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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배꼽이 커야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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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3호 박현준⁄ 2011.10.21 19:41:27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이더라고.” 국정감사장에서 옆에 앉은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이 나의 질의가 끝나자 동경에서 겪었던 일을 얘기해주면서 던진 말이다. 묵었던 호텔 앞에 때마침 보도 블럭 보수 공사가 있었는데 호텔 측에서 공사하는 흉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 예쁜 관목 나무 화분을 촘촘히 놓아 가렸다는 것이다. 공사비용 보다 가리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겠구나 싶을 정도로 화분이 정갈하고 품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런 게 선진국인가보다’ 싶었다는 것이다. 광화문과 시청 등 시내에 볼일 보러 드나들면 숭례문이 보인다. 시내 면세점과 명동, 고궁, 남대문 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반드시 지나가는 자리이다. 숭례문 공사장을 회색 슬레이트 가림막으로 가려 놓고, 한쪽 면은 흉한 공사 장면이 휑하게 그대로 드러나 보이도록 열려있는 모습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화재 장면이 중계되는 TV화면을 맘 졸이며 보던 중, 느닷없이 불타던 현판이 자기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툭 떨어졌던 그 순간. 그곳을 지날 때면 난 으레 고개를 돌린다. 현판이 떨어질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묵직한 쇳덩어리 같은 게 내 속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기분. 아마도 그 순간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대목장의 지휘 하에 현대 장비는 쓰지 않고 전통기법으로 복원하겠으며, 복원 과정도 시민들에게 공개하겠다는 호언은 곧 식언이 되고 말았다. 대장간과 전통 장비는 온데간데없고 험상궂은 굴삭기가 버티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공개되기 민망하게 너절한 공사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그럴 바에는 아예 공사장을 볼 수 없게 다 막아버리든지, 광화문 복원 때처럼 근사한 미술작품으로 가림막을 하는 건 언감생심이었을까. 일본 나고야 성은 2차 대전 때 전소했다. 화려한 천수각과 혼마루로 명성이 높아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혔던 나고야 성이 내려앉은 지 48년 후, 일본인들은 나고야 성 복원을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2008년, 복원이 시작되니 복원 당국은 현장을 멋진 전시장처럼 꾸며 놓고, 꼼꼼히 전통 기법과 양식을 사용하는 최신 기술을 그대로 공개했다. 기역자로 지어진 관망대는 전면에 유리가 설치되고 그 유리창 너머로 전통 대장장이들이 정성들여 복원하는 장면들이 가감 없이 방문객들에게 공개됐다. 복원 과정조차 관광 상품을 넘어 행위 예술이 된 것이다.

지난 5월18일 서울에서 개최된 G20 국회의장회의 즈음해, 국회 도서관에서는 특이한 사진전이 열렸다. 작가 한성필의 몽환적인 사진작품을 여러 점 전시한 자리였다. 건물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인지, 디지털 합성한 사진인지 알 수 없는 한 작가의 작품들은 묘하게 사람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는 맛이 있었다. 몇몇 작품 속 건물은 외벽에 미술작품을 그려 넣은 것이었고, 몇몇 작품의 소재는 놀랍게도 공사장 임시 가림막이었다. 공사장 가림막이 사진작가의 작품 소재가 될 정도로 예술성이 높았다. 베르사이유 궁전 건물은 생긴 그대로의 모습을 가림막에 그려 넣어, 큰맘 먹고 먼 길을 온 관광객들에게 원래 건물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줬다. 관리자 측은 그런 가림막이 사진작가의 작품 대상이 된다고 하니, 새벽녘에 일부러 가로등까지 켜 주고 인원도 통제해 근사한 사진 작품을 탄생케 했다는 설명이다. 가림막중 일품은 벨기에에 있는 르네 마그릿드 미술관 가림막이었다. 마치 미술관 자체가 커튼이 돼 열린 것처럼, 미술관 무늬의 휘장이 좌우에 드리워져 있다.

그 사이에는 르네 마그릿드 그림에서 보이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새벽인지 어스름한 밤인지 모르겠는 애매한 시간을 연상케 하는 색조, 그럼에도 하늘에는 구름이 선명히 보이고, 나무는 한밤중처럼 검은 실루엣이 되고, 길에는 가로등이 밝혀진 그의 작품의 특징이 그대로 가림막에 표현돼 있다. 그야말로 가림막 그 자체가 패러디 예술 작품이 돼 버린 것이다. 이에 한성필 작가는 가림막 앞에 있는 실제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실제 가로등과 그림 안의 가로등 중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모를 꿈결 같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최근에 파리 출장을 다녀왔다. 늘 그렇듯 몇몇 건물은 공사 중이었다. 예전에는 무성의하게 공사장을 그냥 방치해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좀 무성의하지 않나 싶었던 적이 꽤 많았지만, 이번에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콩코르드 다리 직전 세느강 우안에 있는 호텔 크레용. 한쪽 윙이 보수공사 중이었지만, 처음 봤을 때에는 공사 중인지도 모를 정도로 가림막으로 우아하게 가려져있었다. 세느강 건너 리브 고쉬 쪽에 있는 건물, 파리최고 재판소 내의 콩시에르 쥬리(마리앙투아네트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곳)에도 흐릿하게 실루엣만 터치해 미완성 그림을 연상케하는 가림막을 쳐 놓았다. 그 건물을 통째 감싸고 있는 가림막 중앙에는 삼성 갤럭시 탭의 광고가 가득 드리워 있었다. 공사장 가림막이 아름다워 눈길을 끄니 인기 높은 옥외 광고판이 되는 것이었다. 일견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인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인지를. -조윤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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