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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④]‘보로부드르’에서 찬란했던 고대 남방 불교문화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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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4.07.10 09:38:5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행<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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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발리 덴파사르)

발리섬 가는 길

새벽 4시 버스는 발리 덴파사르를 향해 다시 시동을 건다. 여행의 8일째 새벽은 이렇게 밝았다. 버스는 아름다운 해안을 바라보면서 남동쪽으로 달린다. 지상낙원 발리의 모습은 역시 아름다웠다. 사진으로만 봤던 계단식 논과 곳곳에 점점이 박힌 힌두사원,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과 그 너머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야자수, 그리고 멀리 뾰족한 화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그네의 가슴을 한없이 뛰게 한다. 덴파사르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각 오전 8시 20분, 수라바야 출발 13시간 30분만이다. 현지인들이 출근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이다.

지상 최후의 낙원 롬복

덴파사르 버스 터미널에서 빠당바이(Padangbai)행 콜트 중형버스에 오른다. 좁은 거리가 체증이 극심하다. 최대한 볼륨을 올려놓은 버스의 오디오에서는 발리의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온다. 빠당바이는 의외로 제법 먼 곳이었다. 롬복(Lombok)행 페리가 떠나는 쉬지 않고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라 기대했던 낭만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페리로 4시간 들어가면 때 묻지 않는 마지막 섬, 지상 최후의 낙원 롬복섬이 있으나 빠듯한 여정이 방문을 허락하지 않으니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 발리를 다시 찾을 구실을 마련하려면 멋진 곳 한두 곳은 남겨 둬야 한다는 억지 구실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빠당바이에는 서양인들이 자주 눈에 띤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원시 해변에는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서구 관광객들이 많다. 저렴한 가격에 바닷가 방갈로를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 또한 여기다. 인근 식당에서 해산물과 돼지고기 요리로 점심을 해결했다.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먹는다. 여기는 이슬람 지역이 아님을 말해 준다. 작은 시골 항구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던 여유를 다행으로 여기며 발길을 돌린다.

▲프람바난 힌두교 사원


힌두교 지역 발리

이곳 발리 동남부 지역에도 볼 것은 많지만 시간과 교통편이 넉넉하지 않아 택시를 타고 덴파사르로 되돌아간다. 택시기사는 꾸타(Kuta)까지 20만루피아(한화 약 2만3000원)를 요구한다. 동남아에서 대중교통은 신경 안 써도 될 만큼 저렴하지만 고급 교통수단인 택시는 결코 싸지 않다. 택시는 검푸른 인도양을 스치며 달린다. 덴파사르 가는 길에 마침 지나는 박쥐사원(Pura Goa Lawah)이 유명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에서 드물게 비이슬람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전체가 이슬람화 되던 15세기, 자바섬에서 힌두 지식인들이 대거 발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유독 발리에 힌두교 문화가 융성한 것은 그런 연유다. 이슬람화가 되기 전 인도네시아의 모습을 발리에서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발리 꾸타 풍경

세계적인 관광 특구 발리 꾸타에는 특히 호주인들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눈에 많이 띤다. 길을 따라서 온갖 국적의 음식점과 카페, 디스코텍, 기념품 가게, 명품점, 대형 스토어, 환전소, 편의점, 맛사지숍 등 수많은 시설이 관광객의 지갑을 유혹한다. 오늘 꾸타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호텔방에 갇혀 여기 저기 TV 채널을 돌려 본다.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방송이 다 나온다. 한국의 KBS World와 아리랑 TV도 나온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리랑 TV에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 서브타이틀이 뜬다. 시내 곳곳에는 LG 광고판이 많다.

비가 멎기를 기다려 저녁식사길에 나섰다. 거리라고 해봤자 남북으로 1km 정도 뻗은 중심가로가 전부다. 이슬람 국가답지 않게 꾸타에는 환락가도 많다. 서구화, 상업화된 거리가 2002년 발리 폭탄 테러를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녁은 케밥으로 했다. 다양한 음식이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되는 발리 꾸타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요람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화산과 해변 등 자연 환경이 빼어난 발리는 타고난 관광지인 듯싶다. 거리 북쪽 끝, 네온사인이 뜸해질 때까지 올라갔다가 호텔로 걸어 내려왔다. 마침 굵은 비가 쏟아져 바짓가랑이가 젖는다.

▲빠당바이, 마지막 지상낙원 롬복행 페리가 여기서 떠난다.


9일차 (발리 → 족자카르타)

고도(古都) 족자카르타

오전 7시 호텔 조식을 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은 꾸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자카르타행 Air Asia 항공기는 오전 9시 45분 이륙, 1시간 35분 비행 끝에 오전 10시 20분 자카르타(발리보다 한 시간 늦음)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터미널에서 4시간 30분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오후 3시 이륙한 항공기는 1시간 만에 족자카르타(Jogjakarta) 공항에 접근한다. 고도(古都) 족자카르타의 한가로운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프람바난(Prambanan) 힌두교 사원이 있어 그곳에 먼저 들른다. 내국인들에게는 7000Rp(약 1000원)하는 입장료가 외국인들에게는 무려 미화 11달러다. 그래도 도착하면서 곧장 세계문화유산 한 곳을 방문할 수 있어서 여정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람바난 사원의 4개 탑에 섬세하게 새겨진 기기묘묘한 부조들은 원색적이고 관능적이다. 경이로움에 말을 이을 수 없다. 1200년 전에 세워진 탑 위로 제트 여객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어색한 조화를 이룬다. 프람바난 사원 관람을 마친 후, 트란스요가(Transjoga) 1A번 시내버스로 30분 정도 달리니 내가 묵을 인나 가루다(Inna Garuda) 호텔 정문 앞에 닿는다. 많은 대학이 몰려 있는 중부 자바의 문화 중심지 족자카르타의 볼 것 많은 거리는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호텔 체크인 후 말리오보로(Malioboro) 거리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 투구 기념탑(Tugu Monument)까지 갔다. 이번에는 택시로 거리 남쪽 끝 술탄궁 앞까지 갔다가 호텔을 향해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는 것으로 시내 탐방 루트를 잡았다. 돌아오는 거리에는 재래시장과 가게가 즐비하다. 특히 옷가게에 진열중인 화려한 무슬림 여자 의상들이 눈길을 끈다. 돌아오는 길에 중국 음식과 해산물로 저녁식사를 했다. 족자카르타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이미 밤이 늦었음을 탓하며 호텔로 돌아 왔다. 고대와 현대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우리나라의 古都 경주나 부여는 참고할 일이다.

▲물의 궁전 따만사리


10일차 (족자카르타 → 자카르타 → 서울)

찬란했던 고대 남방 불교문화

호텔을 통해서 예약한 투어버스(7만Rp, 한화 약 1만원)를 타고 새벽 5시 보로부드르(Borobudur) 사원으로 향한다. 50분 만에 보로부드르에 도착하니 동이 터오고 있다. 보로부드르는 8~9세기에 세워진 불교사원으로 어제 들른 프람바난 힌두교 사원과 건립 시기가 비슷하다. 거대한 구조물은 모두 10단으로서 웅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기반석마다 새겨진 부조가 압권이다. 석가가 열반하기까지 과정을 묘사한 수백 개 부조의 섬세함과 사실감에 감탄한다. 이전투구의 욕망과 악이 판치는 중생의 사바세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느낌으로 나는 계단을 올랐다.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왕조가 있었기에, 얼마나 투철한 신앙심을 가졌기에 이 거대한 사원을 건립할 수 있었단 말인가?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타이틀이 과장이 아니다. 두 개의 거대한 유적(프람바난, 보로부드르)이 비슷한 시기에 서로 가까운 곳에 세워진 사연을 아무도 모르기에 신비로움만 더할 뿐이다. 보로부드르보다 2~3세기 앞서 지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Angkor Wat)와 함께 동남아시아 최고 최대의 불교사원인 이곳은 화산재에 묻혀 있다가 1814년 당시 자바총독 래플스(Raffles)에 의해서 복원됐다.

메라피 활화산

멀리 북쪽으로는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준봉들이 둘러싸고 있다. 히말라야 조산대에 속한 화산들은 아직도 연기를 뿜는다. 그중 대표 격인 메라피(Merapi) 화산은 장엄함을 더한다. 사원 주위의 열대 평원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가 신비롭다. 아침식사 후 보로부드르 인근 3~4km 지점에 있는 멘두트(Mendut) 석굴 사원을 방문했다.

사원에는 피라밋형 석조물 내부에 부처와 두 제자를 형상한 세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9세기에 건립된 이 사원 또한 수풀에 묻혀 있다가 1897년에 복원됐다고 한다. 불상은 원래 보로부드르 꼭대기에 놓으려고 준비했으나 들어 올릴 방법이 없어서 이곳에 안치했다는 설도 있다. 머나먼 남방 자바섬까지 듬뿍 적신 찬란했던 고대 불교문화의 흔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아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보로부드르 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아침 9시 30분이다. 아직 조식이 차려져 있어서 넉넉하게 즐기고 체크아웃 후 호텔에 짐을 맡기고 족자카르타 거리로 다시 나섰다. 물의 궁전 따만사리(Taman Sari)는 술탄이 왕궁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감상하던 곳이다. 술탄이 여자들을 지켜보던 방과 여자들이 옷갈아 입던 방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왠지 엽기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앙코르와트와 함께 동남아시아 최대 불교 유적지인 보로부드르


끝까지 버틴 네덜란드

술탄 궁전(Kreton) 관람 후 새시장(birds market)을 스치고 지나 벤텡 브레데부르그(Benteng Vredeburg) 네덜란드 요새를 방문했다. 인도네시아 독립 과정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지만 밋밋하고 설명이 부실해 아쉽다. 대체적인 내용은 1945년 종전 후 1950년 인도네시아 독립까지 외세와 격돌한 과정에 관한 것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통치를 재개하려 했으나 전후 피폐한 본국 사정으로 식민 통치에 필요한 10만명 정도의 군대를 보낼 수 없게 된다.

이에 네덜란드는 대신 동부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괴뢰 정권을 수립하지만 5년에 걸친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으로 대부분 궤멸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은 남말루쿠는 자치 공화국을 선포하고 1964년까지 인도네시아 정부에 저항했다. 서파푸아 지역(Irian Jaya)도 비교적 늦게까지 영토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다가 인도네시아의 통치 질서에 편입됐다.

호텔로 돌아와 1A 버스를 타고 족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다. 주말을 앞둔 공항은 붐빈다. 나도 그 가운데 끼어 탑승 순서를 기다린다. 항공기는 예정보다 30분 늦은 오후 6시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국제선 터미널에서 인천행 대한항공 탑승을 기다린다. 넓고 화려한 자카르타 공항 터미널 덕분에 지루한 기다림이 조금은 짧아진다. 대한항공 A330 대형여객기는 현지시각 밤 9시 55분 어둠을 뚫고 날아올랐다.


11일차 (인천 도착)

아시아의 방대함과 다양성을 확인한 여행

항공기는 인도양을 뒤로 한 채 자바해, 보르네오섬 북부, 필리핀 마닐라 부근을 차례로 지나 대만 상공을 거치는 7시간의 비행 끝에 오전 6시 5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또 다시 아시아의 동북쪽 끝에 돌아왔다. 한때 세계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지역을 돌다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돌아왔다.

아시아의 방대함과 다양성을 다시금 확인한 여행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나긴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에 크게 안도한다. 공항에서 곧바로 일터로 돌아와 일상에 복귀했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무실에 앉아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여행기를 기록하는 감회가 새롭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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