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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⑯ 지중해·대서양 1]형제의 나라 터키 “웰컴 코리안!”

지중해·대서양 여행기의 첫 시작 이스탄불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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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4.12.31 09:12:41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이번 ‘나홀로’ 세계여행의 목적지는 지중해·대서양 지역이다. 중동과 남유럽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이르렀던 한 달 간의 여정을 소개한다. 그 첫 시작은 터키 이스탄불이다.


1일차 (서울→이스탄불)

터키항공기 내 풍경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인천공항은 한산하지만 단체 승객이 많은 이스탄불행 항공기 탑승구는 북적인다. 터키인 여성 승무원의 한국어 안내방송 실력에 깜짝 놀랐다. 그의 용모 또한 묘하다. 수천 년 동양과 서양이 섞인 역사가 그들의 다양한 얼굴 위에 쓰여 있는 것 같다. 12시간 내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하늘의 초원길

항공기는 중국 대련, 우루무치,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남안, 그리고 흑해 상공을 날아 이륙 12시간 후 이스탄불 시각 새벽 4시 30분 아타투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지리책이나 역사책에서 봤던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을 가로질러 5000마일을 날았다. 칭기즈칸 군대가 4주 만에 주파했다는 바로 그 초원길을 하룻밤 사이에 날아온 것이다.

온화한 바다 지중해, 거친 바다 흑해

터키는 면적이 남한의 8배, 인구는 9000만, 이스탄불은 인구 1200만 명이다. 북쪽으로 보스포러스 해협, 남쪽으로 다다넬즈 해협이 있고, 그 사이에 있는 바다는 마르마라해다. 아타투르크 공항 바로 너머로 마르마라해가 넘실거린다. 흑해라는 이름은 남쪽의 온화하고 잔잔한 지중해와는 달리 거친 바다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 아시아 대륙 동북쪽 끝에서 서쪽 끝 유럽이 시작하는 곳에 발을 디딘 감회가 크다. 유럽인들의 세계지도에서 한국이나 일본이 얼마나 멀었기에 극동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동서양 교차로 이스탄불 공항

입국장에는 터키 입국을 위해 비자가 필요한 나라 명단이 게시돼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EU와 미국 등 대부분 선진국이 해당하는 반면, 형제의 나라 한국인에게는 입국 절차도 간편하기 이를 데 없다. 여권을 내미니 입국관리는 보는 둥 마는 둥 30일 체류 도장을 찍어준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여권은 문제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중서부 아프리카 등 특수 지역을 제외하면 한국인에게 웬만한 국가는 대부분 무비자, 아니면 최소한 도착 비자다. 갈 수 없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처음 만난 터키 이스탄불의 풍경.


터키항공 환승객 무료 시티투어

터키항공 환승객을 위한 무료 시티투어가 아침 9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커피숍에 앉아 기다린다. 아침이 가까워지니 한산했던 이스탄불 공항이 분주해진다. 중근동,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심지어 미주 등 세계 각 지역에서 떠난 여객기가 도착할 때마다 멘트가 쉬지 않고 나온다. 공항 청사를 오가는 터키 사람들의 용모는 완전 서양인 얼굴부터 한국인 비슷한 얼굴까지 매우 다양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시티투어가 시작됐다. 터키 항공 국제선에서 국제선으로 환승하는 승객들을 위한 무료 서비스로써 반일 투어와 종일 투어가 있다. 투어는 일단 아침식사로 시작한다.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려 술탄 아흐멧 사원에 닿았다. 맞은편에 있는 성소피아 사원을 제압하기 위해서 지은 대형 건축물로, 6개의 높은 첨탑이 전형적인 터키식 회교 사원임을 말해준다. 내부 벽면을 청색 타일로 입혀서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린다. 투어가 시작하는 이곳은 올드 이스탄불의 중심 히포드롬 다목적경기장 광장이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독교·이슬람 문화 공존하는 성소피아 사원

블루 모스크 맞은 편 성소피아 사원은 원래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1453년 오스만 터키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4개의 첨탑을 추가하고 회교사원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916년간 성당으로, 이후 477년간 회교 사원으로 사용된 만큼 사원 내에는 기독교 성화와 회교 문양, 회교 장식물이 공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기독교 성화 위에 점령자들이 마구 회(灰) 칠한 부분도 상당 부분 복원돼 오리지널 성화를 볼 수 있다. 2000년 넘은 역사의 도시, 세 제국(동로마, 비잔틴, 오스만)의 수도였던 이 도시의 두 대표 건축물(블루 모스크, 성소피아 사원)은 규모가 거대하다. 비잔틴 제국의 영화,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권세가 어떤 것인지 짐작케 한다.

▲바깥에서 바라본 블루 모스크의 모습. 웅장한 외관이 눈에 띈다.


거대한 지하 구조물

그러한 구조물의 압권은 지하 저수지다. 비잔틴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 건설한 구조물은 336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70x140m의 거대 지하 저수지다. 20km 떨어진 외곽에서 물을 공급받아 저장한 곳이다.
오스만 제국이 들어선 후 물을 사용하지 않아 쓸모가 없어졌지만 당시 토목기술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오스만 식으로 멋진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돌아와 메트로레일로 악사라이 역에 도착, 택시로 호텔을 찾아 들어가니 오후 4시쯤 된다. 호텔은 작지만 깨끗해서 하룻밤 지내는 데 문제없다.

▲1856년에 건축된 돌마바흐체 궁전은 막대한 건축비가 들어간 건물로 호화스러움이 특징이다.


금각만 건너 탁심 광장까지

호텔에서 잠시 휴식 후 다시 거리로 나오니 땅거미가 깔린다. 퇴근 시간을 맞아 분주히 오가는 시민들과 함께 걷다 보니 크고 작은 터키식 사원 여러 개를 지나친다. 눈 닿는 곳이면 어디든 뾰족한 첨탑의 모스크가 눈에 들어오는 이스탄불 풍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즈음 그랜드 바자르가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옥내 시장인데 출입구가 18개 있다고 한다. 6000개 이상의 상점들이 활발히 영업 중이다. 버스를 타고 금각만을 건너 언덕을 올라 도착한 탁심 광장에서 이스탄불 야경을 즐긴다.

EU 회원국이 되고 싶은 터키

호텔방에서는 늘 하던 대로 TV부터 켰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채널 목록을 보면 그 도시에 어떤 방문자들이 들고 나는지 금세 판단할 수 있다. 러시아, 유럽 주요 국가, 루마니아, 폴란드, 아랍 등의 채널이 나온다. 요즘 터키는 EU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EU는 터키의 국경 관리가 허술하다는 이유로, 혹은 터키를 받아들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터키와 맞붙은 시리아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터키의 EU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것이고 사실은 과거 오스만 제국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 아닐까? 터키가 EU 회원국이 되면 9000만의 터키인들이 유럽 곳곳에 들어와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블루 모스크의 앞 풍경. 블루 모스크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2일차 (이스탄불→암만)

하루 두 번 출발하는 터키항공 암만행 항공기가 한 편 결항해 예정보다 5시간 늦은 23시 30분으로 변경됐다는 문자가 왔다. 그때까지 이스탄불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지만 새벽 1시 30분에 요르단 암만공항에 도착해서 호텔까지 어떻게 이동할지 등 걱정거리가 생겼다.

호텔 조식은 맛있다. 조식도 조식이지만 호텔 8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아침풍경이 멋지다. 일단 짐을 챙겨 공항에 나가 항공 스케줄 재확인 후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하루 종일 시내 이곳저곳을 누비기로 했다. 공항에서 나와 노면 전차로 갈아타고 카바타스에 내려 한참을 걸어 돌마바흐체 궁전에 닿으니 보스포러스 대교가 한결 가까이 들어온다.

베르사유 궁전을 탐낸 돌마바흐체 궁전

1856년에 건축된 돌마바흐체 궁전은 호화로움의 극치다. 오스만 제국의 행정 중심지로서, 1922년 제국 멸망 후에는 터키공화국 수립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제국이 쇠잔할 무렵 투입된 막대한 건축비는 재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흉내낸 화강암 구조물로, 내부 대리석 장식들이 호화롭다. 궁전 한켠에는 일본실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일본 도자기와 그림이 눈에 익다. 이미 19세기 중후반에 일본 황실과 오스만 황실의 친밀한 교류가 있었다고 하니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읽고 있었던 일본의 안목을 엿보게 한다.

▲훤칠한 터키 병사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훤칠한 터키 위병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마침 오후 3시 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훤칠한 터키 병사들이 위용을 뽐낸다. 한때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까지,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집트까지, 북쪽으로는 흑해 북쪽 해안까지 통치했던 제국의 군대 아닌가? 한국전 참전이라는 인연으로 관심이 더 간다.

서울의 강남·강북을 연상케 하는 보스포러스 해협

돌마바흐체 궁전을 나와 북쪽으로 한참을 걸어 도달한 오르타코이 해변에서 바라보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물결이 거세게 출렁인다. 해협이 가장 좁아지는 곳에 길이 1km인 보스포러스 대교가 있다. 아시아 대륙 서쪽 끝, 역사의 현장에 오니 감개무량하다. 해협에는 페리가 두 대륙을 분주히 오간다. 나도 페리에 올라 아시아 쪽 이스탄불로 건너간다.

페리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해협 양안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서민 거주지역인 아시아 이스탄불과 상업 지역인 유럽 이스탄불 사이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집값이 비싼 서쪽을 벗어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탄불 성소피아 사원 내부 모습. 기독교 성화와 회교 문양, 회교 장식물이 공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다양한 인종이 만나는 탁심 이스티클랄 거리

시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어제 갔던 탁심 광장에 다시 간다. 이번에는 카바타스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도착한 탁심 광장은 금요일 저녁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탁심 광장에서 이어지는 이스티클랄 거리를 따라 걷는다.

멋진 유럽풍 건물들이 즐비하고 군데군데 유태인 교당과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을 정도로 문화적·역사적으로 다양한 거리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서 펼쳐진다. 이 거리에 오니 터키는 분명 유럽이라는 결론에 닿게 한다. 사람, 거리, 건축물, 제도…. 모든 것들이 유럽이다.

탁심 광장을 나와 남은 시간을 금각만 위에 걸린 다리에서 야경 감상에 보낸 후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9시 조금 넘은 시각이다. 9시간의 도시 탐험은 여유로웠다. 세계 각지로 항공기들이 집중적으로 출발하는 밤 시각 이스탄불 공항은 그야말로 세계 각국 인종 전시장이다. 생동감 넘치는 국제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쉽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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