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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시리즈 ⑭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사회가 버려도 조합으로 살길 찾는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만든 연구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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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2호 안창현 기자⁄ 2015.05.27 09:13:08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KOWORC) 조합원들이 함께 한 회의 모습. 사진 =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한국의 경력단절 여성이 2014년 214만 명에 달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기혼 여성 중 출산, 육아 등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다시 직장에 돌아가는 비율은 극히 낮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매년 6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쉽게 성과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대부분의 대책은 주로 재취업을 위한 교육 훈련이나 취업 알선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해왔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경력단절 여성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경력단절 여성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절하면서 전문성을 살릴 방법은 없을까? 자기 혼자가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힘을 합친다면?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KOWORC)은 한국의 전문직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하나의 모법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은 경력이 단절된 고학력 여성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이 협동조합의 추명자 이사장에 따르면 한국에서 고학력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겪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는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친정이나 시댁이 가까운지, 할머니가 육아에 도움을 주는지,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을 월급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등 정말 다양한 요인이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2015년 1월 31일, 정기총회와 함께 협동조합 창립 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 =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

추 이사장 자신이 그랬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비교적 늦게 결혼했고 아기를 낳았다.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뒀다. 다시 예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없을 줄은 미처 몰랐다.”

추 이사장은 3년 동안 육아에 전념한 뒤 새 일을 찾았지만, 채용해주는 곳이 없었다. 이화여대에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고, 생채의공학연구소나 과학기술평가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경력은 소용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력단절 여성들이 겪는 경험이었다.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고 번번이 실패를 맛보면서 남은 일은 마트 계산원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마트 계산원을 낮게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력을 살려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미래창조과학부 ‘2014년도 R&D Kiosk 브리프 발간 사업’으로 KOWORC에서 자료조사, 편집, 디자인을 진행한 ‘R&D Kiosk’ 표지 사진. 사진 =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

추 이사장은 “풀타임으로 직장 일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아이가 크면서 하루 7시간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맞벌이 부부로 일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그런 상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변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상황은 비슷했다.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경우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일단 경력이 단절되고 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추 이사장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보면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협동조합을 생각했다. 막연했던 협동조합을 실제 설립하기까지 추 이사장의 남편인 박준연 씨의 역할도 컸다. 지금은 협동조합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 사무국장은 여성 정책과 관련된 연구소와 정부 부처 등에서 일했고, 평소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았다. 추 이사장은 직장까지 그만둔 남편과 함께 주변의 동기와 선후배들과 회동하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2014년 2월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생물정보학-행정학 등 석·박사 13명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은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여성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에는 7명 정도로 시작했지만, 이후 조합원이 늘었다. 조합원의 출신은 다양하다. 생물정보학, 신경생리학, 신경생물학 등 이과 계열도 있고, 행정학, 사회복지학, 정책학을 전공한 문과 계열도 있다. 이들은 협동조합에서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진행한다. 이전에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했던 일의 연장선인 셈이다.

추 이사장은 “정부 부처와 그 산하 기관들이 외부에 연구 용역을 주는 일은 늘 있고, 특히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14년 5월 27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포럼에서 발제하는 추명자 이사장. 사진 =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

조합원은 프로젝트별로 팀을 짜서 재택근무를 하고, 각자 시간을 맞춰 팀장의 주도 아래 2~3주에 한 번 정기적인 점검회의를 가지면서 일을 진행한다. 조합원의 전공이 다양한 만큼 과학기술연구팀과 사회과학연구팀, 기획홍보팀으로 구성했다.

장기적으로 연구개발을 해야 하지만, 운영자금도 부족하고 아직 경험이 부족해 현재로선 협동조합 차원에서 주로 기획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추 이사장은 “정부에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정책을 만들고, 관련 부처나 기관에서 성과 부담이 적은 분야에서 경력단절 여성에게 프로젝트를 제공하려는 흐름이 있어 시장이 나름 형성됐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각각의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이 본격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과는 좋은 편이다. 그동안 한국정보화진흥원의 ‘해외 신기술 동향조사’,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의 ‘2014 여성유망직종 정보서 발간 사업’, 미래창조과학부의 ‘2014년도 R&D Kiosk 브리프 발간 사업’,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위탁한 ‘2014년도 여성과학기술인 R&D 활성화를 위한 기관혁신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이 중 해외 조사 작업은 외국에 거주하는 조합원 2명이 큰 힘이 되었다.

협동조합의 사무국은 조합원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모니터링하고, 적합한 연구 과제를 찾아 조합원에게 공고해 희망 조합원들에게 과제별 팀을 꾸리도록 도와준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조합원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계약, 정산 등의 행정서비스를 사무국이 대행해준다.

경력단절 여성들, 스스로의 길을 찾다

협동조합 프로젝트에서 인건비는 연구에 참여한 조합원에게 돌아가고, 사무국 운영은 간접비를 가지고 운영한다. “조합원들이 평소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협동조합 이사들이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사회는 매월 1회 개최하고, 전체 조합원의 워크숍은 매년 1회 이상 진행한다. 1박2일 동안 워크숍에서 조합원들끼리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2014년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한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서 KOWORC에 대해 발표 중인 박준연 사무국장. 사진 =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

추 이사장은 “조합원이 기혼 여성이기 때문에 워크숍에 남편과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워크숍을 계기로 남편들이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됐고, 조합원 만족도와 반응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걱정이 없지는 않다. 추 이사장은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은 많고, 협동조합에 참여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희망자도 많지만, 어떤 경우에는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보다는 단지 ‘일을 다시 할 기회’라는 생각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활동을 단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합원 숫자를 늘리기에는 신중하다. 조합원 가입 조건은 경력단절 여성이면서 석사 이상 학력으로 기존에 연구 프로젝트 경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 가운데 발기인의 추천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추 이사장은 기존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좀 더 소속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전체 조합원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무래도 힘들어서 아직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조합원들도 있기 때문이다.

“향후 몇 년간은 실적을 더 높이기보다는 실제로 협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유기적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잘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전 조합원이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식을 좀 더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창의여성연구협동조합이 맡고 싶은 역할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이 정부 정책의 주요한 대상이 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각종 활동과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장기적으로 맡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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