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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최낙언의 ‘맛과학’ 美출간 맞아 생각해보는 ‘전문가주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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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6호 최영태 CNB저널 편집국장⁄ 2015.02.05 09:34:5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최영태 CNB저널 편집국장) 이번 호에는 국내 식품업체 시아스(sias) 산하 연구소의 최낙언 이사가 펴낸 책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더니 급기야 미국 최고 출판사에서 고가 전문서적으로 번역출판된 과정을 소개했습니다(50~52쪽). 교수도, 박사도 아닌 인물이 쓴 ‘맛 과학’ 책이 미국 학계의 주목거리가 된 쾌거입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미국 심리학계의 큰별 주디스 해리스가 생각납니다. 하버드대 심리학 석사를 마친 그녀는 1960년 하버드 박사과정에 지원하지만 당시 학과장 조지 밀러는 “독창성-독립성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시킵니다. 박사학위를 못 받은 그녀는 그러나 35년 뒤 ‘미국심리학회 조지 밀러 상’을 받습니다. 조지 밀러가 독창성을 탓하며 낙방시킨 제자가 자기 이름을 붙인 상을 받은 것이지요. 시상식장의 얼떠름한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해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학계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닌 가장 중요한 이점은 전문화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라는 점을 나는 깨달았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를 돋보기를 들이대고 바라본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꿰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쓸모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개성의 탄생’ 372쪽)

최낙언 이사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내가 낸 책 중 최고”라고 그가 자랑하는 ‘감각·착각·환각’(예문당, 2014년)에서 그는 “공부하고 싶다. 자연과학을 연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최고의 성과를 살짝 감상하며 즐기겠다는 것이다. …(중략)… 과학자들은 너무나 자주 자신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연구(지식의 파편화)에만 몰입한다. 이제는 과학의 성과물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고 인간성과도 연결할 때가 왔다(237쪽)”고.

학계의 일원이 아니기에, 분과학문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기에, 하고픈 공부를 마음대로 하면서 나름대로 “이런 것 아냐?”라고 가설도 세워볼 수 있고 해리스도, 최 이사도 국제적 업적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전문가만이 발언권을 얻습니다. 전문가 아닌 사람이 발언했다가는 감방 가는 수가 있는 나라지요. 고려대 법대 박경신 교수는 책 ‘진실유포죄’에서 “(경제위기설을) 경제학자들이 내놓으면 괜찮고 미네르바가 하면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하나? 한국인의 유전자가 광우병에 취약하다거나 화장품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소리를 과학자들이 한정된 실험데이터를 갖고 가설을 제시하면 괜찮고 기자들이 하면 형사처벌감인가? 정운찬은 행정기관 하나라도 이전하면 나라가 거덜난다고 해도 괜찮고, PD수첩이 불충분한 근거로 ‘4대강 예산 때문에 민생예산이 깎였다’고 하면 징계감인가?”라며 한국의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위선의 칼날’을 비판했습니다.

전문가는 물론 필요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은 경제에 무지함을 알고 당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일임해 최고 호황을 이끌어낸 건 유명하지요. 헌데 그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정치엔 자신이 손대 실패했다는 게 고려대 임혁백 교수의 평가입니다.

전문가는 필요하지만, “전문가 아니면 가만히 있어”라는 전문가주의는 위험합니다. 전문가에게만 맡겼기에 실패한 경우도 많거든요. 미국 경제는 월가에 일임됐다가 2008년에 거덜났고, 한국의 IMF 사태도 모피아들이 금융을 주물럭거리다 나라를 말아먹은 케이스입니다.

전문가주의를 부수는 민주주의 원칙은 제비뽑기입니다. 고대 아테네는 제비뽑기로 독재자를 막았습니다. 미국 법정은 제비뽑기로 일반시민 배심원을, 즉 시민의 상식을  법정으로 초청합니다. 고대 아테네는 행정가를 제비뽑기로 뽑았지만 장군은 실력으로 뽑았습니다. 아무나 장군 시키면 큰일나니까요. 이처럼 전문가주의와 비전문가주의는 적절히 배합돼야 합니다. 현재의 한국처럼 엘리트-전문가-부자들이 “없는 것들, 무식한 것들, 서민은 가만히 있어”라고 갑질을 해대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저 미개 정글일뿐입니다. 교수가 아니기에 거둔 최낙언 이사의 미국 출판 쾌거가 더욱 상쾌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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