스토리(이야기)를 우리도 개발해야 21세기 콘텐츠 산업에서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반가운 소식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여류 소설가가 쓴 작품 하나로 전 세계에서 308조 원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한국인이 듣기 좋아하는, ‘한 사람의 머리가 국민을 먹여 살리는’ 예라고 할 만하다. 콘텐츠진흥원의 사업이 좋은 성과를 내길 바라면서 ‘스토리 산업’과 관련해 한마디 하고 싶다. 콘텐츠진흥원이 예로 든 해리 포터, 아바타, 그리고 여기다가 몇 년 전 역시 세계적 히트를 친 ‘반지의 제왕’까지 합친다면, 이들 모두는 영미 문화권에서 나온 작품들이며, 할리우드라는 변수가 큰 작용을 했다. 그래서 콘텐츠진흥원의 전략도 ‘할리우드를 통한 히트’를 추구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스토리 개발 → 할리우드를 통한 미국에서의 히트 → 전 세계에 한국 스토리의 수출이란 전략이 짜였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이런 전략 역시 하나의 ‘스토리’다)이 크게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몇 년 전 심형래 감독이 영화 ‘디워’를 만들어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였다. ‘나라를 두 동강 낸다’고 할 정도로 토론이 뜨거웠지만, 결과는 별 볼일 없었다. 뜨거운 논쟁에 비한다면 정작 영화 ‘디워’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통한 세계 진출’ 전략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 더 먼저 생각할 것은, 미국을 통하든, 한국에서 직접 나가든, ‘스토리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하고 싶다. 앞에서 해리 포터, 아바타, 반지의 제왕이 영국산 또는 미국산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뿌리에는 고대 그리스까지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 기원 전 8세기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유럽 최고의 서사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벌써 역사적 사실에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한 ‘환상문학’이었다. 이런 계보가 지금까지 거의 3000년 이어지면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해리 포터 등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반면, 우리의 동양은 어떤가. 엄청난 상상의 세상을 그린 ‘장자(莊子)’의 세계도 존재하지만, 이런 환상세계는 처음부터 유교를 필두로 하는 ‘현실사상’에 압도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작품’이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지만, 동양에서는 비슷한 자리를 정치론을 갈파한 ‘논어’, 그리고 엄밀한 역사를 기록한 ‘사기(史記)’가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상상력의 세계에 관한 한 동양은 서양보다 토양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반영이라도 하듯, 동양권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고 하면 대개 서양적 세계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이미 여러 번 나왔다. 예컨대, 환상 게임을 만들라고 하면 등장인물의 생김새나 이름이 서양식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동양적 환상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서양적 환상 세계로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되는 식이다. 해리 포터 등에 필적하는 ‘코리안 스토리’를 만들려면, ‘동양적 환상세계’의 뿌리랄까, 재료를 먼저 풍부하게 찾아내는 작업이 먼저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즉, ‘스토리 산업’에 대한 투자와 함께 고전을 파헤치는 인문학자·고전학자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한동안 ‘인문학의 몰락’이 화제가 됐지만, ‘아바타 이후 시대’에는 그렇지만도 않다. 인문학·고전학의 바탕이 없으면, 스토리 산업은 꽃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은 안 생겨도 할 일은 한다’는 인문학자들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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