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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는 정말 ‘허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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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7호 최영태⁄ 2010.07.05 16:11:18

허정무 감독이 결국 사의를 표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인터넷을 도배한 ‘허접무’ 별명이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허 감독을 비난하는 인터넷 글의 논리는 대부분 ‘사상 최고의 멤버를 갖고 8강·4강까지 갈 수 있었는데, 허 감독의 잘못으로 16강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 한국 축구는 감독만 바꾸면 당장 내일이라도 국제대회 1등을 무난히 할 듯한 기세다. 네티즌의 이런 비난 속에서도 한국 팀은 ‘원정 최초 16강’이란 기록을 세우고 이번 월드컵을 끝냈다. 그리고 한국 팀이 짐을 싸는 순간, 인터넷에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팀을 가장 비난한 나라는 어디일까요?’라는 질문형 글이 떴고, 순식간에 수십만 명이 이 글을 보면서 수만 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글의 결론은 그 어떤 나라도 아니고 바로 한국이 한국 팀을 가장 많이 비난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경기를 했던 나라들은 물론, 아시아 대표를 다투는 경쟁 관계의 일본도 한국인만큼 한국 팀을 공격하지는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이 글에 수만 명이 지지표를 던졌다는 사실에서 네티즌들의 지치지도 않는 허 감독 비난에 대다수가 지겨워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비난의 대홍수를 보면서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어이없는 일’이 잘 일어나는 나라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사람들이 잘 놀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뒤따르는 순서가 있다. 바로 ‘잘못한 놈’을 잡아내는 일이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잡아내고, 회사 돈을 빼돌린 사장·임원을 찾아내 처벌하는 일이다. 대개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아 문제지만, 간혹 처벌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쁜 놈’을 잡아넣어도 똑같은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놀란다. “분명히 잡아넣었는데 왜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날까”라는 의아함이다. 잡아넣었어도 문제가 계속되는 까닭은 문제가 사람에 있지 않고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판의 돈 문제라면 한국 정치가 돌아가는 방식,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 속에 ‘돈 문제’가 구조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 정치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나쁜 놈’을 잡아넣는 데만 열중하고 시스템을 고칠 생각은 안 한다. 사람 잡아넣는 것은 쉽고, 시스템을 고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 팀 감독·선수에 대한 비난도 같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시스템적으로 한국 축구는 월드컵 8강·4강을 쉽게 넘볼 수 있을 정도인가. 유럽·남미의 축구 강호 국민들에게 ‘스포츠=축구’다. 축구밖에 모르고, 축구 이외의 스포츠는 대중적이지 않은 구조다. 그런 만큼 축구에 대한 인적투자·물량공세가 엄청나다. 한국이 그런 나라인가? 한국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는 야구고, 축구는 국제 경기 때나 반짝 인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 나라에서 ‘선수들 실력은 세계 최고인데, 감독의 잘못 때문에 8강·4강에 못 갔다’고 집단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것 역시 ‘어이없는 한국적 코미디’의 한 단면이다. 제발 사람 탓(쉽고 재미있지만 결과는 없는 허접스런 일) 좀 그만 하고, 시스템 고칠 생각(어렵고 힘들지만 성과가 약속되는 일)부터 좀 하자. 글·최영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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