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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박사의 음악 이야기]오펜바흐-샤를르 구노-조르주 비제

프랑스 음악 꽃피운 구노, 오펜바흐, 비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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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9호 편집팀⁄ 2010.12.06 14:15:51

이종구 박사 (이종구심장크리닉 원장) 샤를르 구노의 어머니는 파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였으며 아버지는 화가였다. 어머니로부터 첫 피아노 레슨을 받은 구노는 어린 시절 파리음악원으로 진학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칸타타 ‘페르디낭(Ferdinand)’을 작곡하고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수상하여 3년 간 이탈리아로 건너가 종교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1854년에 ‘성 체치리아 미사’를 작곡해 이름을 알렸다. 1851년에는 그의 첫 오페라 ‘사포(Sapho)’를 작곡하였으나 흥행에 실패하였다. 1855년에도 2편의 심포니를 작곡했는데 구노의 ‘심포니 1번’은 조르주 비제가 그의 유명한 작품 ‘심포니 in C’를 작곡하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다. 첫 오페라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마흔한 살이 되던 해인 1859년에 작곡한 ‘파우스트(Faust)’는 대성공이었다. 괴테의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바흐의 영향을 받아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성악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867년에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작곡하였으나 ‘파우스트’만큼의 성공은 이루어내지 못했다. 노년에 이르러 그는 다시 종교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했는데 ‘교향 찬송가’는 1929년에 바티칸의 애국가로 채택되었다. 이후 1888년에 프랑스의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수상하고 일흔다섯에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호프만의 이야기’로 유명한 자크 오펜바흐 유태인인 오펜바흐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음악인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오페레타(Operetta) 또는 희극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으며, 그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Orpheus in the Underworld)’와 ‘아름다운 엘렌(La belle Helen)’은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1870년에 프랑스와 독일(프러시아)이 전쟁에 들어가자 그는 독일로 망명하고 프랑스에서 그의 음악은 잊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훗날 프랑스는 그의 음악을 다시 받아들여 크게 인기를 얻었으며 그가 말년에 작곡한 ‘호프만의 이야기’는 전세계인들이 애호하는 오페라가 되었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Napoleon Ⅲ)의 제2제국 시대에 크게 인기를 얻은 오펜바흐는 1870년에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고 제2제국이 막을 내리자 프랑스의 신문들은 그를 비스마르크의 첩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독일의 언론은 그를 조국의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은 스페인과 이태리를 떠돌아다녔다. 프랑스의 언론은 그가 희극 오페라를 통해 프랑스 황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프랑스의 군대를 희롱했다고 비난했다. 더불어 역사가들은 오펜바흐의 풍자가 프랑스 제2제국이 멸망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도 평가하기도 했다. 1876년 오펜바흐는 뉴욕에서 자신의 오페레타 2편을 지휘했으며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40회의 콘서트를 지휘했다. 1938년에는 마뉘엘 로장탈(Manuel Rosenthal)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를 주제로 발레 ‘쾌활한 파리인(Gaite Parisienne)’을 작곡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호프만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뱃노래 역시 그 당시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다. 오펜바흐는 예순한 살에 사망하여 프랑스의 많은 예술인들과 함께 몽마르트 묘지에 안치되었다. ‘카르멘’을 세상에 내놓은 조르주 비제 오페라 ‘카르멘’으로 유명한 비제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성악가였다. 그는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비제는 ‘카르멘’을 작곡한 후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비제는 열일곱 살에 구노의 음악(심포니 1번)에 자극을 받아 ‘심포니 in C’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1933년에 와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1857년에 1막 오페라 ‘의사의 기적’을 작곡하여 로마 대상을 받은 뒤 이탈리아에서 3년 간 공부했다. 1858~1859년에는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인 ‘돈 프로코피오’를 작곡했으며 그의 유일한 성가 ‘테데움’을 작곡했지만 입상에는 실패하고 1971년에서야 출판되었다.

비제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은 메리메(Prosper Merimee)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1875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3개월 동안 37회나 공연되었지만 ‘카르멘’은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드뷔시, 생상스(Camille Saint-Saens),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등 거장들이 극찬했으며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가 되었다. 비제는 ‘카르멘’의 큰 성공을 보기 전에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파리 근교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쇼팽과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같은 거장들과 같이 파리의 페르 라세르에 안장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음악으로 대작 발레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1967년에는 볼쇼이 발레단이 ‘카르멘 스위트’를 만들었으며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롤랑 프티(Roland Petit)가 발레 ‘아를르의 여인’을, 미국에서는 러시아 출신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심포니 in C’를 창작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2010년에 7월에는 국립발레단이 서울에서 비제 음악과 롤랑 프티의 발레 ‘아를르의 여인’과 ‘카르멘’을 공연하여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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