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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시리즈 ⑱ 사람책 도서관 연 위즈돔]“걸어다니는 사람책 빌려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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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9호 안창현 기자⁄ 2015.07.16 09:09:52

▲소셜벤처 ‘위즈돔’의 멤버들. 사진 = 위즈돔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도서관은 도서관인데 책이 아닌 사람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사람 도서관’이 있다. 소셜벤처 위즈돔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지혜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사람책’으로 등록할 수 있고,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만남을 신청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한다. 위즈돔에게 사람은 곧 책인 셈이다. 이 위즈돔 플랫폼에는 2015년 7월 기준 약 3천여 명의 사람책이 등록돼 ‘국내 최대 사람 도서관’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위즈돔에 등록된 사람책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비즈니스, 건강, 창업, IT기술, 여행, 자기계발 등이다.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걸어다니는 책들’이다. 생생한 삶의 정보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위즈돔에서 클릭 한번으로 책을 구매하듯이 만남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사람책이 모여 있는 사람도서관. 이 독특한 아이디어로 한상엽 위즈돔 대표는 ‘제6회 세상사회적기업콘테스트’에서 2등 상을 받고, 전문가들이 선정한 ‘2013년을 빛낸 스타트업 톱  100’에 선정됐다.

▲위즈돔에서 사람책을 초청해 만남을 가지는 모습. 사진 = 위즈돔

한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심해지는 정보와 기회의 양극화 문제에 평소 관심이 컸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 나아가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경험했다. 그래서 가정형편이나 학벌을 떠나 누구나 필요한 관계, 인맥을 획득하고 또 필요한 정보와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20~30대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묻는 한 설문조사 결과 학벌-출신학교를 꼽은 답변이 29%로 가장 많았고, 인맥-대인관계 능력이 26%, 경제적 뒷받침이 22% 순이었다. 본인의 지적 능력(14%)이나 성실성(9%)보다 더 높은 비중이었다.

위즈돔에 등록된 3천여 명의 사람책과 만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개설된 만남 중 관심 있는 만남이 있으면 위즈돔에 신청하거나, 사람도서관에 전시 중인 사람책 중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만남 개설을 직접 요청하면 된다.

사람책으로 등록하는 방법 또한 어렵지 않다. 간단한 프로필 입력 후 사람책으로서 자신이 나눠주고 싶은 이야기와 경험을 쓴 다음 만남 시간과 장소를 결정해 만남을 개설하면 된다.

▲2014년 부산의 사람 도서관 행사 모습. 사진 = 위즈돔

현재 위즈돔에 등록한 사람책 가운데 유명인사는 10%도 안 된다. 유명세를 보고 만남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책으로 등록된 사람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물론 사람책으로 등록할 때 위즈돔 자체의 내부 규정은 있다. 만남을 영업 활동으로 이용하거나 거짓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자발성과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선한 의지에 기대어 위즈돔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책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고, 그 사람의 SNS 채널을 명시해 이용자 스스로가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종이책보다 사람책이 훨씬 좋아요”

사람책과의 만남은 철저히 소규모로 이뤄진다. 위즈돔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김미진 팀장은 만남에 참여하는 인원은 평균적으로 7~10명 내외라고 전했다. 만남을 통한 정보와 소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김 팀장은 “대규모 강연이 아니라 평균 7명 정도가 모여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짜로 알고 싶고 궁금한 내용에 대해 직접 소통한다. 그래서 일반 강연 플랫폼과는 매우 다르다. 사실 강연에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인터넷 창을 열고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대부분 얻어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책과의 만남을 통해 얻는 지혜와 경험은 포털에 치면 나오는 흔한 정보가 아니다. 직접 경험한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생생한 경험과 고민, 노하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 스스로가 위즈돔에 입사해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기 전부터 위즈돔의 사람책과 만남을 가지며 계속 참여해 왔다. 김 팀장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 PR회사와 교육회사 홍보팀을 거치면서 커뮤니케이션 실무 일을 해왔다. 그러던 중 위즈돔을 만났다. ‘누구에게나 기회와 가능성이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역간, 세대간, 소득간 정보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위즈돔의 가치에 특히 공감했다”고 말했다.

▲소셜벤처 ‘위즈덤’이 부산에서 주최한 사람 도서관 런칭 파티. 사진 = 위즈돔

그렇게 2012년 설립된 이후 위즈돔은 사람도서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꿈을 조금씩 현실로 이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가을 대전, 대구, 부산에 사람도서관을 런칭했고 올해 전북과 제주에도 오픈할 예정이다.

김 팀장은 “많은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서울에만 지나치게 몰려 있다. 지역적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현실에서 우리 지역과 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그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지역 발전에 도움을 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위즈돔은 서울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다양한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역 문화나 청년 커뮤니티와도 제휴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인터넷 플랫폼을 포함해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소통하는 기회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 도서관’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는 한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다. 한 대표는 어릴 때부터 부산, 김해, 보성, 광주 등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친구나 이웃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이런 아이디어가 어떻게 소셜벤처 형태로 구현됐을까? 한 대표는 “경영학을 전공한 대학 2학년 때 학생 벤처 그룹 ‘뭉크(Munc)’를 설립했다. 뭉크는 웹 콘텐츠 공급 회사였는데, 미대생들이 그린 그림을 당시 블로그나 미니홈피 스킨으로 쓸 수 있도록 포털에 공급했다. 미대생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줘 미술을 계속하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찍이 사회적 경제영역이 추구하는 가치에 눈을 떴던 것이다. 그는 경영학도로서 ‘왜 창업하고 사업하나’라는 고민을 하던 중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을 읽고 사회적기업과 그 활동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 대표는 2006년 사회적기업과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해 연구하고, 실제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그룹 ‘넥스터스(Nexters)’를 설립했다. 이후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사회적기업을 탐방하고 쓴 사회혁신 사례탐방서 ‘아름다운 거짓말’을 출간했다.

▲위즈덤이 개최한 파티에 참석한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위즈돔

대학 졸업 후에는 대우인터내셔널 해외영업 부문에 입사해 1년여 근무하기도 했지만, 소셜벤처 창업에 대한 꿈을 접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평소 생각하던 위즈돔의 비전과 기획을 담은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들을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다음(Daum) 창업자이자 소셜벤처 인큐베이터 ‘sopoong’ 대표인 이재웅을 만나 투자를 받고 사람도서관, 위즈돔 서비스가 시작됐다.

위즈돔이 만들어질 당시 ‘사람 도서관’이라는 형태는 낯설었다. 한 대표는 서비스 초기에 ‘Skillshare’ 등 해외의 유사한 서비스들을 통해 위즈돔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얻었다.

“사람책 만나 새 인생 열고, 반려 만나고”

최근에는 위즈돔과 유사하게 만남, 모임을 통해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국내에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위즈돔은 평범하지만 폭넓은 경험, 지혜, 정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김 팀장은 “위즈돔 이용자나 사람책이 모두 만남을 통해 새롭게 기회를 얻고 삶이 변화됐다는 얘기를 해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위즈돔에서 만난 사람책과의 인연으로 인턴 기회를 얻었다든지,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든지, 또 둘도 없는 단짝 친구 또는 연인을 만났다거나 삶을 긍정하고 성장시킬 동력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참여자들에게 종종 듣는다. 그럴 때는 힘들지만 위즈돔 활동에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 위즈돔은 사람도서관 플랫폼을 새롭게 개편했다. 사람들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교육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다문화 사회를 목표로 위즈돔이 기획한 ‘점프’는, 전용 페이지를 구축해 130명으로 구성된 사회인 멘토단을 대학생들에게 제공해 1 대 1 멘토 연결, 소그룹 멘토링, 특강 등을 진행한다.

이외에도 SK 행복나눔재단의 세상오픈오피스, 다음세대재단의 체인지온닷 등 다양한 기관, 단체에서 위즈돔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김 팀장은 “사람도서관의 플랫폼 기능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맞춤-전용 페이지를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을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춰 개인화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책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맞춤 페이지를 통해 행사나 모임을 공지할 수 있고, 모바일 환경도 지원한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연결받을 수 있다.

김 팀장은 “언젠가는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나 김밥집 아줌마도 위즈돔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날을 꿈꾼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그 범위를 확장하는 데 장애가 없는 공평한 사회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서울시·학교 등과 손잡고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

위즈돔은 인터넷 플랫폼을 바탕으로 점차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기업이나 학교에서 위즈돔 홈페이지를 보고 강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20여 개 학교에 강사들이 파견돼 자신의 직업 세계와 전문 기술을 전파했다.

위즈돔의 대표적인 청소년 진로교육 프로그램인 ‘위즈돔@마이스쿨’은, 사람 도서관에 등록된 사람책을 청소년들이 직접 골라 만나는 서비스다. 이천 양정여자고등학교는 동아리 학생 12명과 담당 교사가 원하는 사람책을 골라 동아리 회원 등과 사람책이 만나는 기획을 3학기 동안 진행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 지역 문화행사로까지 발전했다.

▲위즈돔이 자체적으로 개최한 ‘인스파이어드@제주’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참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 위즈돔

위즈돔의 이런 사례는 다양했다. 제주여자중학교와 오현중학교는 최근 ‘사제 동행 진로 문화캠프, 와락’이란 이름 아래 학생 30명과 교사 4명이 수학여행 기간 중 몇 개 그룹으로 나뉘어 원하는 직업의 사람책을 만나 진로상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생의 진로를 먼저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책을 직접 만나서 여러 진로의 실제를 듣는 시간이니 학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평가다.

또한 기업이나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나 컨퍼런스를 기획하고, 나아가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했다.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가 그랬다. 서울시와 함께 기획, 운영한 이 행사를 시작으로 위즈돔은 공공기관, 언론사, 기업, 비영리단체 등과 함께 3천여 명의 사람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컨퍼런스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특히 2013년 10월 위즈돔이 자체적으로 개최한 ‘인스파이어드@제주’는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행사에서 위즈돔은 문화, 예술, IT 등 사회 전반에서 창조적 혁신가로 활동하는 100인을 초청해 자유로운 네트워킹, 지식 교류, 토론 등의 경험을 이끌었다. 주최 측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맞춰 연사와 청자가 나뉘는 기존 컨퍼런스 형식에서 벗어나 참가자 모두가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스스로 참여했다.

이 외에도 ‘협동조합 도시 서울을 그리다’(서울시), ‘응답하라 소셜벤처’(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국제골목컨퍼런스’(서울시디자인재단) 등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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