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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사자’로 키운 CEO 목숨건 정면돌파…성공신화 활짝

재보험 세계 10위 기업 코리안리 박종원 대표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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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6호 성승제⁄ 2011.06.13 14:34:02

“Rise and rise again until lambs become lions(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 영화 ‘로빈후드’의 주인공이 한 대사다. 이 영화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프랑스의 침략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낸 내용을 담은 것으로 코리안리 박종원 대표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대목이다. 외환위기 시절 3818억원의 영업 손실, 2800억원의 당기손실을 기록해 공적자금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하는 파산직전의 코리안리를 10여년 만에 재보험업계 아시아 1위, 세계 10위(2010년 기준)로 끌어올린 박 대표의 경영 마인드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실적은 사상 첫 1000억 원을 훌쩍 넘은 또 하나의 ‘기록’을 창조, 줄곳 화제의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코리안리 본사 11층에서 만난 박 대표의 첫 인상은 편안하면서도 다소 카리스마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활짝 웃는 모습에서 야성의 맹수처럼 살아있는 눈빛이 보였고 첫 만남 이후 어색한 기운이 감돌기도 전에 대뜸 “CEO(최고경영자)들이 원칙과 투명 경영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느냐”며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답변을 기다리는 기자 앞에 박 대표가 ‘껄껄’ 웃으며 던지는 말은 뜬금없는 ‘목숨’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목숨이란 내가 연임하는 CEO의 생명을 뜻한다. 여기를 발판으로 다음 자리를 노리고 다른 곳을 가려고 한다면 목숨을 바칠 수 없다. 다음 자리는 안가도 좋다는 그런 이기심을 빼야 원칙과 투명한 경영이 가능한 진정한 CEO가 될 수 있다” 경제관료 출신에서 지금은 금융계 최초로 5연임에 성공하고 지금의 탄탄한 회사를 있게 한 그의 경영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 되는게 어디 있어”…야성에서 해답 찾다 코리안리는 1963년 정부 소유의 공사 형태로 설립됐다. 이후 1969년 상장된 뒤 1978년 민영화 했다. 당시 대한재보험 회사였는데 2002년 박 대표 경영 스타일에 맞춰 지금의 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재보험이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다. 보험사는 보험사인데 개인 가입자가 아닌 보험사를 상대로 영업을 한다. 즉, 보험의 보험사라고 이해하면 쉽다. 박 대표와 코리안리의 인연도 심상치 않았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25년간 재정경제부에 근무한 그는 동기보다 승진도 빨라 말 그대로 평탄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 생활의 무료함을 느꼈고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때마침 재보험사인 코리안리 CEO 자리에 제안이 왔다. 주변에서는 외환위기 파도가 휘몰아치는데 공무원 직책을 버리고 민간 기업에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취임을 일주일 앞두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담당 상무로부터 코리안리의 경영 실태를 알아본 결과 ‘영업손실이 3818억원’, ‘예상 당기손실은 2800억원’이라는 것. 1년 안에 공적자금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하는 파산 직전인 상황이었다. 특히 코리안리는 3월에 회기가 끝나는 3월 결산법인이다. 박 대표가 7월에 취임하면서 주어진 시간은 내년 3월까지 불과 8개월 남 짓. 보험업계를 잘 아는 주변 인사들에게 회생가능성을 물어봤지만 모두 “힘들다”는 답변뿐이었다. 어떤 지인은 “아직 취임전이니까 다시 생각하라”는 조언까지 할 정도였다. “낙하산 인사라는 오명만 얻고 길거리에 나 앉는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나 만감이 교차 했습니다” 박 대표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더 암담한 일은 공무원 이미지를 벗지 못한 직원들의 마인드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고심 끝에 취임을 결정했지만 김 대표가 본 코리안리는 직원들의 유대감이나 공동체의식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회사는 회사, 나는 나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박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임기 3년을 채우고 스쳐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컸다. “조직 내 인간형은 크게 양(羊) 타입과 고슴도치 타입으로 결정되는데 코리안리는 고슴도치만 우글거렸습니다” 김 대표가 취임 이후 느낀 코리안리의 현 주소였다. 일반적으로 양은 사방이 훤히 뚫린 벌판에서 풀을 뜯어 먹어야 하기 때문에 천적의 기습에 늘 노출된다. 100마리 이상 무리 지어 이동하는 양의 행동은 적의 공격에서 종을 지켜내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정 반대다. 적이 가까이 오면 몸을 웅크려 밤송이처럼 만든다. 태생적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다 즉, 코리안리는 부실이라는 천적의 기습을 막기 위해 뭉쳐야 하는데, 고질적인 공무원 의식과 경쟁 없는 시장에서 지내오면서 무사안일이라는 질병이 침투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는 취임 이듬해 벌어진다. “0%가 올해의 목표입니다” 사업계획을 보고받는데 화재보험부 등 대부분의 부서가 어렵다며 버젓이 가져온 목표치였다. 이어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라 더 이상 성장이 어렵습니다”라는 변명이 이어졌다. 박 대표는 “그렇게 힘들면 현실과 타협할 것 없이 아예 부서를 없애버려야지요. 각 부서별로 연간 사업계획을 10% 성장을 가정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보고하라”고 호통을 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야성에 눈을 떴고 직원들에게 시종일관 ‘야성’을 깨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들었다. 290여명의 인원을 20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대리는 15%, 과장급 이상 간부는 50%까지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피라미드로 구조로 바꾸는 방안이었다. 당연히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 노조는 물론이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여야 할 인사부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물러서거나 타협할 마음이 없었다. ‘원칙’과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으면 코리안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부 직원들과 노조의 반대에도 구조조정 테스크포스(TF)팀은 원안대로 진행됐고 곧바로 1998년 사업목표를 10% 성장으로 수정했다. 박 대표는 가장 먼저 ‘심사분석보고회’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보고회는 분기별로 열리는 정례 회의로 각 부서가 내놓은 목표와 실적을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자리다. 목표를 달성한 부서는 포상을, 미달된 부서는 가차 없이 채찍질을 가했다. 또 부서 간 칸막이 허물기, 실패에서 배우기, 과장급 이상 연봉제 도입, 전직원 간부회의 참석, 제로베이스 신상품 개발에서부터 축제경영, 등산경영 등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숨가쁜 변화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 당기순이익 294억원으로 전년대비 무려 7배나 급증했다. 2001년에는 매년 500억원에서 790억원대를 기록했고 취임당시 7400원인 주가는 8일 현재 1만3500원으로 껑충 뛰었다. 전율 느낀 전 직원 백두대간 성공 계기 정면돌파로 위기극복, 바닥서 탈출 “그 양반 대단한 사람이지. 공보관 시절에도 부드럽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양반이었어. 원칙과 소신이 분명한 인물이었지.” 재정부 공보관 시절 김 대표와의 인연을 맺었던 선배 기자들의 평가다. 그를 아는 금융권 지인들 역시 선배 기자들과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다. 지금의 코리안리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김 대표가 집필한 ‘야성으로 승부하라’는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소신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됐다. 야성+자신감(등산)=코리안리 발전이었다. 물론 아내와 3형제의 아들을 향한 애틋한 사랑도 포함돼 있었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야성과 등산이 주류였다. 이는 결국 코리안리를 세계적 재보험 회사로 만드는 목표였다. 또한 고정관념 철폐였다. 가족의 반대에 부딪칠까봐 입대 3일전에 해병대에 지원했다고 알리는 내용은 통쾌함을 주기도 했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된 계기도 바로 해병대에서 느끼는 ‘생존게임’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소신과 원칙경영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경영전략이다. 구조조정 역시 외부의 청탁을 모두 거절하고 소신과 원칙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 대표가 강조한 야성론은 맹수의 그것과 닮았다. 생존본능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에도, 강력한 태양이 하루 종일 머리위에 내리쬐는 혹서에도, 물 한 방울이 귀하디 귀한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근성. 수 천수만년 동안 끈질기게 자신의 종족을 지켜내도록 한 야성은 자연에서만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일맥상통한다는 논리다. 그가 모든 직원들과 야성을 깨우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백두대간 등산이다. 처음에는 검단산, 북한산 같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산을 시작해 이제는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속리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백두대간의 명산 중 명산으로 꼽히는 산을 모두 정복했다. 물론 예외자는 없었다. 남자고 여자고 전 직원들이 모두 참여했다. 남한지역 670키로미터 가운데 입산통제 지역을 제외하고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 구간을 선택, 2004년부터 매년 2박3일간 진행했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직원들의 야성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250여명의 직원들이 모여 당기순이익 1000억원을 훌쩍 넘었고 아직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0년 기준 전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할 예정이다. 그의 목표는 2020년까지 세계 5위안에 드는 것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코리안리를 이제는 금융권 최초로 세계 10위권 안에 들고, 아시아 1위로 성장한 글로벌 금융사로 발돋움 한 것이다. + 박종원 대표 일문일답

뙤약볕 태양이 내리쬐는 6월 1일. 다행스럽게 이날은 여느 여름보다 날씨가 다소 선선했다. 약속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 박 대표는 보자마자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반갑다는 표현의 악수를 청했다. 웃는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고 공보관 출신답게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집무실은 큰 원탁을 중심으로 벽에는 대형 그림이 있었고 야생초 같은 화초. 박 대표의 과거 행적을 보여주는 상패와 도서 매대 등이 놓여 있었다. 코리안리 현안과 지인들의 가벼운 안부를 시작으로 약 1시간 20여분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처음에는 약 20여분의 가벼운 티타임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인터뷰보다는 박 대표의 강의로 바뀌어져 있었다.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큰 배움을 얻은 기분이었다. 나름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금융감독원과 부실 저축은행 사태를 시작으로 첫 인터뷰를 시작했다. - 최근 금감원과 저축은행 사태가 논란이 일고 있는데 금융권 CEO로써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보험업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의 설립은 서민들의 예금을 받아 대출해주기 위한 것인데 원칙을 벗어나 기업금융에 참여해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저축은행들이 M&A(인수·합병)하고 덩치가 커지면서 자산운영, 운영자금이 많아지면서 PF(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서민금융은 서민금융대로 운영해야 하는데 기업 PF까지 해서 문제가 된 것 같다.” - 해외 M&A 전략은? “아직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방향이 그렇다. 현재 실적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2010년 기준으로 세계 10위다.(2009년 기준 세계 11위) 2020년 목표는 세계 5위인데 이를 위해 외국계재보험회사를 인수하면 해외 선진국 기법과 정보를 가질 수 있다. 또 시너지 효과와 담보력도 높아져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방안을 만들 생각이다. 물론 M&A 매물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는 상태다.” - 해외시장 진출 방향은? “은행이나 증권 등 국내 금융권에서 세계5위에 진입한 회사는 없다. 현재 해외영업 포지션은 코리안리가 전체 영업의 20%에 달하는데 은행은 3% 미만이다. 대한민국 금융 글로벌화는 코리안리라고 보면 된다. 앞으로 해외시장 포지션을 늘리는데 주력할 것이다. 2015년 30%, 2020년까지 전 세계 절반인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중국시장에서 해외시장 영업이익은 10억불(1조원) 규모다. 10년 전 3500만불에서 30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또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에서 해외 재보험사 공동인수나 보험종목을 개발하는 공동 작전을 추진중이다. 아울러 일본의 토아리(TOARE)는 실적이 역전되면서 우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토아리와 함께 암보험 등을 같이 만들계획이다. 또 미국과 유럽시장 쪽도 진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재보험시장 마케팅 전략은? “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고 대학생 논문 공모제 등 젊은 층을 상대로 마케팅을 활발히 하고 있다. 대학가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고 브랜드도 상당히 있는 편이다.” - 신입사원 선발기준은? “공무만 잘하는 것은 필요 없다. 우선 기본적인 학습능력과 두 번째는 동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 된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영국의 이튼스쿨의 경우 영국 수상이 19명을 배출했다. 또 옥스퍼드 대학은 전체의 30%가 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성을 볼 때 지덕체(智德體)요구하지만 우리는 체덕지(體德智)를 가진 인물을 뽑는다. 먼저 정신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부해서 전문적 돼야 완벽해지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향후 목표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실적 목표는 모두 달성했고 비전2020 달성이 절반까지 와 있다. 앞으로 2015년 8조5000억원으로 세계 8위, 2020년 15조원의 실적으로 세계 5위권 안에 진입하는 것이 꿈이자 목표다. 그래서 세계적인 재보험사가 돼서 실력이나 인품이나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박종원 사장 ·1944년 경기 화성 ·1971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88년 미국 밴더빌트대 경영학 석사 ·1973년 행시 14회(재경) ·1989~1994년 재무부 결산관리-외자관리-재정융자과장 ·1997년 통계청 통계조사국장, 재경원 국세심판소 상임 심판관 ·1997년 재경부 공보관 ·1998년~ 코리안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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