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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천하의 칼’로 자기가 먹을 사과만 깎는 한국 지도층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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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3호 최영태⁄ 2010.10.25 13:59:36

최영태 편집국장 도서관의 새 책 코너에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 눈에 띄었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최종덕 지음)였다. 한국의 과학자-철학자들이 진화론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진화론 정리나 한번 해볼까”란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모르는 내용도 있었다. 이래서 아는 척 하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또한 그간 진화론이라면 외국인이 쓴 책을 주로 읽었는데 우리 학자들이, 우리 입장에서 진화론에 대한 성과를 내놓았다는 점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주 놀라운 부분은 동양철학과 진화론의 유사성을 다룬 마지막 부분이었다. 젊은 동양철학자 김시천은 흥미로운 통찰을 내놨다. 진화론이 동양 철학과 맞닿는다는 주장이었다. 서양인의 사고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직선적-종말론적 역사관이다. 역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우리는 계속 발전해가면서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 이 역사관이다. 태초에 창조가 있었고 예수가 재림하는 날 역사가 끝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대표격이다. 하지만 동양철학에는 이런 종말론이 없다. 시작도 없지만 끝도 없다는 게 동양적 역사관이기에. 이런 측면에서 시작과 끝에 대한 생각 없이 ‘끊임없는 변이’를 주장한 다윈의 진화론은 수천 년 이어온 서양의 전통적 세계관에 확실하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며, 동양철학과 통할 수 있다는 게 김시천과 이 책에 등장한 학자들의 결론이다. 맞는 말 같다. 김시천의 논리에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동양의 고전을 읽는 여태까지의 방법이 잘못 됐다는 지적이었다. 동양 최고의 고전 ‘논어’를 예로 들어보자. 여태까지 많은 한국인이 ‘논어’를 읽으면서 “아, 내가 대인(大人), 군자(君子)가 돼야지”라고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모두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다. 보통 사람은 논어를 안 읽어도 되고, 사회지도층, 고위공무원, 정치인, 기업소유주가 ‘논어’를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래 동양철학은 황제를 위한, 황제 아래서 지배층이 사는 방식을 논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하며’ ‘때에 맞춰 공부하고 실행하면 즐겁지 아니하냐’ ‘사람들이 몰라 줘도 화내지 말고’ ‘멀리서 정치적 동지가 나를 찾아오면 얼마나 기쁘냐’ 등 논어의 주옥 같은 말들이 모두 사회지도층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논어가 보통사람에 주는 교훈을 그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평범하게 사는 소인(小人)과 천하를 다스릴 대인(大人)은 근본이 다르다. 소인은 식칼로 자기가 먹을 맛난 사과를 깎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천하를 재단할 큰칼을 쥔 자들이, 천하를 재단하기는커녕 자신과 자신의 자식이 먹을 맛난 사과만 입맛 다시며 깎아서는 안 된다. 우리 소인배들이 할 일은 천하를 재단할 칼로 자기가 먹을 사과만 깎는 사람들과 절교하고 그들을 파면시키는 것이다’라고. 사회 지도층이 자기가 먹을 사과만 깎는 모습을 하루도 쉬지 않고 보는 소인배 입장에서 깊이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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