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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프라하]손 커도 손재주 좋은 체코인은 ‘콘텐츠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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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1-44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7.30 09:25:41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0일차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과 프라하의 봄

호텔을 나와 무스텍 역에 내려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여기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살짝 언덕진 길이 바츨라프 광장이다. 길 가운데 맨드라미가 예쁘게 가꿔진 보행자 전용로다. 광장이라기보다는 대로(大路)다.

카페, 갤러리, 극장 등이 늘어선 거리를 조금 올라가니 1968년 두브체크가 주도했던 프라하의 봄 혁명이 일어났을 때, 탱크로 밀어붙이는 소련군에 저항해 분신한 혁명 열사 2위의 추모비가 서 있고, 추모비 앞에는 꽃과 촛불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전설의 체코 수호성인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있다. 언덕 끝에는 신 르네상스 양식의 국립자연사 박물관이 멋진 모습을 자랑하며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세계 각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역시 체코는 관광대국이다.

다양한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바로 길 건너편 현대식 건물에는 국립박물관(입장료 60코루나 = 약 3000원)이 있다. 고고학 유물을 비롯해 네안데르탈인과 하이델베르크인의 초상이 인상적이다. 8~9세기 모라비아에 기독교가 전파된 유래와 함께 모라비아 법전, 성경책이 눈에 띈다. 모라비아 음악도 특별히 중점을 둬 전시했다. 유전 법칙으로 유명한 멘델 섹션도 있다. 인형극 마리오네트도 한 섹션 차지한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사람들이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보인다. 살짝 언덕진 길 가운데 맨드라미가 예쁘게 가꿔진 모습이 프라하의 봄을 느끼게 해준다. 사진 = 김현주

체코의 유명인 최홍만?!

바츨라프 광장을 나와 올드타운 광장으로 가는 거리에 각종 기념품 가게가 늘어섰다. 기념품 가게 중간에 있는 한국어 간판이 눈에 금방 들어온다. 한국 포장마차집이다. 프라하를 한국인이 아주 많이 찾는다는 뜻이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프라하 문양이 새겨진 모자를 하나 저렴하게 구입했다(100코루나 = 약 7000원). 부다페스트 어디에선가 모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기념품 가게 점원이 날더러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정확한 한국 발음으로 “최홍만 선수를 아냐”고 묻는다. K-1 이종격투기 선수 ‘테크노골리앗’ 최홍만이다. 체코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가 이런 식으로도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깜짝 놀란다.

▲오를로이 천문 시계 종이 울리는 모습. 조각상이 회전하고, 시계탑 옥상에서 트럼펫 연주가 울려퍼진다. 사진 = 김현주

스토리 창출에 능한 체코인

어젯밤에 이어 또다시 올드타운 광장으로 들어선다. 어제는 저녁 늦은 시간이라 한산했는데 지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오를로이 천문시계 아래는 인산인해다. 매시 정각 8개의 조각상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해준다기에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힘이 놀랍다.

조각상 회전이 금방 끝나서 아쉬운 사이, 시계탑 옥상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연주가 관객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이고 콘텐츠 파워가 아니고 무엇이랴? 사람들은 아쉬움에 한동안 시계탑 아래를 떠날 줄 모른다. 극도로 화려한 치장을 한 시계탑과 주변 건물, 그리고 광장 건너편 첨탑으로 유명한 틴(Tin) 성당까지 올드타운 광장은 특별한 곳이다.

프라하는 첨탑과 높은 탑들이 많지만 거의 모든 탑이 꼭대기에 오르고 싶은 사람에게 입장료를 받는다. 보통 한화 1만 원은 족히 넘는다. 광장에서 찰스 다리로 나오는 골목길 또한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로 이어진다. 어제 중간까지만 건넜던 찰스 다리를 이번에는 완전히 건넌다. 어김없이 거리 밴드가 눈길을 붙잡는다. 다리 중간 쌍십자가 동판은 수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반질반질 윤이 난다. 30인 성자상도 지난다. 체코인은 참 재주도 좋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이탈리아 로마나 피렌체에도 비슷한 콘셉트가 있긴 하지만 이 도시가 산출해 내는 스토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올드타운 광장으로 가는 거리엔 각종 기념품 가게가 있다. 사진은 유리공예품으로, 체코인의 손재주가 엿보인다. 사진 = 김현주

프라하성과 비투스 성당

다리를 건너니 경사진 언덕이 프라하성(Prazsky Hrad)으로 이어진다. 보헤미아 시절부터 합스부르크 왕가, 나치 점령, 공산 통치까지 모두 겪은 거대 규모의 성이다. 프라하성 언덕에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에 오면 야경이 신비로울 것 같지만 해가 긴 여름날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내일 일정이 부담되어 야경은 포기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비투스 성당(St. Vitus Catedral)이 수직으로 높이 솟아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은 아름다움과 섬세함에 보태어 신비감까지 주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헝가리 마차시 성당에서 그랬고 체코 성비투스 성당이 또한 그렇듯이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섬세함에 놀란다. 체코인의 손재주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과거 동구권 국가들에 정밀기계 공업이 발달했던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넘겨짚어본다.

프라하가 100탑의 도시라는 것은 이 언덕에 올라오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백탑 아니 수백탑이다. 둥근 탑, 뾰족한 탑, 외탑, 쌍탑 등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뽐내는 탑들이 즐비하다. 방콕에도 탑이 수백, 수천 개 있지만 방콕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작은 나라지만 이런 솜씨와 지략을 가진 백성이기에 1000년 넘게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오는 것이리라. 마침 위병 교대식도 열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덕수궁, 광화문 수문장 교대 행사도 의상으로 보나 위병의 용모나 체격으로 보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프라하성 안에 있는 비투스 성당이 수직으로 높이 솟아 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은 아름다움과 섬세함, 신비감까지 전해준다. 사진 = 김현주

해가 쨍 나고 기온이 오르니 오늘은 제법 덥다. 프라하성에서 내려와 아무 전차나 타고 도심을 벗어나 본다. 우연히 내린 곳에 마침 케플러(Kepler) 동상이 있다. 케플러 법칙으로 유명한 천체 물리학자도 체코 출신인 것이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심 프라하성 입구나 찰스 다리와는 전혀 다른 도시 외곽 모습을 살피고 일단 호텔로 돌아와 쉰다.

눈이 즐거운 프라하 탐방

휴식 후 어제 제대로 못 본 국립극장(Narodni Divaldo)을 보러 다시 볼타바 강변으로 나선다. 국립극장은 금색 테두리를 한 르네상스 건물로서 1년 내내 세계 유명 오페라 공연이 열린다. 강변을 따라 나란히 이어진 이름 모를 건물들 또한 석양을 받아 화려함의 극치를 뽐낸다.

어제 지나온 리푸블릭 광장에 다시 나온다. 광장에서 금방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은 시민회관(Obecni Dum)이다. 이 건물 또한 화려한 정면 장식이 견줄 것을 찾기 어렵다. 그 옆 화약탑(Prasna Brana)은 보헤미아 지방에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한 프라하 남대문 같은 곳이다. 하루 반 동안 눈이 화려했던 프라하 탐방이 여기서 모두 끝난다.

▲올드타운 광장과 첨탑으로 유명한 틴 성당. 올드타운 광장엔 화려한 치장을 한 시계탑과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퇴근 길 트램은 승객들로 붐빈다. 이상하게도 시민들이 무표정해 보인다. 하루가 고단한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유달리 희고 다리가 길쭉한 사람들이지만 삶의 무게는 어찌할 수 없다. 고작 인구 10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5000만이 그럭저럭 잘 먹고 사는 것은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푸블릭 광장에 산재한 시티투어마다 한국어 가이드를 제공한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한국인의 인기 관광지인 만큼 여기서는 한국이 대접받는 것이 분명하다. 온 세계 가장 좋은 곳은 모두 골라 다니는 입맛 까다로운 한국인이 즐겨 찾고, 대한항공 직항편이 프라하를 다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를로이 천문 시계의 타종 시간을 기다리는 인파.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매시 정각 8개의 조각상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오늘로 여행의 딱 절반이 지나간다. 유럽의 변방을 주로 방문하는 여정이라서 만만히 봤던 나를 나무란다. 나라 하나하나는 작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역사와 위상을 갖췄다. 참고로, 여러 나라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가장 성가셨던 부분은 매번 언어와 화폐가 바뀐다는 점이다. 여행 이후에는 쓸모없는 소액 지폐나 동전이 가급적 남지 않도록 지출을 조절하는 것도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내일 독일부터는 유로화 지역이므로(폴란드와 영국은 아니다) 좀 나아질 것이라 위로해 본다. 돌이켜 보면 지난 열하루 동안 얼굴 설고, 길 설고 말 안 통하는 생전 처음 밟아보는 나라들을 나름대로 별 탈 없이 지나온 것 같아 크게 안도하며 편안한 밤을 맞이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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