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라이프 ⑭ 국회의원축구연맹 회장 정병국 의원]한일갈등 축구로 풀고, 병영문제는 책으로 풀고
▲6월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8회 한·일 국회의원 축구대회에서 정병국 의원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정갑윤 국회 부의장. 사진 =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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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정숙 기자) “축구는 이겼는데 정치는 졌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경기 여주·양평·가평)의 말이다.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9년 만에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8 대 4.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의 압승이었다. 기쁠 만도 했다. 하지만 정 의원의 판단은 달랐다.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와 함께 ‘영원한 소장파’로 불리는 정병국 의원. 그는 타성에 젖지 않고 늘 개혁을 외치는 초선 의원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실 4선의 중진의원이다. 초선 의원 같지만 그간 쌓아온 관록과 정치적 노련미는 무시할 수 없다. 이는 한일 국회의원 친선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계속된 역사 왜곡 움직임으로 인해 한일 관계는 냉랭한 상태다. ‘과거사 사과’라는 원칙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 개선은 도무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미국과 일본은 ‘신밀월’ 관계로 가까워졌고,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이를 풀어줄 매개체가 필요했다. 이번에 한일 양국 의원들이 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축구’를 통해서다.
정 의원이 국회의원축구연맹 회장을 맡으면서 9년 만에 한일 의원들은 화합을 도모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을 강타,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위기는 기회가 됐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일본 의원들은 한국을 방문했다.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경기 뒷얘기 등을 듣기 위해 19일 정 의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6월19일 CNB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병국 의원. 사진 = 왕진오 기자
정 의원을 만난 기자의 첫 마디는 “한일전에서 승리하셨어요”였다. 그러자 정 의원은 “너무 이겨서 문제네요(웃음). 공 차려고 모인 게 아니라 정치하려고 모인 건데요.” 참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월드컵이 아니라 한일 간 냉각기를 풀어보려 만든 경기니 그럴 만도 했다.
9년 만에 한일의원 친선경기…“외교도 소통, 어려질수록 더 노력해야”
국회의원축구연맹은 ‘2002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연맹은 1998년 제1회 한일의원 친선축구대회를 시작으로 2006년까지 총 7회의 정기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면서 양국간 교류 협력을 도모하는 의원 외교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교과서 왜곡 및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됐다. 대회는 기약 없이 중단됐다. 그러다 양국 관계개선을 위한 한일의원연맹의 협의와 회장을 맡고 있는 정 의원의 노력 등으로 9년 만에 재개됐다. 한일수교 50주년의 해에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깊었다.
“회원은 여야 의원 합쳐 50여 명 정도 됩니다. 이번에 참가한 사람들이 거의 멤버라고 보면 됩니다. 다들 잘합니다. 저는 후보로 밀렸지만요(웃음). 9년 동안 중단됐지만 사실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일정을 잡고 추진하다가 무산되는 일이 반복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본 측도 적극적이었고 우리 측도 한일 관계가 이대로 계속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축구로 풀어보자는 뜻이 통했죠. 역사나 영토 등 현안 문제들이 있다고 해서 경제적 교류까지 하지 않으면 문제 풀기가 계속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축구를 통해 풀어보려고 시작했는데 성공리에 끝났네요.”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는 정병국 의원. 사진 = 의원실 제공
행사 유치가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 등 주요 관광객들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일본 의원들의 우리나라 방문 일정이 수월하게 진행되진 않았다.
“처음에는 일본 측에서도 메르스 문제가 나오니까 ‘괜찮나, 문제가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특히 일본 측이 우려한 것은 여론의 지탄을 받는 것이었죠. 메르스 때문에 전국이 비상 상태인데 한가롭게 공이나 찬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걱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이럴수록 더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 방문하는 것을 꺼릴 정도의 심각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문해주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요.
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 일본 측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방사능 공포로 인해) 일본 방문을 꺼려한다.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관이 직접 방문해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제가 방문했었죠. 그 예를 들어가면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고, 일본 측에서도 ‘그게 맞다’고 응답해 아무 문제없이 방한이 이뤄졌습니다. 이번 방문이 우리나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경기에서 정의화 국회의장과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서청원 의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나경원 의원 등은 교체선수로 출전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후반전 내내 골문을 지켰다.
“다들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날 골을 많이 넣은 조해진 의원은 최우수상을 받았고요. 모든 게임에서 이기면 좋죠. 하지만 이번 한일간 축구 교류는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일종의 외교, 정치를 위해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너무 많이 이기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이겨봐야 한두 골 차이로 이기면 된다고 판단했는데 너무 많은 골 차로 이겨버렸어요. 그래서 뒤풀이에 갔을 때 ‘우리가 축구 경기에서는 이겼는데 정치에서는 졌다, 결과론적으로 정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를 했던 겁니다.”
경기 후 이어진 만찬에서 한일 의원간 교류 및 양국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일본 의원들은 다가오는 가을, 도쿄에서의 재경기 추진 의사를 전해왔다. 우리 의원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친선 경기는 결국 ‘문화를 이용한 외교’였다. 정 의원은 이를 계기로 한일관계의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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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현장을 찾은 정병국 의원. 사진 = 의원실 제공
외교도 소통입니다. 한일 정부간 관계가 냉랭해지니까 의원들도 뜸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도 있고요. 한일의원연맹과 국회의원축구연맹 등이 한일 관계가 어려워질수록 이런 교류를 많이 가져서 그 의미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일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재개된 축구대회가 꽉 막힌 한일관계를 시원하게 돌파할 킥오프(kickoff)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 경기가 끝난 지 며칠 지난 23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 양국의 관계 개선 노력에 한 발짝 나아갔다.
정병국 의원은 경기와 별도로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한 쓴소리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軍, 어쩔 수 없이 가는 곳 아닌 정말 가야 할 곳 돼야”
“역사는 거스르고 다시 쓸 수 없습니다. 사실은 사실 그대로 있는 겁니다. 시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바뀔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아베 총리가 아무리 부정하고 왜곡한다고 해도 사실은 사실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아베 정부가 일본 전체를 영원히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단절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과거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를 통해 역사 문제에 대한 일반적 사과를 했습니다. 한일간 해결해야 할 과거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역사나 영토 문제 때문에 경제 문제 등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정상회담을 해야 합니다.”
정병국 의원은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질문도 이어갔다. 그러다보니 이날 인터뷰는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축구 얘기, 군대 얘기’로 정리됐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정 의원은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귀신 잡는 해병대’ 416기다. 누구보다 군 문화를 잘 안다. 아들 또한 해병대 출신으로, 사회지도층의 모범이 된 사례다.
그는 군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책 읽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리딩 1250운동(한 달에 두 권씩 전역할 때까지 50권의 책을 읽자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군 장병들의 독서 생활 증진과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병영 독서카페 릴레이 나눔 운동’을 개최하는 등 군 문화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윤일병 사건 등 군대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군이 이 상태로 가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 아래 국회 내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위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작년 11월 출범해 수차례 위원회 회의도 열고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대국민공청회도 하고 토론회도 열어 많은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어제도 지금까지 나온 안들을 갖고 양평 20사단 백호부대를 방문했습니다. 200여 명의 병사들을 상대로 병영 독서의 중요성 등을 강연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지휘관들은 별도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이 개발한 디자인싱킹 프로그램을 적용해 상호간 토론으로 병영생활의 문제점들을 발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병대 시절 정병국 의원의 모습. 사진 = 의원실 제공
더 이상 군대가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피상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군대를 통해 사회가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군대가 문제’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군대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입니다. 인성교육의 결핍으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군대에 들어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겁니다. 결국 사회 문제가 군대까지 연장되는 셈이죠. 이제는 사회 문제들을 군대에 가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운동권으로 검거됐지만 기꺼이 해병대 자원입대
정 의원이 해병대를 간 이유는 ‘어차피 가야 할 군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교 때 학생운동을 하다 1980년 5·17 직후 군부에 검거됐다. 검거 후 군부에서 내건 조건은 군 입대 또는 투옥 중 선택이었다. 그는 군대에 가기로 결심하고 해병대를 자원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가장 군기가 세고 혹독하다는 해병대가 스스로를 갈고 닦기에는 제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병대 입대 후 헌병에 차출됐다. 해병대 근무 중 멧돼지를 탈영병으로 착각해 쫓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궁지에 몰린 멧돼지가 오히려 달려들어 자칫 목숨이 위태로웠던 경험도 있다.
“해병대는 자원하는 곳입니다. 자원해서 간만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죠. 대충대충 하지 말고 훈련을 통해 더 혹독하게 나를 단련시켜야겠다고 생각해서 자원했습니다. 운동도 자기 단련을 위해 하지 않습니까. 내가 자율적으로 하느냐, 타의에 의해 억눌려서 하느냐에 따라 심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자원해서 간 경우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마지못해 간 경우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는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가서 혹독하게 단련을 받아보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원했습니다.”
정병국 의원은 특위를 운영하면서 남녀 구분 없이 의무 복무제인 이스라엘을 비롯한 외국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이스라엘은 군대 가는 사람들이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군대가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군대가 더 이상 의무라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군대를 갔다 오면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육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사회 모두가 함께 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군대는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 아니라 ‘정말 가야 할 곳’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