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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사랑의 정치학’ - 22]혜안(慧眼)과 총이(聰耳), 그리고 정치

제대로 보고 듣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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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6호 박현준⁄ 2011.06.13 14:35:43

안명옥 차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정치에 필요한 덕목으로 ‘혜안’과 ‘총이’는 국민과 국가를 위한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주위에서 사람을 중요시하며 사물이 전하는 의미를 꿰뚫는 안목인 ‘혜안’과 그 어떤 의견도 경청하는 ‘총이’의 덕목…. 하긴 이 덕목은 모든 삶의 지혜여야 마땅하다. 총이와 혜안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사람 중심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모든 관계의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성찰은 유학 경험에 뿌리를 둔다. 영어 공부도 변변히 안 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겠다고 마음만 가득해 갔을 때의 까마득함이란 겪은 분들은 절절할 것이다. 아니 외국에 한 번이라도 다녀 온 분들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말 못하고, 못 듣고…. ‘아, 이것이 바로 장애인이구나’하고 느꼈다.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소리를 못 내고 못 듣는 것만이 장애가 아님을 절절히 느꼈다. 그 순간들에는 나야말로 장애인이었다. 들어도 들을 귀가 없고 소리는 낼 줄 알지만 말할 능력이 없는 것이 이렇게 답답할진대 정말 못 듣고 못 말하는 분들, 못 보는 분들의 안타까움은 형용할 길 없고 이해할 길 없는 고통이리라는 깨달음이 살과 뼈에 각인됐다.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비로소 어렴풋이 이해한 계기였다. 안타깝게도 참으로 뒤늦은 성찰이었다. 현실의 장애인들은 얼마나 힘들지 그 문제에 대해 큰 열정과 연민이 불타게 된 전기이기도 했다. 대학원에서의 수학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못 알아들어도 책과 밤새워 씨름하면 해결할 수 있었고, 강의를 녹음해 되풀이 듣는 것으로 학업 성적은 잘 유지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하고, 일하면서는 더더욱 절박했다. 환자나 동료 의사의 말을 정확히 못 알아들으면 생명을 그르치게 될 것이고, 내가 정확히 표현을 못해 의사나 간호사, 또 환자 등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하면 그 또한 생명에 절대적인 상해를 입히는 지름길임은 진실이었으므로…. 언제나 깨어 있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훈련의 기회였다. 그런 덕분에 영어 실력도 향상됐음은 물론이다. 혹독한 훈련 없이 얻어지는 결과는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세월이 가며 이 부분은 또 다른 이해로 다가왔다. 외국어가 아니라도 인간은 언제나 청각장애자이자, 말 못하는 농아일 수 있다는 사실. 이웃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못 듣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를 듣는 이가 이해 못하거나 내 뜻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장애를 경험한다. 성경에 나오는 장애인을 치료하는 예수님의 기적은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바르게 듣고 바르게 말하는 내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리라. 혜안과 총이. 이 두 가지가 삶에 중요한 덕목이 돼야 하는지 해를 거듭하며 매일 더 깨닫게 된다. 눈이 있지만 사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시각 장애인과 같고, 귀가 있되 그 뜻을 듣지 못하면 청각이 없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시력장애가 있는 장애인이 더 사물을 꿰뚫고 들을 수 있는 총명한 귀를 가지고 있고, 신체적으로 청력 장애가 있는 사람이 혜안과 총명한 영혼의 귀를 가지고 있다. 신체에 장애가 하나도 없는 멀쩡한 이들이 실상 더 장애인 경우가 많다.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언제나 정확히 보고 정확히 듣고 정확히 실행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정치가 국가의 모든 구성원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절대적 의무가 있을진대 정치인의 혜안과 총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정치인들, 국회-행정부의 최고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각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며, 적재적소에 적합한 사람을 등용하고,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일은 혜안의 가치이고, 주변 사람들의 지혜의 의견과 진심어린 충고를 경청하는 일은 총이의 기본이다.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는 경험을 외국에서 하고, 또 의사로서 신체의 건강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더 맑고 뚜렷하게 혜안과 총이에 대한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치인들을 말하기에 앞서 나부터 앞으로 더욱 끊임없는 훈련으로 예리해지고, 지혜와 덕을 쌓아 혜안과 총이가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살아있는 사랑의 정치의 기본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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