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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3대륙 홀로 달린 한달 여행, 대서양과 아랍에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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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7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4.22 15:15:16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8일차 (카사블랑카 → 라바트 → 카사블랑카)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이다. 호텔 조식 후 라바트로 향한다. 카사블랑카에서 북쪽으로 90km 떨어진 라바트행 열차가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카사포르역으로 갔다. 카사포르역은 시내 중심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가깝고 근처에 고급 호텔과 상점들이 많다. 역 구내 키오스크에는 우아한 신문잡지가 많다. 아랍어 매체뿐만 아니라 르마텡, 르몽드, 르스와 같은 프랑스어 매체도 가득 쌓였다.

도시 내 교통은 트램이 대세

열차는 항구 부근 해안 산업지대를 지나 비옥한 들판을 누비며 북행한 지 한 시간만에 라바트빌에 도착한다. 라바트는 모로코 왕국 수도이자 행정 중심도시로서 인구가 150만 명이다. 아주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다. 이제 곧 개통을 앞둔 트램이 시운전 중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트램이 대세인가 보다. 이스탄불에서는 트램이 거미줄처럼 시내를 누비고 예루살렘에서도 트램이 곧 개통을 앞두고 있었다. 세비야에서도 새로 개통한 트램이 프라도와 누에보 광장 사이를 운행 중이다.

희망의 발걸음을 내딛는 젊은 아프리카

젊은이들로 가득 찬 라바트 거리는 화창한 날씨만큼 활기차다. 젊은 아프리카가 희망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모로코에서도 곳곳에 도시 재개발과 공공 건설로 고층 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인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마그렙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변화가 아프리카 발전에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머나먼 대서양변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라바트 거리를 활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 욕심을 냈기에 고단한 여정이었지만 세상은 넓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우치고 또 깨우쳤다.

▲라바트 거리. 인구 150만 명이 살고 있는 라바트는 모로코 왕국 수도이자 행정 중심으로서, 아주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다. 사진 = 김현주

하얗고 파란 집, 그리고 성곽도시

기차역에서 모하메드 5세 거리를 따라 내려오니 곧 메디나 중앙시장이다. 여느 시장처럼 번잡하다. 시장을 걸으며 아랍어, 아랍 냄새, 아랍 음악에 흠뻑 젖는다. 시장이 끝나자 강어귀에 다다르고 눈앞에 적갈색의 중후한 성곽이 나타난다. 우다이아 카스바에 도달한 것이다. 몰타에서 본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우다이아는 옛날 성채와 곡물 창고였던 곳이다. 우다이아 문을 지나니 수백 년 전에 지은 하얗고 파란 집들과 미로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는 800년 넘게 이어온 방식대로 시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젊은이들로 가득 찬 라바트 거리. 화창한 날씨만큼 밝은 젊은이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사진 = 김현주

대서양에 아듀를 고하다

미로 골목을 빠져 나오니 다시 대서양이다. 강 건너 멀리 살레도 보인다. 살레는 현재 라바트의 위성도시이지만 11세기에 라바트보다 먼저 생겨난 곳이다. 17세기에는 대서양 해적의 본거지로 악명이 높았으나 13∼16세기에 지은 건축물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살레까지 갔다 올 수 있는 만만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카사블랑카 시내 중심가의 빈부 격차

대서양과 아쉬운 아듀를 하고 시내 중심으로 나가기 위해 메디나 시장 골목을 다시 지난다. 양탄자와 접시가 유독 예쁘다. 시장 안 식당에서 슈와르마 두 개와 콜라로 점심을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대서양, 시장 골목, 하얗고 파란 집, 붉은 성곽…. 이런 것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라바트 시내에서 본 트램. 개통을 앞두고 시운전 중이다. 사진 = 김현주

도시 풍경을 만끽하며 아주 천천히 걸어 라바트빌 역에 도착, 카사블랑카로 돌아온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중간에 서울 명동 같은 쇼핑 거리를 지난다. 시내 중심가 거리에는 고급 독일 승용차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아무데나 세워져 있는 반면 거지도 많다. 심각한 빈부 격차가 느껴진다. 애를 안고 있는 거지에게 나도 동전 몇 닢 보태어준다.

아침에 왔던 길을 더듬어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일찍 하루 일과가 끝난 날이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모로코의 마지막 밤, 아니 지중해-대서양 일주 여행의 마지막 밤만 남겨 놓고 있다. 이 감동과 성취감 그리고 큰 배움과 깨달음을 글로는 도저히 전부 전달할 방법이 없다. 여유로운 밤이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일상에 복귀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할 시간이다.

29일차 (카사블랑카 → 이스탄불 경유 → 서울)

아랍어 vs 프랑스어

모로코에서 프랑스어의 위력은 막강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TV는 아랍어와 함께 프랑스어 자막을 병기한다. 지리 시간에 북아프리카가 프랑스어 지역이라는 것을 배웠지만 프랑스가 물러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중요하다. 사하라 이남에서도 동부 아프리카 몇 나라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하면 아프리카는 거의 다 프랑스어 지역 아닌가?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어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깨닫는다.

▲라바트에서는 하얗고 파란 집을 유독 자주 볼 수 있었다. 청렴한 색깔이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사진 = 김현주

아랍어의 중요성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스라엘에서는 학교에서 아랍어도 가르친다. 인도 서쪽 아라비아해부터 서쪽으로는 모로코, 남쪽으로는 나이지리아까지 모두 아랍어 지역이다. 심지어는 동남아 회교 국가에도 아랍어 능통자가 적지 않다. 사용자 인구는 중국어, 힌두어,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순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여행뿐 아니라 정치, 교역, 상업에도 큰 차이를 낸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언어가 가장 중요한 매개임을 그리스, 이탈리아, 몰타, 이스라엘,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쉬지 않고 확인하며 다녔다.

징그러운 세관원

공항 출국장에서 엉뚱한 일이 생겼다. 여권과 보딩패스를 받아 출국 스탬프를 받고 세관을 통과하려는데 세관원이 돈은 신고할 것이 없냐고 묻는다. 30디람 남은 게 전부라고 했더니 커피 사먹을 돈 정도 줄 수 없냐고 한다. 참 징그러운 놈이다. 오랜만에 부패한 관리를 직접 겪는다. 출국장 내 푸드코트에서 카페올레와 도넛 하나 사먹으니 남은 모로코 돈 30디람이 모두 없어진다.

▲모로코에선 아직 인쇄매체가 대세다. 거리의 다양한 인쇄물들. 사진 = 김현주

윤기 돌기 시작하는 내 얼굴

마지막 순간 살짝 기분을 잡쳤지만 아름답고 정겨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떠나는, 그리고 길었던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래며 이스탄불행 터키항공 여객기에 오른다. 여행 기간 중 불규칙한 식사, 불편한 잠자리, 긴장감 등으로 푸석푸석해진 얼굴이 모로코 3박 4일 동안 잘 쉬고 잘 먹고 잘 잔 덕분에 윤기를 찾기 시작했다. 귀국길이란 이렇게 마음 편한 것인가 보다.

이미 한국에 온 거나 마찬가지

이륙한 항공기는 북아프리카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날다가 튀니지에서 지중해 상공으로 들어와 이탈리아 시칠리아, 그리스를 건너 이스탄불에 닿는다. 밤늦은 시각 이스탄불 공항은 매우 분주하다. 서울행 항공기가 출발하는 탑승구에는 한국인들이 가득하니 이미 한국에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10시간 비행 끝에 한국 시각 오후 5시 대륙의 동쪽 끝에 도착함으로써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적갈색의 중후한 위용을 갖춘 우다이아 카스바는 옛날 성채와 곡물창고로 쓰였다. 사진 = 김현주

겁 없이 도전했던 대장정

서울에는 여전히 추위가 남아 있다. 이 혹독하고 척박한 땅에 사는 백성들이 전 세계 방방곡곡에 이룩한 성취를 확인한 것 또한 이번 여행의 소득이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지만 인생이 길지 않음을 아쉬워한다. 장대한 여행을 마친 성취감에 스스로 도취한다. 느끼고 생각한 것이 너무 많아서 지금 이 순간 몇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다. 겁도 없이 무려 한 달 이상의 긴 여정을 혼자 계획하고 떠났지만 언제 다시 이런 만용을 부려볼 수 있을까? 보살펴 준 절대자께 감사할 따름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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