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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동유럽 불가리아]장수의 나라면 뭐하나, 아이 없고 어두워 슬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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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7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7.02 09:04:36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6일차 (부카레스트 → 소피아)

루마니아 국영 TV가 ‘대장금’ 방송

오랜만에 여유롭게 아침을 맞는다. 원래는 어제 못 가서 아쉬움이 가득한 국립역사박물관에 갔다 온 후 체크아웃 할까 생각했으나 오늘 먼 길(열차 9시간 30분)과 그리고 아직 초반인 이번 여행 일정의 체력 안배를 고려해 호텔방에서 쉰다. 호텔 TV에는 루마니아 방송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독일, 헝가리 방송이 나와 인근 유럽 각 나라의 언어를 한꺼번에 접한다. 마침 루마니아 국영 Romania TV1에서 드라마 ‘대장금’이 나온다. 반갑고도 새삼스럽다. 한국 드라마 ‘김수로’ 예고편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권에 중국 드라마도 진출해 있지만 흑해를 접한 동유럽의 문화적·정치적·상업적 요충인 루마니아에 한국 드라마가 진출했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루마니아어 자막이 나오는 한국 드라마는 언어도 언어지만 한국식 메시지와 레토릭(rhetoric, 수사학), 의사표현 방식이 새삼스럽게 강렬히 와 닿는다.

드라마는 드라마이기에 앞서 정신문화의 압축판이다. 그것이 한류의 힘 아니겠는가? 한류는 이제 유럽 동쪽 변방에 겨우 발을 들여 놓았지만 언젠가는 문화적 자존심이 높은 유럽 대륙 전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찬란한 황금 돔을 지닌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불가리아 해방을 위해 터키와 싸운 러시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882년 기공해 1924년에 완성했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네오비잔틴 양식의 성당은 성화들로 가득하다. 사진 = 김현주

소피아행 국제 열차에 올라

역으로 나와 점심을 먹고 12시 13분 출발하는 불가리아 소피아행 국제 열차에 오른다. 4~5량 단출한 편성으로 앞 2~3량은 소피아행, 뒤 2량은 불가리아 루세 입경 후 분리돼 터키 이스탄불로 간다.

이스탄불행 차량의 여성 승무원 얼굴이 터키인임을 금세 알린다. 내가 승차한 8인용 객실에서 독일 젊은 남녀들과 함께 간다. 여유로운 나라 젊은이들답게 명랑 쾌활한 것이 미국 젊은이들을 연상시킨다. 두 시간 걸려 52km 떨어진 루마니아-불가리아 국경 지우르지우에 도착했다. 여권에 출국 스탬프를 찍은 후 두나레이강(다뉴브 강) 철교를 건너 불가리아 국경 도시 루세에서 입국 스탬프를 받으니 열차는 다시 속력을 낸다.

▲소피아로 가는 도중 열차에서 만난 루마니아 청년 스테파누는 유창한 영어 실력이 인상 깊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아예 소피아까지 동행했다. 사진 = 김현주

루마니아 청년 스테파누

국경을 건너니 문자, 언어, 사람, 화폐 모두 바뀐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바로 이웃한 세르비아 사람들처럼 전형적인 슬라브족 용모는 아니지만 루마니아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국경 하나 건넜을 뿐인데 어쩌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불가리아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크지만 인국 800만의 소국이다. 인구로 따지면 포르투갈, 그리스보다 적다. 1인당 소득은 8000달러로서 동유럽 최빈국 중 하나이다. 국경을 넘어 남서쪽으로 진행하니 오르락내리락 구릉이 펼쳐지고 심심할 때쯤이면 터널도 한두 개 지나간다. 마을마다 하얀 불가리아 정교회 교당이 보이고 언덕에는 양떼들이 노닌다. 열차에서 만난 스테파누라는 루마니아 청년은 나와 이야기하려고 다른 객실에서 왔다가 아예 소피아까지 동행했다. 영어를 잘하는 그는 나의 솔로 장거리 여행 행각에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이것저것 쉬지 않고 묻는다.

중간에 어린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우리 객실에 타더니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계속 쑥스러운 미소를 보낸다. 불가리아 시골에서 아시아 사람을 아주 가까이서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중간 중간 정차하는 시골 역마다 사람들이 계속 내리고 탄다. 그런 마을들을 수없이 지나다 보니 400km, 9시간 30분 여정도 한두 시간 남았다.

▲소비에트 기념비의 모습. 나치를 몰아내고 불가리아에 진군한 소비에트 군대를 환영하는 의미로 1950년대 초 건립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불가리아에서는 요즘 탑의 존폐 여부를 놓고 의견이 대립한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동유럽 깊숙한 산중을 언제 다시 하루 종일 열차로 누빌 수 있을까 생각하니 지루할 틈이 없다. 소피아가 가까워 오면서 험준한 산악 지대가 나타난다. 터널을 지나자 또 터널, 맑은 계류 위에 걸린 교량, 스칠 듯 지나가는 기암절벽…. 영락없이 우리나라 영동선, 태백선 산악 구간이다. 여기에 예쁜 산중 마을까지 보태니 그림엽서가 따로 없다.

열차는 밤 9시 30분 정시에 소피아 중앙역에 닿는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역이지만 초라하다. 역 앞에 조성해 놓은 지하 광장 상가는 가게가 입주하지 않아 흉물스럽다. 오로지 카지노 네온사인만 깜빡인다. 도시 외곽이기는 하지만 도시가 어두워 서글프다. 광장 바로 건너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푼다.

7일차 (소피아)

장수의 나라? 어린 아이 보기 힘드니…

트램 종일 패스를 4Leva(약 3000원)에 구입해 시내로 향한다. 소피아는 인구 120만의 도시지만 역사는 7000년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처럼 낡고 쇠락한 공산주의식 대형 건물이 없고 거리가 깨끗하게 가꿔져 있다. 공산주의가 상대적으로 온건했거나 차우셰스쿠 같은 철권 독재자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시 모토는 ‘자라지만 늙지 않는(It grows but does not age)’이지만 거리에는 노인들이 아주 많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무리 ‘장수의 나라’라지만 서유럽 여느 도시처럼 고령화 문제로 고민이 클 것이다.

▲대통령궁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고 있다. 훤칠한 불가리아 병사들의 얼굴 표정이 근엄하다. 사진 = 김현주

소비에트 기념비

에프티미 거리가 끝나는 곳은 작은 교회와 동상이 서 있는 시내 중심이고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다. 거리 중간 쯤 중앙 공원이 있고 그 너머 불가리아 광장에 대형 쇼핑 상가가 있다. 습도가 낮고 기온이 높지 않고 게다가 거리가 한적해서 도심 한복판이지만 걷기에 상쾌하다. 여기서 바실 레프스키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곧 우아한 소피아 대학을 만난다.

근처 보리소바 광장에는 거대한 소비에트 기념비가 있다. 나치를 몰아내고 불가리아에 진군한 소비에트 군대를 환영해 1950년대 초 건립한 것이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불가리아에서는 요즘 탑의 존폐 여부를 놓고 의견이 대립한다고 한다.

▲소피아 대학 건물. 깔끔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대학 근처에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 김현주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관계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묘한 관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피아 대학 건물에서 얼마 안 가 나타나는 황금 돔이 찬란한 거대한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이 그 중 하나다. 불가리아 해방을 위해 터키와 싸운 러시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882년 기공해 1924년에 완성했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네오비잔틴 양식의 성당은 성화들로 가득하다.

마침 성당 안에서 정교회 사제가 아기에게 세례를 주고 아기를 둘러싼 젊은 부부와 친척들이 아기의 세례를 축복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부디 이 나라의 기둥이 되기를 나도 기원해 준다. 곳곳에 멋진 정원과 크고 작은 동상, 드넓은 광장, 화려한 건축물이 즐비하지만 편견 때문일까? 왠지 애처로워 보인다. 사회주의 체제 때문에 발전의 기초를 쌓지 못했고 인구도 절대 부족하니 무슨 동력으로 신자유주의 경쟁의 글로벌 시대에 바깥세상과 견준단 말인가?

▲소피아 시내 풍경. 인구 120만의 도시 소피아는 70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사진 = 김현주

참혹한 터키 식민 지배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인근 의회 광장에는 러시아 황제 동상과 기념비가 있다. 1878년 2차 발칸전쟁에서 러시아가 터키를 물리쳐 500년 가까운 노예 생활에서 해방을 선사한 데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건립했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500년 가까운 터키의 식민 지배를 매우 치욕스러운 역사로 기억한다. 그냥 식민지가 아니라 억압과 착취, 차별을 모두 겪은 노예 생활이라고 표현한다. 터키의 지배가 얼마나 참혹했기에 해방의 기회를 열어준 러시아 황제를 찬양하는 동상과 기념비까지 세웠을까?

▲노란 포장길 부근. 깨끗한 거리가 인상적인 이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타나는 대통령궁 광장에서 러시아 교회당, 고고학 박물관, 전 공산당사, 국립은행 등 여러 주요 시설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노란 포장길

노란 포장길(yellow pavement)을 따라 몇 발자국 걸으면 러시아 교회당이 나온다. 예쁜 정원으로 둘러싸인 교회의 모습은 모스크바에서 봤던 성바실리 성당의 축소판쯤 되는 듯 아담하고 예쁘다. 국립미술관과 같은 건물 안에는 국립 인류학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내용물은 전통 의상 몇 벌이 전부인 듯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박물관은 곧 국력이라는 말을 절감한다.

그리고 나타나는 대통령궁 광장에는 고고학 박물관, 전 공산당사, 국립은행 등 여러 주요 시설들이 있다. 대통령궁 앞에서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훤칠한 불가리아 병사들의 얼굴 표정이 근엄하다. 고고학 박물관 건물 밖 공터에는 그리스-로마 시대 유적 같은 기둥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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