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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의 문화산책 ⑧]서먹했던 일본이 이제…

깊이있는 양국 이해를 도와주는 한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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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7호 박현준⁄ 2011.11.07 12:56:49

마크 트웨인은 “담배 끊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했다. 그는 실제 담배 끊기를 천 번도 더 했다 한다. 내게도 그런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일어 배우기’다. 변호사가 되면서 일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다. 영어는 뭣도 모르는 어릴 때 배웠지만, 일어는 다 커서 배우기 때문에 속력이 나지 않는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다른 변호사 동료들은 일어를 빨리 배워 일본 의뢰인들과 일도 시작했다. 내가 그들과 달랐던 건 그들보다 일본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보았던 ‘캔디’나, ‘베르사이유의 장미’, ‘올훼스의 창’까지는 좋았는데 요즘 일본 만화는 너무 엽기적이라고 느꼈다. 일본 음식도 그렇다. 간장 찍어 먹는 일본식 고급 회보다도 횟집에서 참기름 듬뿍 넣은 쌈장에 깻잎을 싸서 먹는 우리의 투박한 회가 더 좋았다. 메밀국수조차도 일본식 장은 너무 짜서, 달달하고 슴슴한 한국식이 더 좋았다. 일본보다도 미국, 유럽의 영화와 문학을 더 좋아했다. 일본어 공부를 예닐곱 번이나 다시 시작했던 이유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일본 역사는 사람 이름부터 외우기 어려웠고, 오히려 유럽 역사가 더 익숙했다. 그렇게 전반적인 관심이 떨어지니 일어 공부에 속력이 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일어 배우기를 예닐곱 번 시작했으니 포기도 그만큼 한 셈이었다. 특히 나는 일본에 대한 친근함을 표현하면 안 된다고 여겼던 세대다. 일어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일본 노래 가사로 공부를 하면 좋다고 해서 ‘건배’나 ‘고이비토요’ 등의 노래를 교재삼아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막상 누군가 일본 노래를 부르자 하면 괜히 부담스러웠다.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정치력과 경제력의 발로임을 알면서도, 우리 세대는 일본의 강한 근대사를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연수를 할 때나, 유럽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이 일본의 문화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얼마나 의도적으로 일본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국가 간에도 설명키 어려운 소원한 벽이 있다. 수입 자유화 이후에도 일본 캠코더는 법적 근거도 없이 계속 수입 금지 품목이었을 정도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무언가 꼭 집어 설명할 수 없는 거리와 벽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벽을 허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한류 드라마였다. ‘겨울소나타(국내명 겨울연가)’를 비롯해 우리 드라마가 일본의 안방을 장악하고, 일본 TV쇼 무대에 우리 가수들이 약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즈음이다. 시내의 한 백화점 벽에 붙은 한류 스타의 사진에 줄을 지어 사진을 찍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음을 목격했다. 일본 하토야마 총리 부부도 한류에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일본의 대표적 인물이다. 54년 만에 자민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당선된 민주당 하토야마 총리는 그야말로 신기한 사람이다. 몇 살 연상인 아내와 결혼하게 된 스토리, 기이한 말과 행동을 하는 총리 부인도 참 신기했다. 더욱 신기했던 건, 총리 부부가 한류 팬임을 자처하며 어떤 드라마를 보았다느니, 어떤 한류 스타를 초청했다느니 하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모습이었다. 공식 행사장에서도 한류 사랑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한일관계는 마치 자석의 같은 극끼리 마주했을 때처럼 들러붙지 않는 척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적어도 그런 서먹함은 해소된 것 같아 신기했다. 총리부부가 거리낌없이 한류 사랑을 노래 한일 여성의원 회의차 도쿄를 방문했을 때 하토야마 총리 부인을 만났다. 총리 부인의 한류 사랑이 한일 관계의 개선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을 꺼내니, 본인과 친정어머니는 정말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고 응했다. 본인은 한국어를 몇 마디 밖에 못하지만, 친정어머니는 한국 드라마 DVD 전질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한 취미가 한국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친정어머니를 만나러 가면 한국 드라마 한편을 꼭 같이 봐야 하며, 한국 드라마로 대화가 시작되고 끝이 난다고 했다. 한국 김치도 너무 좋아한다며 일본 김치보다는 역시 한국에서 담근 김치가 제일이라고 했다. 내참! 스스럼없는 진보 정권의 모습인가 보다 싶기도 했고, 이렇게 한류 사랑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일본이 여전히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멜로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반면, 이슬람권에는 남녀 애정 표현은 방송금지 대상이어서 대장금이나 주몽 같은 역사물이 단연 인기라고 한다. 애초 우리가 드라마를 만들 때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님에도 불구, 국적을 불문하고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완성도와 공감할 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국가이며 어떤 민족인지를 설명하려 든다면 몇 시간이 필요할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반면 뮤지컬이나 영화, 드라마 한편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점잖고, 정이 깊으며, 상처와 한이 있는 민족이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이 갈 만한 나라’라는 걸. 내가 책 한권을 낸 저자가 되어보니 좋은 점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막상 깊이 알지 못했던 사람도 내 책을 읽고 나면 수십 시간 수다를 떤 것 같이 많이 알게 된다는 것.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영화 한편, 책 한권, 드라마 한편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오랜 반목도 허물 수 있다. 우리의 한류 콘텐츠, 이제 우리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가 시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조윤선 의원(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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