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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멕시코시티 뒤덮은 빈민촌은 ‘잊힌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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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4.28 09:14:53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시카고 → 멕시코시티)

좁고 낡은 오헤어공항

학회를 마치고 일행과 헤어져 멕시코시티로 떠나는 날이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공항이지만 시설은 좁고 낡았다. 인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홍콩 첵랍콕공항과 비교하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처음 건설했을 때는 세계 최고의 시설이었으나 훗날 아시아 국가들이 허브 도시를 노리며 앞 다퉈 대형 국제공항을 새로 지으면서 미국 공항들은 낡은 시설이 돼버렸다.

시카고를 출발한 항공기는 북미 대륙을 서남쪽으로 가른다. 저 아래 대평원을 눈이 시리도록 본다. 대평원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항공기는 시카고 출발 4시간만인 현지 시각 밤 11시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매우 신속하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와 15분 만에 시내 중심가 레포르마 거리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호텔은 위치의 편리함 대신에 쾌적함을 희생하고 말았다. 밤새도록 도로에서 올라오는 자동차 소음과 인근 나이트클럽 음악 소리에 시달리느라 몇 번씩 잠을 깼다. 쾌적한 미국 중서부를 떠나 하룻밤 만에 바뀐 풍경과 분위기가 무척 낯설다.


2일차 (멕시코시티)

서울보다 복잡해 보이는 멕시코시티의 첫인상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 이미 도시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멕시코 전체 인구 1억 1000만 명 중 1/5인 2200만 명이 이 도시에 몰려 산다. 서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느낌이다. 1521년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가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파괴하고 바로 그 위에 건설한 도시다. 그런 만큼 지하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들이 잠자고 있어서 유네스코는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해발 2240m 고원에 자리 잡고 있어서 태양은 뜨겁지만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 그늘만 찾아 들어가면 시원하고 6월 초여름인데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할 정도다.

▲가리발디 광장. 공연을 준비하는 거리 악사, 악단들로 붐빈다. 사진 = 김현주

혼혈 메스티조 천국의 현장

노랗고 파랗고 붉은 원색 페인트칠을 한 작은 건물들, 군데군데 섞여 있는 가톨릭 성당의 두오모,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 이런 풍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메스티조만큼 다양한 생김새 분포가 또 있을까? 메스티조는 이베리아 반도 출신 백인들이 신대륙 인디오들과 수백 년 피를 섞으면서 나타난 거대한 신(新)인종군(群)이다. 멕시코에서 백인은 10%를 차지한다지만 도심 거리에선 보기 힘들다. 흑인도 아시아인도 보기 어렵다. 유럽계 혈통 백인들은 도심을 내주고 서쪽 혹은 남서쪽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다양한 노선을 갖춘 노르테센트랄 버스 터미널

피라미드에 가기 위해 오전 9시 무렵 호텔을 나온다. 출근 인파가 막 누그러든 시각이다. 호텔 바로 앞 이달고 메트로역에서 노르테센트랄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고무바퀴로 달리는 멕시코 메트로는 노선이 다양하고 자주 다니며 승차감 또한 좋은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노르테센트랄 버스터미널은 거대하다.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모든 국내 노선은 물론이고 미국 텍사스, LA, 덴버, 심지어 시카고까지 가는 노선도 있다. 이틀 후 갈 예정인 과나후아토행 버스표를 예매해 놓고 피라미드행 버스에 오른다.

▲멕시코시티 빈민가 ‘잃어버린 도시’ 전경. 산언덕에 서민들의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 김현주

거대 국가 멕시코에 놀라다

멕시코 거리 풍경과 사람들 모습은 어쩌면 필리핀과 닮았다. 스페인과 미국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는 점에서 당연히 그럴 것이다. 리오그란데 국경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는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완전히 다른 두 문명이 국경을 맞대고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약 전쟁의 비극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읽은 ‘타임(TIME)’ 매거진 커버스토리는 멕시코 마약 전쟁 이야기다. 부패한 경찰과 관리가 마약 카르텔과 연계돼 만들어내는 멕시코의 비극을 다뤘다. 미국 텍사스와 맞붙은 멕시코 국경도시 후아레스는 작년 한 해 인구 10만 명 당 200건의 살인이 발생해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도시로 기록됐다. 거리거리 다니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신이 되는 곳’이란 뜻을 지닌 테오티후아칸 유적지 발굴터. 지금도 발굴 작업 중이다. 사진 = 김현주

멕시코 빈민가 ‘잃어버린 도시’

버스는 도시 외곽 긴 언덕을 넘어 서북쪽으로 향한다. 산언덕이란 산언덕에는 모두 서민들의 누추한 집들이 한없이 기어 올라간다. 여기가 그 유명한 멕시코 빈민가 시우다데스 페르디다스(Ciudades Perdidas, ‘잃어버린 도시’라는 뜻)이다. 마을 중심에는 예외 없이 몇 백 년 됐음직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마을 하나쯤은 가보고 싶지만 위험한 노릇일 것 같아 포기한다. 고원 분지 도시인 멕시코시티를 사방으로 둘러싼 언덕을 넘어 한 시간 걸려 피라미드가 있는 테오티후아칸 정문에 닿았다.

고대 문명 유적지에서 들린 소리 “아미고”

고원의 태양이 뜨겁다. 해발고도가 높고 습도가 낮아 그다지 더위를 느끼지 않지만 얼굴이 금세 그을린다. 피라미드로 어이지는 길 양옆에는 기념품 가게, 그리고 늘어선 선인장 가로수가 멕시코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기원전 2세기에 시작해 7세기에 갑자기 소멸한 고대 문명 유적지에는 “아미고”를 외치며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장사꾼들의 호각 소리가 요란하다. 피리 장사의 가락이 소슬바람에 실려 구성지게 들린다.

▲250개의 가파른 계단을 보유하고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 오르면 멕시코의 눈부신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 김현주

‘인간이 신이 되는 곳’ 테오티후아칸

피라미드 유적지에는 70m 높이에 250개의 계단을 가진 ‘태양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산재한다. 피라미드 지역은 ‘죽은 자의 길(Calle de los Muertos)’을 따라 사원, 궁전, 관청, 주거 지역이 늘어서 있던 곳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발굴 작업 중이다. 아스텍이 도달했을 때는 이미 폐허에 불과했지만 이곳은 그들에게 해와 달, 그리고 우주가 생성된 성지(聖地)였고 아스텍은 이곳을 ‘인간이 신이 되는 곳’이란 뜻으로 테오티후아칸이라고 불렀다.

250개 가파른 계단 올라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 서다

250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 오르니 눈부신 사위 풍경이 오르는 수고를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드넓은 평원을 산이 둘러싸고, 주변 마을에는 눈이 닿는 곳마다 교회와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참 멕시코다운 풍경이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내려와 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마침 멕시코시티행 버스가 온다. 멕시코시티 외곽 인디오스베르데스에서 버스를 내려 메트로를 번갈아 타며 과달루페 대성당을 찾아간다. 가는 길 양편으로는 서민들의 삶이 펼쳐진다. 나도 그들과 섞여 멕시코의 전형적인 도시 변두리 분위기를 즐긴다.

순례자들 발길 이어지는 과달루페 대성당

과달루페 성당(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Guadalupe)은 과달라페 성모 마리아가 1531년 발현한 장소에 세워졌고 2002년 로마 교황청은 이곳을 성지로 공식 인정했다.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00년 가까이 된 성당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미사가 열리고 있다.

그 옆에는 현대식 건축물로 새로 지은 5만 명 규모의 초대형 성당이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성당 부지 맨 위쪽 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교회당에 오르니 가까이 라비야 시내, 멀리 멕시코시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당 내부에는 초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한 인디오 개종을 묘사한 토착 성화가 눈길을 끈다.

▲과달루페 대성당은 500년 세월의 무게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여전히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 = 김현주

해방자 볼리바르 동상

차풀테팩 메트로역에서 내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시내 중심부 차이나타운을 지난다. 한두 블록에 불과한 작은 규모이지만 멕시코시티에서 차이나타운을 발견하니 기분이 묘하다. 도심에 위치한 미술관(Museo de Bellas Artes) 관람을 마치고 인근 알라메이다 공원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긴다.

가리발디 광장으로 이어지는 레포르마 거리에 우뚝 선 볼리바르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상에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쿠아도르, 페루, 파나마의 해방자이자 볼리비아의 창건자’라고 기록돼 있다. 멕시코의 혁명과 독립을 주도한 세력이 모두 그렇듯이 그 또한 크리올로, 즉 식민지 출생 백인이다. 베네수엘라 태생의 볼리바르는 스페인과 유럽에 유학한 지식인이다. 1819년 콜롬비아 공화국을 세워 대통령이 됐고 나중에는 페루알토(현 볼리비아)의 해방자가 됐다.

땅거미가 깔리는 가리발디 광장

가리발디 광장에는 마침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이라서 공연을 준비하는 거리 악사, 거리 악단들로 붐빈다. 검은 망토와 턱시도, 창이 넓은 모자, 투우사 복장 등 저마다의 멋을 내고 곡조를 가다듬는다. 광장 주위에 가득한 카페와 식당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낮의 더위는 간 곳 없고 저녁 바람이 으스스하다. 어둠이 내려서 광장에는 흥이 차오르기 시작하지만 더 길게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를 조심스레 걸어 호텔로 돌아온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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