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원작이 있다는 건 공연에 좋은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공연의 전체적인 틀은 가닥이 잡혀 있으니 말이다. 또한 아예 정보와 인지도가 없는 상태가 아니기에 공연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 또한 다른 초연작과는 무게가 다르다. 그런데 이게 또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원작을 뛰어넘느냐, 아니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색다른 매력을 끌어내느냐가 관건으로, 성공할 경우 칭찬받지만 실패하면 원작과의 비교를 통해 더 냉정한 평가가 이어진다.
뮤지컬 ‘신과 함께’도 시작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원작의 인기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이다.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으로, 저승을 배경으로 사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맞은 김자홍이 49일 동안 저승에서 7가지 지옥 관문을 차례차례로 통과하며 생전의 업을 재판받는 과정에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됐다. 여기에 동양의 윤회사상이 전면적으로 깔려 무게감을 더했다.
이 작품을 서울예술단이 한국적 색을 입힌 창작 가무극으로 탄생시켰다. 그간 다소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은 서울예술단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최종실 예술감독은 “그동안 한국적 가무극을 선보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이번엔 보다 대중적인 콘텐츠로 관객의 마음을 울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 포부가 이번 공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발휘한 듯하다. 뮤지컬 ‘신과 함께’ 공연장은 관객들로 북적북적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원작 웹툰을 보고 공연이 궁금해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뮤지컬 ‘신과 함께’는 “착하게 살자”는 원작의 메시지는 살리면서도, 공연 예술만이 가지는 무대의 생동감을 놓치지 않으며 원작과는 또 다른 ‘신과 함께’를 만들어 관객을 매료시켰다.
일단 눈에 띄는 게 17m의 거대한 바퀴 모양의 세트와 바닥에 설치된 LED 스크린이다. 바퀴 모양은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는 윤회사상을 상징하는 요소로, 이 바퀴 위를 저승 삼차사와 여러 망자, 저승 심판관 등이 뛰어다닌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독사가 우글거리는 지옥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관심사였는데, 바닥의 LED에 뜨거운 불과 사악한 독사를 연상케 하는 영상을 틀어 무대 위에 지옥을 재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의 매력이 배가된 건 서울예술단의 색이 녹아들어 갔기 때문이다.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2막의 첫 시작인 ‘퍼포먼스 포 신과 함께’와 이어지는 ‘사인검’을 들 수 있다. 도망친 원귀를 저승차사인 강림과 이덕춘, 해원맥이 쫓는 장면으로, 길게 늘어뜨린 옷자락을 흩뿌리며 한국적인 군무를 내세운 동작과 의상이 무대를 채운다.
관객들이 가장 숨죽이고 보고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지는 장면을 서울예술단만의 색을 녹여 탄생시켰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이게 동시에 또 아쉽기도 한 점이다. 이 장면을 제외한 전체적인 흐름은 방대한 양을 한 데 담으려다보니 정신없이 진행된다. 그리고 한국적인 군무가 공연의 전체 안무 중 포인트로 부각되는 반면, 노래에서는 귀에 뚜렷이 남는 넘버가 없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만족과 동시에 아쉬움이 공존한다. 저승의 국선 변호사 진기한 역의 박영수는 놀라울 정도로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진기한의 특징인 꽁지머리를 직접 붙였을 정도로 역할에 애정을 표한 그를 보고 주호민 작가는 “만화책을 찢고 바로 현실로 나온 것 같은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천재성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술한 진기한을 제대로 연기해 정말 웹툰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반면 진기한의 첫 의뢰인 김자홍 역의 정동화는 원작과는 다른 인물 표현이 부각된다. 원작에서의 김자홍은 늘 소심하고 주눅 든 모습에 외모 또한 노안인데, 무대 위에서의 그는 쾌활하고 주책바가지에 8 대 2 가르마를 하긴 했지만 굉장히 어려 보이는 외모다. 원작을 보지 않았을 경우 캐릭터를 보는 데 거부감이 없지만, 원작을 봤으면 다소 괴리를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극 중 진기한과의 콤비 호흡은 주목할 만하다. 척척 맞는 호흡에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많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7월 1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