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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뉴스]사물에서 얻는 미술과 디자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29명의 작가, 대표작 45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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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3호 안창현 기자⁄ 2014.06.19 13:13:47

▲양혜규, <비非-접힐 수 없는 것들>, 2009~10. 천으로 씌운 빨래 건조대 연작, 매일유업 소장. 사진 = 안창현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선반 위에 빨강, 노랑, 파란색을 띄는 사물들이 몬드리안의 추상회화처럼 놓여 있다. 일상의 사물을 통해 미학적 조형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해온 메티유 메르시에의 작품 ‘드럼과 베이스’이다.

작가는 대량생산된 기성 제품들 중 빨강, 노랑, 파란색의 서로 다른 사물들을 찾아내고 이를 검은색 선반 위에 배치했다. 균형 잡힌 화면을 구성하면서 예술적 대상과 기성 제품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10월 5일까지 열리는 ‘사물학-디자인과 예술’ 전시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메티유 메르시에의 작품을 보면서 관객은 일상적으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사물과 우리가 흔히 예술작품이라고 인식하는 대상 사이의 간극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데, 이는 이번 전시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이다.

‘사물학-디자인과 예술’전은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 그리고 그 사물들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은 동시대의 시각예술을 살펴보는 전시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들 중 회화, 조각, 뉴미디어, 공예, 디자인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전시의 제목처럼 ‘사물학’의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눈에 띄는 것은 사물학이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동시대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장에 공간 디자인을 더해 연출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전시는 작품들을 관객이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작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메티유 메르시에의 <드럼과 베이스>(2011). 사진 = 안창현 기자


전시장은 5개의 서로 다른 공간으로 구획되었다. 먼저 디자인적 방법론을 수용해서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보여주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섹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동시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능적으로 변모하는 조각과 미술로 변모하는 가구’ 섹션 등은 미술과 디자인의 서로 다른 영역이 뒤섞이며 만들고 있는 흥미로운 사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이 사물을 예술로 만드는지 질문하는 ‘사물의 언어로 말하기’ 섹션, 사물들이 뒤섞이며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을 제시하는 ‘조망하는 사물들’ 섹션, 또 최근의 3D 제작기법으로 제작된 ‘신세기 가내공업사’ 섹션 등은 창작자들이 기존의 사물을 예술적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다양한 방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섹션은 사물학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의 맥락과는 성격이 다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현존하지 않지만 앞으로 존재하게 될 무언가를 계획하는 행위를 넓은 의미의 ‘디자인’이라 할 때, 디자인은 결국 내재적으로 미래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과 디자인을 함께 다루고 나아가 그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이번 전시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 섹션에서 소개된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공동작업 ‘미지에서 온 소식’(2012)은 작업의 진행과정에서 디자인적인 방법론을 수용하여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술과 디자인 경계에서 일상의 사물이 작품으로

‘사물의 언어로 말하기’ 섹션에서는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사물들이 그 원형을 제거한 채 익숙한 듯 낯설게 변형된 모습을 공존한다. 일상적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킨 미술사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태도를 이은 동시대 창작자들이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이 섹션에서 살필 수 있다.

‘조망하는 사물들’에서 볼 수 있는 박불똥 작가의 ‘길 1’(2012)은 사물들의 관계가 역전되면서 유쾌한 상황을 연출한 사진으로 ‘조망하는 사물들’ 섹션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작품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기만 하던 못들이 여럿 모여 망치를 제압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박미나, ‘114isMVP&KLN;Hadggfxc^’, 캔버스에 아크릴, 200×450cm, 2008.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둘의 관계를 역전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망치를 제압한 못들은 보이지 않는 또다른 망치에 의해 뒤통수를 맞은 결과일 것이다. 박불똥 작가의 시선은 미비하고 소소한 사물이나 일상사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전복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또다른 섹션 ‘기능적으로 변모하는 조각과 미술로 변모하는 가구’에서는 양혜규 작가의 ‘비非-접힐 수 없는 것들’(2009~10)의 빨래 건조대와 같이 작품으로서의 조각과 기능적인 가구의 역할이 뒤바꾸는 다양한 사례들을 만날 수 있다.

양혜규 작가는 기능과 용도가 주어진 공산품의 잘 드러나지 않는 물질적 형태에 주목해서 작업했다. ‘비非-접힐 수 없는 것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빨래 건조대를 천을 입혀 작품의 제목과 같이 접힐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접힐 수 없도록 가공되어 본래의 건조대 기능은 박탈당했지만, 대신 주목받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물에서 자신만의 신체와 부피를 가지고 공간을 점유하는 흥미로운 오브제가 된 것이다.

예술가와 디자이너 등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창작자들의 작업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마지막으로 최근 제3의 산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3D 프린팅 제작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3D 프린팅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누구나 예술가나 디자이너와 같은 창작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D 프린팅 기술이 제기하는 개인화된 사물의 문제는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관찰하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지,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물과 그것들을 둘러싼 새로운 시선과 태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을 마련해준다.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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