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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실거리는 젊은이가 좋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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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3호 최영태⁄ 2010.08.16 14:41:19

최영태 편집국장 한국 특유의 풍경이 있다. 굽실거리는 젊은이다. 마트나 주차장 같은 데 가면 항상 굽실거리는 젊은이가 있다. 허우대가 멀쩡한 청년, 아리따운 아가씨가 마트에 드나드는 손님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어 ‘배꼽인사’를 한다. 주차장에서는 하루 종일 매연을 맡으며 차량 안내를 하고.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게 이런 모습이 너무 싫다고 하니 ‘별 이상한 인간 다 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인사하는 게 왜 싫냐?”는 반응이다. 그래도 “나는 싫다”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그런 일이나 시키면서 얄팍한 존경을 받으려는 한국 성인들의 태도가 무지막지하고, 하루 종일 거짓 웃음을 지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신세가 고달파 보여 싫다.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는 최대한 즐거운 듯 손님을 맞는 것이 ‘감정노동’의 요체라지만, 이렇게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사회가 나는 싫다. 고객을 맞는 감정노동 차원에서 가장 혹독한 교육 또는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마 일본과 한국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선진국의 감정노동 강도를 보자. 흔히 하는 말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창구 직원들 태도는 ‘살벌할’ 정도다. 한번은 한국의 구청쯤 되는 미국의 카운티 청사에 가서 자동차 등기를 하려는데, 오후 5시가 다 돼 아슬아슬했다. 내 차례가 돼 서류를 내미는데, “오늘 업무 끝”이라며 내일 오란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 뒤에 사람도 없고 내가 마지막이니 한 5분만 더 일하면 될 텐데, 내일 오란다. 욕이 나온다. 씩씩거리며 집에 왔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태도가 더 옳은 태도라는 생각도 든다. 입장을 바꿔 내가 그 공무원이라면, 인정에 따라 줄 선 사람을 한두 사람씩 더 처리해주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5시에서 5시30분, 6시로 늦어지기 쉽고, 이런 관행을 만들면 동료 전체에게 폐를 끼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1등이라는 대형 할인마트에는 “고객님”이란 존댓말이 난무한다. 미국 1등인 월마트에는 “디어 커스터머(Dear, customer)”가 없다. 굽실거리는 직원은 없지만, 물건 값은 싸다. 그래서 월마트에는 항상 손님이 넘친다. 한국 대형 마트에서 어떤 물건은 싸지만, 어떤 물건은 싸지 않다. 절하는 대신에 물건 값을 더 깎아주고, 더 다양한 물건을 갖다 놓고, 반품이나 더 잘 해주면 좋으련만…. 미국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8달러 정도 하던 2005년쯤, 중고생들이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로 시간당 15~20달러를 받는 걸 봤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돈을 줬다. 당시 미국 경제가 좋았던 사정도 있지만, 학부모나 학교 선배가 그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줬다. 미국 젊은이들은 대개 밝고 명랑하고 건강하다. 밤 10시 반에 학교 문을 나서는 한국 학생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주와 절망이 없다. 한국 TV를 켜면 항상 ‘더 큰 대한민국’이란 광고 구호가 나온다. 미국 광고에 ‘더 큰 USA’란 문구는 없다. 어떤 나라 젊은이 앞에 더 큰 미래가 있는지 궁금하다. 본보의 칼럼니스트 박혜성 산부인과 의사는 이번 호 칼럼에서 ‘마음이 빠진 오르가슴은 허전하고, 오히려 사람을 더욱 갈증 나게 할 수 있다.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그렇다’고 썼다. 말을 바꿔본다. ‘마음이 담긴 인사는 뿌듯하지만, 증오심을 숨긴 배꼽인사는 불쾌하다. 한국 어른들은 안 그런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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