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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불각의 아름다움’, 추상조각 선구자 김종영과 그의 시대

100주기 기리는 전시회들 잇따라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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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0-431호 왕진오 기자⁄ 2015.05.18 17:58:00

▲작품 제작 중인 김종영.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 1915∼1982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예술가이자 교육자, 20세기의 선비로서 조용하지만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두 전시가 나란히 열린다. 5월 7일부터 서울대학교미술관(7월 26일까지)과 김종영미술관(8월 28일까지)에서다. 이 두 전시 뒤에는 9월 10일∼12월 10일 김종영의 고향인 창원의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통합 전시회가 개최된다.

김종영미술관의 전시는 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전시에는 △김종영이 휘문고보에 재학 중이던 1932년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안진경체의 ‘원정비’를 임서해 1등상을 받은 자료 △1953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공모 관련 자료 △1963년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 건립된 ‘3.1 독립선언 기념탑’의 제작, 설치, 철거 과정과 서대문역사공원에 재건립된 경위 관련 자료 △한국근대 조각사  복원의 귀중한 자료이자 근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조모상’(1936년) 등이 공개된다.

▲김종영, ‘작품 78-1’, 돌, 12 x 7 x 21cm, 1978년. 김종영미술관 소장.

서울대학교미술관 전시는 그의 삶과 예술을 나타내는 대표적 추상조각 작품들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불각(不刻: 억지로 깎지 않음. 물체의  모사가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감각과 생명을 발견하는 것이란 의미)’과 ‘유희’ 정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짚어본다. 아울러 김경승, 윤승욱, 윤효중, 김만술의 조각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서 김종영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시킨다. 나아가 그의 조형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폴 세잔(Paul Cezanne)의 드로잉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예를 함께 전시해 시대를 뛰어넘는 조형의 본질을 탐구한다.

김종영의 자신을 향한 관찰자적 시선은 그의 자화상과 자각상(自刻像: 작가 자신의 모습을 새긴 조각)에서도 나타난다. 그가 그린 자화상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자화상을 통해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자신과 투쟁했던 예술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자화상’. 종이에 수채, 35 x 38cm, 1975년. 김종영미술관 소장.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웠던 김종영은 창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그가 고등학생 때 그린 유화로는 ‘동소문 고개’와 고향의 생가 그림이 남아 있다.

자화상-자각상 통해 평생 자신과 투쟁한 모습 볼 수 있어

1932년에는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3회 ‘전조선 남녀 학생작품’전에 안진경체의 ‘원정비문(元靖碑文)’을 출품해 습자 부분 1등상을 받았다. 1936년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 김종영은 1941년 졸업 때까지 일본인 교수들로부터 배우기보다는 주로 화집을 통해 서양 현대조각의 흐름과 문법을 습득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론을 밝힌 에세이에서 작품의 모티브가 주로 인물, 식물, 산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에게 있어 조각은 형태와 공간을 찾아가는 노정(路程)이자 순수 추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험하는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자연대상이 지닌 형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구체적인 생명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은 유기적 추상으로 발전하고, 사물의 구조에 대한 관심은 기하학적 추상으로 발전했지만 이러한 과정이 공식처럼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윤승욱, ‘피리부는 소녀’. 브론즈, 33 x 35 x 150cm, 1937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시에 공개되는 그의 작품은 기하학적인 구조로 이루어졌지만 찬찬히 관찰하면 사람의 얼굴임을 알 수 있으며, 유기적인 형태도 자연형태를 탐한 듯 자유자재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만들어내는 형태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물의 형태미를 깊이 탐구한 결과들이다.

김종영의 1950년대 추상조각, 특히 용접 기법을 활용한 작품은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추상 표현의 특징을 드러낸다. 비균제(asymmetry)의 추상조각을 추구하면서도 인체 조각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조각 세계는, 부드러운 곡선과 덩어리가 강조된 유기적 추상, 그리고 엄격하고 자기완결성이 강한 기하학적 추상을 특징으로 한다.

“깎지 마라”는 불각의 조각 세계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면 기하학적 추상은 불각의 아름다움으로 귀결하는 양상을 보이는가 하면, 기성품에 최소한의 손질만 가한 작품도 나타난다. 이런 점에 착안해 김종영미술관 사미루(四美樓, 신관) 1전시실의 전시는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그의 조각과 연결된 드로잉을 추상에의 충동, 유기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 불각의 아름다움이란 소주제로 보여준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의 불각재 2전시실.

김종영은 1915년 6월 26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장발 선생의 안내로 조각의 길을 택해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했으며, 해방 후 1948년 서울대 예술대학 교수가 됐으며 1980년에 정년퇴임 한다. 그는 6.25전쟁 중인 1953년 3월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가 개최한 ‘무명 정치수(無名 政治囚)를 위한 기념비’ 국제 조각 공모전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입상해 한국 미술계에 희망을 심어줬다.

선비 작가로 유명한 김종영은 교육자, 국제적인 조형언어를 작품으로 표현한 조각가로 인정받고 있다. 1954년부터 철재, 청동, 목재, 석재 같은 다양한 재료로 추상조각을 했으며, 이후 채색 조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 조각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가 작업한 공공조각은 서대문독립공원 내 ‘3.1독립선언기념탑’과 포항의 ‘전몰학생기념비’가 있다. 그는 1974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0년 국가유공자 사후 대통령포상, 4.19 유공자 건국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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