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전시 - 리움미술관 양혜규 전]양혜규가 관객에게 던진 수수께끼…‘코끼리를 쏘다 상 코끼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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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삼성미술관 리움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생존 한국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펼친다. 리움이 2004년 개관 이후 2012년 서도호 전에 이어 두 번째 선택한 한국인 작가는 설치예술가 양혜규(44)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의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전이 2월 12일부터 한남동 리움미술관 전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리움이 양혜규를 전시자로 선택한 것은, 서도호(53) 이후 한국 작가로는 드물게 세계적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미술관 측은 밝혔다.
양혜규가 한국에서 5년 만에 선보인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전에는 2001년 이후 발표한 대표작들부터 새로운 작업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작까지 35점 작품들이 공개된다. 전시 제목을 보고 코끼리 모양을 찾을 수도 있지만 전시장 어디에도 코끼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없다.
▲리움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설치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코끼리’는 양혜규에게 자연과 인간의 존엄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코끼리라는 소재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1914∼1980)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졌다.
전시장 입구 공중에 설치된 블라인드 설치작 ‘솔 르윗 뒤집기 - 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의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1986)을 23배로 확장한 작품이다.
리움미술관 지하 1층 그라운드 전시장에 펼쳐 놓은 작품들은 마치 민속촌에 온 듯, 짚풀로 만들어 놓은 알듯 모를 듯한 형상의 조형물이다. 양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외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중간 유형’이다. 토속적이며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온 재료인 짚풀이 갖는 인류학적 보편성과 민족적 개별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담은 작품이다.
▲양혜규 작가의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취재진들. 사진 = 왕진오 기자
‘중간 유형’은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 ‘보로부드로’, ‘피어나는 튤립’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 3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수직적인 개별 조각 6점으로 구성됐다.
일본 가나자와의 한 공원에서 짚풀로 나무 전체를 감싼 모습을 보고 조형적인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짚풀에서 문화인류학적 맥락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인공 짚풀은 원시와 토속 그리고 자연이라는 콘셉트와는 사뭇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이들 작품들 사이에 마치 화물로 어디론가 부쳐지기 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창고 피스’ 작품도 눈길을 모은다. 맥주 박스와 여러 개의 종이 박스를 대충 쌓아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은, 23점에 달하는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미술품 운송 업체가 포장한 상태 그대로 4개의 운반용 나무 팔레트 위에 놓여 있다.
▲리움미술관 블랙박스에 설치된 상자에 가둔 발레 작품. 사진 = 왕진오 기자
지난 2004년 영국에서 첫 선을 보인 ‘창고 피스’는 이후 여러 도시에서 전시됐지만,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작가에게 또 다른 짐이 된 것이다. 양 작가는 “작품을 만들면 재고가 된다. 바로 작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이 ‘창고 피스’가 더욱 큰 짐으로 다가왔다”며 “안 팔린 재고가 쌓여 있을 때 절박함이 강하게 느껴졌다”며 작품을 설명했다.
이 작품은 독특하고 유별난 작품만 수집하는 독일의 한 컬렉터에게 팔렸고, 이를 계기로 양혜규는 작품이 상품으로서 재화의 역할을 하게 됨을 경험했다. 창작적 재구성, 전시 관행, 미술품 보관과 판매 등 예술 작품의 다층적 현실을 함축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양혜규 “내가 하는 일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
만용이라면 만용이고 용기라면 용기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은, 전시장 바닥에 널려 있는 의자들과 책상으로 만들어진 ‘VIP 학생회’ 작품을 봤을 때 절정에 다다른다. 무슨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행위에 대해 관람객들은 퍼즐을 풀기보다 어려운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중간 유형(삼족 광주리 토템) 설치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양혜규는 “내가 하는 일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싶고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 나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며 “그 궁금증 해소를 바탕으로 살갑게 이해하고 진정한 호기심으로 앞으로 나의 활동을 봐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열면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놔도 되는지 모르겠다. 만용이라면 만용이고 용기라면 용기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앞으로 추적해보고 싶은 주제였기에 시작해봤다”고 전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