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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귀를 찢어버리고 말겠다는 한국 선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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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2호 최영태⁄ 2010.05.31 17:09:18

최영태 편집국장 오랜만에 보는 한국의 선거판은 무섭다. 전철에서 내려 역전 광장으로 나서는 순간, 이런 게 지옥이 아닐까 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고함과 노래가 뒤섞이고, 전광판과 플래카드가 날리고…. 플래카드와 전광판으로는 눈을 찢고, 확성기와 가사를 바꾼 노래로는 귀를 찢어버리고야 말겠다는 광란의 현장이 바로 한국의 선거판인 것 같다. 도대체 이렇게 선거를 치러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번 지방선거처럼 여러 사람을 뽑아야 하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많은 경우(자기 판단 아래 투표를 하는 사람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정당을 근거로 투표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책임 있는 기관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지역 유권자들에게 알려 주는 게 가장 좋다. 그리고 서구 선진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은 각 지역의 유력 신문 등 언론들이다. 언론(미디어)이란 바로 ‘매개하는 매체’ 아니던가? 한국 언론들도 선거 때면 후보를 소개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은 무의미하다. ‘소개할 테니 판단은 너희들이 하라’는 식인데, 먹고 살기 바쁜,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최장이라는 한국인에게 후보 분석할 시간은 있는가? 선거판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왜 도입 않는가? 그래서 미국 유력 신문들은 선거철이 되면, 큰 선거건 작은 선거건, ‘우리 신문은 이 후보를 지지한다. 지지 이유는 이렇다’고 소상히 밝힌다. “편파적 지지를 한다”는 시비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런 시비를 받는 것도 신문사의 책임이다. 그리고 선거 결과를 보면 대개 유력 신문들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된다. 그만큼 양심적으로, 또 솔직히 언론사의 입장을 밝혔고, 그런 태도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언론을 통한 선거’가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에서 선거철이라고 거리 풍경이나 소음의 크기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달라지는 것이라곤 신문 지면의 모양(후보들을 소개하면서, 그 언론사가 지지하는 후보를 선정·발표하기 때문에), 그리고 TV에 선거광고가 늘어나는 정도다.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도, 확성기를 단 차량도 없고, 눈을 찢고야 말겠다는 플래카드의 횡포도 있을 수 없다. 과거 한국에서는 유세 차량이 너무 시끄럽다며 행인들이 유세 차량에 돌을 던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지금 한국 같은 선거판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총격 사고가 날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귀와 눈을 망쳐놓겠다는 사람에 대한 대처 방법은 총 말고는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이렇게 보통사람들의 눈과 귀를 찢어도 되는 나라인가? 선거법에 별별 규제가 다 있지만, 소음과 소란에 대한 규제는 없는 모양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오전 8시∼오후 9시 사이 낮 시간에는 유세 차량들이 뭔 짓을 해도 상관없고, 소리 크기에 대한 규제도 없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이 나라의 주인은 정말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인가, 아니면 유권자의 눈과 귀를 찢더라도 권력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힘 있는 사람들인가? 나의 눈과 귀를 망치고, 그래서 내 정신과 몸을 황폐화시키고야 말겠다는 한국의 선거판과 그 선거판에서 뛰는 후보들은 정말 무섭다. 하루라도 빨리 선거가 끝날 날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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