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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러시아-동유럽]러시아와의 아찔 인연 이별하고 검은머리 루마니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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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6.18 09:10:23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4일차 (상트페테르부르크 → 모스크바 → 부카레스트)

풀코보 공항의 모습

오전 10시 호텔에서 나와 지하철로 모스크바역까지 와서 39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풀코보 공항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구간에 여러 항공사들이 쉬지 않고 셔틀처럼 다닌다. 기품과 여유가 넘치는 격조 있는 나라 러시아를 떠나려니 아쉽다. 이곳을 다시 방문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모스크바행 국내선 항공기에 오르기 위해 대기한다.

미스유니버스급 미인인 항공기 보안 요원들의 검색을 받는 일조차도 상쾌하게 러시아 양대 도시 여행을 끝내간다. 공항 계류장에 서 있는 3발 튜폴레프 TU-154 기종의 모습이 괴팍하다. TU 기종은 러시아 지방 노선과 구 동구권 항공사에 아직도 더러 취항 중이다. 그러나 생산을 중단한 지 오래돼 부품 공급이 원활치 않아 쉬지 않고 사고를 유발하는 말썽꾸러기로 EU 영공 운항이 금지돼 있다. 대합실에서 마구 떠드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러시아 승객들이 안쓰럽게 바라본다. 유럽화되고 세련된 러시아 국민과 어찌 이리 다르단 말인가? 대국이라고 다 같은 대국이 아닌가 보다.

러시아와 중국

중국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혹은 홍콩과 모스크바 사이에 하루 수차례 대형 항공기가 드나들면서 수많은 중국인들을 쏟아낸다. 세계 유명 관광지 어디서나 그렇듯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여러 팀의 중국인 단체 관광단 물결을 목격했다.

마침 공항에서 읽은 러시아 신문에 달라이라마의 러시아 방문 좌절을 개탄하는 논평이 실렸다. 러시아 거주 130만 명 불교도를 위한 칼미키아 자치공화국 방문인데 러시아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비자를 거부했다는 이야기다.

▲풀코보 공항의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구간에 여러 항공사가 쉬지 않고 셔틀처럼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현재 중국 인구는 러시아의 10배, 몇 년 후에는 중국의 경제 규모까지 러시아의 10배가 되는 상황에서 초강대국의 부상과 노(老)대국 러시아의 명암이 잘 대비되는 내용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서글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디를 가도 남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떠들고 다니는 중국인들을 부러워해야 할지 딱하게 여겨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대목이다.

모스크바 공항의 기적

쉐르메찌에보 모스크바 국제공항은 이번 여행 중 나와 인연이 많다. 첫 목적지 러시아 입국을 했던 곳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내선으로 나와 루마니아 부카레스트로 가기 위한 환승 공항이고, 여행 마지막 날 헬싱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환승공항이라서 세 번 들렀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초대형 참사가 될 뻔 한 일이 벌어졌으니 그 에피소드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국내선에서 부카레스트행 환승은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공항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볼 일을 보고 나오는 과정에서 여권과 지갑, 신용카드, 돈 등 귀중품이 모두 들어 있는 작은 어깨걸이 가방을 화장실 내 부스에 두고 나왔다. 보통 나는 긴 여행이라도 이동의 편의를 위해 기내 선반에 들어가는 크지 않은 여행 가방과 어깨걸이 작은 가방, 이렇게 두 개만을 들고 다니는데 바로 그 어깨 가방이 문제였다.

기분 좋게 화장실에서 나와 10분 이상 걸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가 뭔가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어깨에 걸려 있어야 할 가방이 없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방금 전 나의 행적을 돌이켜보니 화장실이었다. 사색이 돼 화장실로 달려가니 마침 청소 아주머니가 나온다. 통하지 않는 언어로 가방 못 봤냐고 물어보니 아무 대답이 없다. 바로 그 부스로 뛰어 들어가니 놀랍게도 내가 벗어 걸어 놓은 자리에 가방이 얌전히 그대로 있었다. 가방 지퍼를 열어 몇 번을 점검해 봤는데 내용물이 온전히 그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루마니아행 탑승객들을 만났다. 루마니아인은 왕년의 체조요정 코마네치처럼 작고 아담하며 머리 색깔이 짙은 특징이 있다. 사진 = 김현주

이것은 기적이다. 모스크바 공항,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오후 5시, 터미널 D와 터미널 E 사이 회랑에 위치한 분주한 화장실에서…. 나의 여행을 지켜주시는 절대자와 나를 위해 염려하고 기도하는 가족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기 직전만 해도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방이 그 안에 없을 게 분명한데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이, 게다가 동전 한 닢 없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경찰을 부를까? 모스크바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야 하나? 한국에 전화할까? 앞으로 20일 넘게 남은 여행은 당연히 포기해야 하겠지? 비상사태를 맞아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체크리스트처럼 지나갔다.

▲부카레스트 중심가를 누비는 트램의 모습. 많은 루마니아인과 관광객이 트램을 이용한다. 사진 = 김현주

다행히 가방이 있다! 내가 맺은 모스크바와의 인연은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평생 갈 것이다. 여유로운 환승 시간에 취해, 평화로운 모스크바 공항 분위기에 젖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국제 미아 일보 직전까지 갔다 온 것이다.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여행기를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그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북한 남성 김현성 씨

모스크바 국제공항 터미널 E에는 아에로플로트를 비롯해 각국 여객기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행선지가 다양한 만큼 대합실 승객의 인종도 복잡하다. 아프리카인을 빼고는 세계 각 인종이 모두 있다. 인종 전시장인 뉴욕에 버금간다.

공항 탑승구 앞 흡연실에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행 항공기를 기다리는데 우연히 한 아시아 남성이 나에게 영어로 “두 유 해브 어 파이어(Do you have a fire)?”라며 다가온다. 콩글리시다. 나중에 통성명해보니 북한 남성 김현성 씨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행 항공기 게이트 앞 흡연실에서 남북 동포가 우연히 나란히 앉은 것이다. 루마니아어를 배우기 위해 장기 유학 가는 중이라고 한다. 내게 루마니아에 가는 이유를 묻기에 “평소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도저히 답할 수 없었다. 그의 장도에 행운을 빌어줬다.

라틴계 민족 루마니아인

루마니아행 탑승객들은 인종이 확연히 다르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슬라브인은 없어지고 왕년의 체조요정 코마네치처럼 작고 아담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생김새와 체격으로 금방 구별된다. 머리 색깔 또한 현저히 짙어졌다. 분명 나는 라틴계 민족들이 사는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생물학적, 역사적 유사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그들은 바로 그것을 정체성으로 삼아 존재를 유지해 간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열 명쯤 나타난다. 발칸반도 여행안내 책자를 하나씩 들고 있다. 소규모지만 루마니아까지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색깔이 화려한 루마니아 화폐. 10레이에는 화가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 50레이에는 기술자 아우렐 블라이쿠, 100레이에는 극작가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가 인쇄돼 있다. 사진 = 김현주

아에로플로트 여객기는 모스크바를 떠난 지 3시간 40분 걸려 밤 10시 20분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 시원한 여름밤이다. 작지만 깨끗한 공항이다. 마침 시내행 780번 버스가 온다(5Lei = 2000원). 북부역(Gare du Nord)에 내려 예약해 놓은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5일차 (부카레스트 → 콘스탄차 → 부카레스트)

동유럽에서 중요한 루마니아어

2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루마니아어는 동유럽에서는 중요한 언어다. 동유럽 국가들은 각자 고유의 언어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루마니아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고 지정학적 위치 또한 중요하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만난 북한 남성 김현성 씨가 루마니아어를 배우러 장기간 유학길에 오른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대부분이 슬라브어 계통인 동유럽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루마니아어는 로망스어 계통으로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라틴어 계열 여러 언어가 섞여 있는 것처럼 들린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도심에는 고층 아파트가 많다. 한때는 화려했을 고층 아파트가 쇠락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쇠락한 도심 고층 아파트

오늘은 바쁜 날이다. 호텔을 나와 부카레스트 북역으로 나가 오늘 오후 콘스탄차(Constanta)행 왕복 열차표를 구입했다. 북역에서 버스와 트램을 타고 도시 북쪽 입구에 있는 자유 언론의 집으로 간다. 여기는 유럽의 동남쪽 끝 변방이다. 한때는 화려했을 고층 아파트들이 도심에 쇠락한 모습의 흉물로 방치돼 있다. 한국의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도 관리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흉한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답답해진다.

루마니아인들은 키가 작고 머리 색깔도 짙다. 러시아에 그렇게 많던 훤칠한 북구 백인들이 여기에는 드물다. 오히려 내가 여기서는 큰 편이다.

유럽 남동부 끝

루마니아는 국토 면적 약 24만 제곱킬로미터, 남한의 2.5배다. 인구는 2150만 명, 수도인 부카레스트 인구는 260만 명이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넉넉지 않은 루마니아의 살림살이를 느낄 수 있지만 그래도 유럽 동남쪽 끝, 흑해를 끼고 있는 동방의 거점이라는 전략적 위치는 더없이 중요하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북쪽 입구에 있는 자유 언론의 집. 독특한 건물 구조가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멋진 키셀레프 거리

도심 중앙을 따라 남북으로 4km에 걸쳐 이어지는 키셀레프 거리는 걷기에 쾌적하다. 부카레스트 도심의 거리가 다 그렇듯이 넓은 가로수길, 중간 중간에 자리 잡은 공원, 광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19세기 네오클래식부터 20세기 모더니즘 양식까지 멋진 건물들이 즐비한 대사관 거리다. 거리 양옆을 따라 상점들이 없는 것만 빼면 파리 샹젤리제를 꼭 닮았다. 거리 끝에 개선문이 있는 것까지도….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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