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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에도 밀릴 판 르노삼성, 원인은 신자유주의 경영?

올해 쌍용차에 4위 내줄 수도…“해외 본사의 방치 탓”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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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0호 정초원⁄ 2012.06.25 13:50:58

르노삼성자동차가 딜레마에 빠졌다. 영업실적과 판매량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 경제학자들은 “해외에 매각된 국내 업체가 해외 본사의 단기적 이익추구에 따라 발전이 정체되고, 앞날을 알 수 없게 되는 신자유주의적 현상”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부실 업체의 해외 매각이 선진 기술의 전수로 이어지기는 커녕, 국내 생산시설이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 발표된 5월 국내 완성차 업체의 내수 판매 실적을 보면, 르노삼성은 전년 대비 41.8% 줄어든 4665대를 팔았다. 1~5월까지의 판매 실적을 모두 합해 봐도 2만 6640대다. 작년 판매량인 4만 3168대와 비교하면 반타작 수준이다. 판매량뿐만 아니라 영업실적에서도 르노삼성의 부진을 찾아볼 수 있다. 감사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지난해 매출 4조 9816억 원, 영업손실 2150억 원, 당기순손실 292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3.6%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내수판매 또한 10만 9221대로 전년대비 29.8% 감소했다. 대신 수출이 13만 7738대를 기록해 전년대비 19% 증가하면서 전체 매출 감소폭을 줄였다. 영업이익과 판매량 등 국내 시장에선 전천후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쌍용차는 지난달 전년 대비 16.8% 증가한 4104대의 내수 판매량을 기록했다. 르노삼성과는 500여대 차이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올 여름 쌍용차가 만년 꼴찌를 탈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올 초 출시한 코란도스포츠가 매월 2000여대씩 팔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고, 지난달 출시한 ‘렉스턴 W’의 신차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자연히 르노삼성은 국산차 5위로 내려앉을 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때 잘나갔던 르노삼성의 추락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해결책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다. 이미 반 토막 난 판매량을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데다, 자동차 회사의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모두 모아놓은 듯한 르노삼성의 상황 탓이다. 손 써볼 도리도 없이 딜레마에 빠져버린 르노삼성의 추락 원인은 무엇일까. 부실한 라인업과 디자인…르노 본사는 팔짱만? 르노삼성의 추락세의 가장 큰 배경은 ‘라인업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선택할 수 있는 모델 자체가 적다 보니,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신차 하나만 실패해도 회사 전체의 매출 타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라인업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회사가 출범한 지 11년이 됐는데 QM5, SM7 등 주요 세그먼트별로 신차들을 많이 내놨다. 자동차가 기획과 개발단계를 거쳐 7~8년까지 걸리는 걸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와 업계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과거에는 ‘삼성’라는 이름에 기대어 적은 라인업으로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는지 몰라도, 평가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소비자들의 평가 기준이 높아졌다. 야심차게 내놓은 QM5의 경우에도 경쟁 모델이 너무 많다. 회사 입장에서 예전과 똑같이 대응한다면 성과는 예전만 못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량 라인업을 떠나, 르노삼성의 제품 디자인과 품질 자체가 소비자들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프랑스의 르노는 세계적으로 프리미엄급 브랜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현대·기아차에 비하면 국제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다소 떨어진다. 여기에 디자인까지 줄곧 클래식한 느낌만을 내세우고 있으니, 한국 소비자들에겐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20~30대 젊은 고객은 차를 고를 때 디자인을 중시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취약한 르노삼성 제품은 처음부터 제쳐두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르노삼성의 모회사인 프랑스 르노가 한국 시장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데도 르노 측은 한국 시장에 내놓을 신차 개발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반응이다. 본사에서 적극적인 액션은 취하지 않으면서도 회사의 향방만 쥐고 있으니, 르노삼성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싶어도 손발이 묶여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르노삼성의 부실한 라인업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르노 본사와의 협의 과정에서 라인업을 확대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고 말했다. 신차 투입의 필요성을 르노삼성 자신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김필수 교수는 “그게 바로 외국에 모기업을 둔 자동차 회사의 한계”라며 “마케팅, 디자인, 제품 그레이드, 현장 능동성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정권은 르노 본사가 쥐고 있으니 막다른 길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배부른 르노, 배고픈 르노삼성 르노 본사가 이토록 한국 시장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르노삼성에 불리하도록 맺어진 계약 조건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양측의 계약에 따르면, 국내에서의 영업이익과는 관계없이 르노삼성 차량이 어느 정도 팔리기만 해도 본사는 쉽게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구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르노삼성은 제품에 쓰이는 부품을 대부분 르노와 리노닛산으로부터 직접 사들여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부품 값으로 떼어줬다. 르노 본사는 르노삼성이 영업이익을 공들여 올리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르노삼성이 영업이익을 올리게 되면 르노 본사로서는 다소 아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지난 2000년 삼성자동차(르노삼성 전신)를 인수하면서 생긴 2844억 원의 잔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이 영업이익을 냈을 경우에만 인수대금 잔금을 갚으면 된다는 게 당시 채권은행과의 계약조건이었다. 영업이익은 없고, 판매량은 어느 정도 나오는 현재 상태가 본사로서는 ‘손쉽게 배부른’ 최적 상태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아이러니한 계약 조건 속에서 울상인 르노삼성과는 달리, 르노와 계열사인 일본 르노닛산의 상황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 르노는 10억 9100만 유로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르노닛산 또한 지난해 영업이익이 69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르노삼성이 적자를 기록하고, 재고 소진을 위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과 대조적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부품의 80%를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비쳤다. 본사와 역할분담 하는 ‘한국지엠’, 어떻게 다를까? 반면 한국지엠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르노삼성처럼 외국에 모기업을 두고 있지만, GM 계열사로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마이크 아카몬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해 12월 한 포럼에서 “한국지엠이 GM의 경소형차 개발을 담당하고, GM 전체 판매량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GM 그룹 내에서 세 번째로 큰 디자인센터를 운영하는 등 GM의 글로벌 성공에 매우 큰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지엠은 GM의 글로벌 경소형차 개발본부다. 한국에서 개발한 쉐보레 스파크는 지난달 북미 시장에 수출됐다. 한국지엠의 경차 생산 전문 창원공장에서 생산된 이 모델은 올해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쉐보레 판매법인과 대리점을 통해 판매된다. 주요 세그먼트 개발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지엠은 본사의 지휘를 받는 르노삼성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디자인 경쟁력도 르노삼성보다 강하다. 쉐보레 크루즈와 스파크의 디자인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젊은층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자동차 전문 리서치회사인 마케팅인사이트가 최근 3년 이내 차를 구입한 소비자 2만 69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쉐보레 알페온이 실내 디자인 평가 1위를 차지했다. 외부 디자인 평가에서도 쉐보레 크루즈가 2위, 알페온이 5위를 차지해 상위권에 들었다. 또한 한국지엠은 대부분의 부품을 국내 협력업체로부터 조달해온 덕분에 본사에 지불하는 비용도 매출액의 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 부품과 기술 사용료, 수수료 등을 합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본사 계열에 뺏긴 르노삼성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이 하반기 SM3와 SM5 페이스 리프트 모델을 출시하고 반전을 노린다지만, 한번 떨어진 점유율이 다시 올라가기는 힘들다”며 “완성차 판매율 하락이 지속되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 정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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