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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좌익의 윤리 vs 우익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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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5호 최영태⁄ 2011.10.25 15:21:16

‘좌익의 윤리(left ethics)’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좌익에게는 윤리적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변혁 세력임을 내세운 개인이나 단체가 부정한 짓을 했을 때 그 비난은 대단하며, 해당 개인이나 단체는 부정이 드러나는 순간 매장 당하거나 무대 뒤로 사라지도록 강요받는다. 좌익에 이처럼 무거운 윤리적 책임이 요구된다면, 반대 입장에 서는 우익 또는 보수세력에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일까. ‘좌익의 윤리’에 해당하는 '우익의 00'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생각해 보면 품위 또는 책임감 정도의 단어가 적절할 것도 같다. ‘억지로 바꿀 게 아니라 있는 걸 잘 지키자’는 게 보수의 핵심 주장이라면 거기엔 두 순서가 필요하다. 첫째는 뭘 지킬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자유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라는 ‘가치 판단’이 끝난 뒤에는 어떤 룰을 지켜야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각론 규정’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런 룰은 ‘있는 자’들이 먼저 지켜야 한다. 우익의 이런 입장이 잘 반영된 게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 지도층의 책임감)’ 아닐까. 기존 질서가 ‘지킬 만하다’면 보수-우익은 이를 지키려 노력해야 하고, 그 구체적 방법은 지배층이 솔선수범하자는 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뜻이다. 반면, 최근 한국의 사회지도층, 큰 부자들을 보면 과연 이 사람들이 지키려는 가치는 있는 것인지, 기왕에 정해진 룰을 지킬 마음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든다. 심지어 일부에선 “한국엔 우익-보수세력이 없다. 왜냐하면 지킬 가치가 아예 없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이나 미국의 우익은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지도자 또는 큰 부자들이 나서서 뭔가 결정적 조치를 취하지만 “여차하면 미국으로 뜨면 되지”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의 지배세력에게는 그런 각오가 없다는 비판이다. 지킬 가치가 없으니 남는 건 돈뿐이다. “사회-나라가 어떻게 되든 내 돈만 지키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자리를 뺏는다. 서구 선진국을 보면 사회 혼란기에 결정적 혁신 조치를 내놓는 것은 보수세력인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변혁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자들’인 보수세력이 맡았다는 얘기다. 좌익이 세상을 바꾸려 들면 ‘있는 세력’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힌다. 그래서 좌절 비율도 높다. 반면 우익이 세상을 바꾸려 들 때는 “우리가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빚어질 텐데 그래도 좋으냐”는 명분을 들고 나서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보수세력이 세상을 더 잘 바꾼다는 역설이다. 최근 미국에서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같은 거부들이 먼저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나서는 게 바로 이런 사례 아닌가 싶다. 지배층이 지키려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자기 돈만 지키겠다고 나선다면 그건 보수세력이 아니라 그저 욕심쟁이일 뿐이다. 좌익에게는 윤리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우익에게는 “뭘 해도 상관없다”는 무원칙으로 일관하는 게 한국 사회라면, 그런 사회의 장래는 암담할 뿐이다. 우익에게도 책임감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사람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 최영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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