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 “4세대로 달리니 따라와봐” vs 롯데 “초호화 영화타워로 맞불”
▲CGV천안펜타포트의 미술 갤러리. 이제 극장 공간에 미술관이 들어가는 시대가 됐다. 사진 = CGV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우리는 꿈을 꾸러 극장에 간다. 현실에선 악인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려 “이 한심한 세상”에 한숨을 쉬게 되지만, 영화 속에서는 슈퍼맨, 배트맨, 충무공이 악인들을 퍽퍽 잘도 무찌른다. 현실의 남북한 이산가족은 눈물만 흘리고 있지만, 영화 속에선 헤어졌던 연인-가족이 사연도 기막히게 극적으로 다시 상봉해 감격의 눈물을 관객과 함께 나눈다.
스토리가 있으므로 인간은 산다.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가 멸종시킨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차이는 픽션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었다”고 진단했다(‘김대식의 빅퀘스천’ 중). 호모사피엔스는 들소 벽화를 그려놓고 창을 던지며 “이렇게 하면 내일 저 큰 들소를 잡을 수 있다”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의 5층 입구. 호화판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사진 = 롯데시네마
‘꿈의 공장’인 영화관에서 여태까지는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관객은 꿈을 꾸기 시작했지만, 최근 국내 양대 극장체인인 CGV와 롯데시네마는 ‘이야기가 있는 극장 공간설계’에 나서 관심을 모은다. 공간설계를 통해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로 꿈같은 세상으로 들어서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1874∼1965년)은 1960년 타임지 인터뷰에서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처칠의 말처럼 건물 공간설계를 통한 스토리텔링에 선수를 치고 있는 것은, 국내 최대 극장체인인 CJ CGV(대표이사 서정)다.
CGV, 멀티플렉스 넘어 컬처플렉스로 디자인 질주
CGV는 1998년 CGV강변11 극장을 오픈하면서 ‘극장 공간설계’ 콘셉트를 도입한 이래, 지난해 10월 오픈한 CGV홍대의 4세대 디자인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CGV의 디자인 주제는 ‘1극장 1 콘셉트’다. 각 극장의 위치-특성에 따라 독특한 공간설계 콘셉트를 부여한다는 주의다.
이 극장체인의 1세대 디자인 콘셉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멀티플렉스 개념이다.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빌리지 로드쇼’와 합작해 개관한 CGV강변11 극장은 디자인적 요소와 컬러가 다양한 화려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기존 한국 극장의 단일 상영관 개념과는 달리 1개 층에 11개 상영실을 배치한 복합상영관의 시초였고, 상영실 외에 전자게임, 쇼핑, 음반-책 구입, 먹을거리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배치한 것이 특징이었다.
CGV 측의 설명에 따르면 CGV강변11은 별(Star) 주제의 패턴을 천정, 바닥 및 벽체 전체에 반복적으로 사용했고,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을 기본으로 사용해 강렬한 이미지를 어필했다. 단일 상영관(단관) 극장의 어두운 분위기를 환하고 화려한 문화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CGV의 2세대 디자인은 2000년대 초 등장해 2008년까지 이어진 ‘테마 콘셉트’다. CGV용산은 우주, CGV수원은 바다, CGV목동은 자연 등의 차별화 테마다. 골드클래스(항공기 1등석처럼 넓고 각도조절이 되는 좌석), 씨네드쉐프(영화를 보면서 식사) 등 프리미엄 특별관도 이때 도입됐다. 영화 보기가 데이트, 가족나들이가 되도록 유도한 디자인 콘셉트였다.
CGV 극장 디자인 변천사
1세대: 강렬한 빨-노-파 원색의 공간
2세대: 극장마다 우주-바다 등 테마
3세대: 黑과 광물질의 미니멀리즘
4세대: “젊음은 공사 중” 빈티지風
3세대 디자인은 미니멀(최소주의) 콘셉트였다. 2008∼2011년 도입됐으며, 어두운 조도에 골드와 블랙을 매치시켰다. 흑경(黑鏡: 까만 거울)과 광벽(鑛壁: 광물질 느낌의 타일) 등 미니멀 느낌의 소재를 사용해 장식적 디자인을 최대한 절제한 게 특징이었다.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CGV 제4세대 디자인 콘셉트는 ‘컬처플렉스(Cultureplex)’를 제창하면서 내놓은 빈티지풍(古風)이다.
컬처플렉스는 문화(Culture)와 복합공간(Complex)을 결합한 신조어로, 영화를 넘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4세대 디자인은 2011년 CGV청담씨네시티 오픈과 함께 시작됐다. 이 극장은 미국 브로드웨이 극장을 연상시키는 ‘뉴욕 빈티지 디자인’을 주조로, 공연과 파티를 함께 즐기는 멀티 스튜디오, 패션 팝업 스토어, 카페와 레스토랑이 한군데 모인 라이프스타일 몰링(malling: 쇼핑공간에서 여가도 즐기는 소비 행태)을 추구했다.
▲런던 소호 거리 풍으로 디자인한 CGV여의도에서 버스킹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이어 오픈한 CGV여의도는 런던 소호 거리를 걷는 듯한 ‘씨네마 스트리트’로 완성됐다. 로비와 상영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거리를 걸으며, 표를 사고 영화포스터 컬렉션을 구경하며 명작 DVD-블루레이를 만나는 씨네샵이 이어지는 영화의 거리를 연출한 형태다.
CGV천안펜타포트는 ‘씨네마 갤러리’로서 영화관 로비를 미술관으로 변신시켰다. CGV중계는 가족극장 콘셉트에 맞게 ‘씨네마 브릿지’라는 명칭으로 브릿지 공간을 별도 제작해 멀티 프로젝션 기술인 ScreenX와 결합시켜 양 옆면과 돔형의 천장, 그리고 앞면에 펼쳐지는 환상적 입체 영상을 통해 놀이공원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고 CGV 측은 설명했다.
100번째 상영관으로 문을 연 CGV신촌아트레온은 최시영 건축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프랑스 파리북역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젊음의 거리 신촌인 만큼 ‘영원히 공사 중’을 콘셉트로 잡았다.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영화관 입구부터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마법학교) 식당 홀을 연상케 하는 높은 천장, 유머러스한 대기 공간, 북카페와 라운지 콘셉트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지하 3층까지 공사 중 콘셉트가 이어진다.
▲"젊음은 계속 공사 중"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공사 현장 같은 분위기를 살리고, 영어 문구까지 써넣은 CGV신촌아트레온 관의 내부 실내 디자인.(사진=CGV)
CGV의 4세대 ‘공사 중’ 디자인 콘셉트에는 시멘트 벽, 깨진 타일, 파이프, 전깃줄, 공구, 망사 유리 등 거친 물성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격자 구조물에 컨테이너까지 등장하는 자유로움을 발산한다.
가장 최근 개관한 CGV홍대는, ‘한국 인디문화 구역’에 걸맞게, 독일 베를린의 명소 클럽 베르크하인의 개념을 차용했다. 베르크하인은 동독 시절의 버려진 발전소를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만나는 테크노 성지로 탈바꿈시킨 세계적 명소다. 지역 문화와 만나야 장소가 완성됨을 보여주자는 의도다.
CGV홍대는 공간이 가진 ‘날 것(raw condition)’ 상태를 최대한 살리면서 젊음의 에너지가 표출되는 공간으로 연출된다. 로비의 파사드 구조물을 ScreenX 영상과 연계시켜 시간-상황에 따라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다는 게 CGV홍대 측의 설명이다. CGV신촌과 CGV홍대의 젊은 직원들은 ’공사 중‘ 콘셉트에 맞게 작업복 차림으로 근무한다.
롯데시네마, 편안-화려 인테리어로 승부
1999년 설립된 멀티플렉스 영화관 롯데시네마의 인테리어 콘셉트는 한국적인 미와 심플한 디자인을 결합시켜 편안하고 깔끔한 느낌의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롯데시네마 샤롯데 극장의 실내구성. 사진 = 롯데시네마
관람객을 위한 상영관의 카펫은 한국적 디자인을 잘 살렸으며, 영화관 홀은 샴페인 골드와 화이트, 강렬한 레드를 결합시켜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낼 수 있도록 연출했다는 게 롯데시네마(대표이사 이원준) 측의 설명이다.
‘영화 예술의 중심지’를 슬로건으로 내건 롯데시네마는 작년 제2롯데월드 단지 안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관 ‘롯데시네마 월드타워’를 개관했다.
‘샤롯데’ ‘샤롯데프리미엄’ 등으로 이름을 붙인 프리미엄 상영관에는 골드 컬러를 사용하고, 가늘고 긴 글씨체를 활용함으로써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수퍼4D’ ‘수퍼플렉스’ ‘수퍼사운드’ 등의 첨단기술을 도입한 스페셜관에는 푸른색을 중심 색조로 사용하고, 각 스페셜관의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사물이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제2롯데월드 ‘시네마 타워’
10-11층: 상상의 미래 도시
7-8-9층: 씨네파크 문화의 광장
5-6층: 품격의 샤롯데 명품 영화관
5∼11층까지 테마별로 구성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의 10, 11층에는 ‘상상의 미래도시’라는 콘셉트로 ‘수퍼 플렉스 G’라는 이름의 초대형 상영관이 설치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또한 ‘수퍼 4D’라고 불리는 국내 최대 4D(영화의 내용에 따라 번개, 거품, 안개, 바람, 물, 향기, 진동, 레이저의 8가지 효과를 동원) 상영관도 마련됐다.
7, 8, 9층 메인 홀은 ‘예술 문화의 도시’라는 콘셉트로 공연이 가능한 ‘씨네파크’ 광장이 설치됐다. 관람을 대기할 때도 심심하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타워에는 소규모 단체 관람객들이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게 최적화시킨 영화관 ‘샤롯데 프라이빗’도 운영된다. 유아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씨네패밀리’는 일반좌석과 더불어 소파형 좌석이 상영관 내 독립공간에 설치돼 아이들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고도 단란한 가족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5, 6층은 ‘전통의 낭만과 품격이 있는 도시’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롯데시네마의 고품격 영화관으로 알려진 ‘샤롯데’ 명품 영화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아르떼 클래식’관은 다양성 영화를 상영한다.
▲잠실 제2롯데월드 내 시네마타워의 7층 홀. 호려한 대리석 치장이 특징이다. 사진 = 롯데시네마
‘씨네비즈’관은 기업, 단체의 대규모 컨퍼런스 기능에 최적화된 영화관으로 대관 그룹이 영화도 보고 다채로운 행사도 진행할 수 있는 특화 상영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시설을 갖춘 제2롯데월드 영화관은 지난해 12월 17일 상영관 내의 소음과 진동 탓에 서울시로부터 영업중단 조치를 받아, “아시아 최대 규모 특별상영관”이라는 롯데시네마 측의 설명에도 불과하고 현재 일반인의 관람-방문이 불가능한 상태다.
롯데시네마의 극장 공간설계 콘셉트는, CGV의 능동적인 디자인 콘셉트와는 다르다. 디자인 테마를 갖기보다는 “고객을 편하게 모신다”는 수동적 성격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롯데시네마의 대부분 상영관이 자사 소유의 건물로서 디자인 콘셉트를 적용하기 훨씬 용이한 환경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임대 건물을 통해 고객만족을 지향하는 CGV의 콘셉트와 는 큰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