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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시리즈 ㉕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막쿱’] “예술인 모여 톡톡 튀는 주택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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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2호 안창현 기자⁄ 2015.10.15 08:57:34

▲‘막쿱’ 전경. 29가구의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사진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서울의 심장부 중구 만리동에 예술인 마을이 생겼다. 만리재로 27길 69번지.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이는 달동네 위에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형 공공주택’, 줄여서 ‘막쿱(Mallidong Artists Cooperative, M.A.Coop)’이라 불리는 예술인 공동체가 둥지를 튼 것이다. 막쿱 주택에는 모두 29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은 미술, 설치, 건축, 영화, 연극, 문학, 음악 등 다방면의 예술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예술가들이다. 2013년 가을 SH공사의 입주민 모집 공고를 통해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최종 입주민이 선정된 이후 2015년 5월 실제 막쿱 주택에 입주할 때까지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툭하면 만나 열띤 토론을 벌였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다.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며 막쿱의 운영이사를 맡고 있는 김웅현은 “안정적인 주거환경에 살게 된 만큼 막쿱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동네 가까운 곳에 작업실을 구해 각자 작업을 해나가는 한편, 공용 공간인 막쿱 1층에 모여 어떻게 하면 이웃들과 소통하고 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논의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 시작한 만큼 막쿱이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1층 로비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진행된다. 사진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서울 홍익대 앞을 이르는 ‘홍대입구’는 한때 미술가와 인디 밴드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즐겨 찾게 되자 차츰 임대료가 올라가고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본래의 색깔을 잃고 말았다. 이제 예술가들은 인근의 합정동, 문래동 쪽으로 옮겨갔지만 그곳에서도 차츰 밀려나는 추세다.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비용과 그에 반비례해 나빠지는 주거 환경, 조금의 틈만 있으면 밀고 들어오는 상업시설들로 서울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지역 특유의 매력들도 사라져가는 현실이다.

누구나 인식하는 문제지만, 해결책 제시는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이다. 주거환경은 공공이 조성하되 입주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립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술인들이 결성한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은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거주 및 활동과, 그로 인한 지역사회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시가 예술인 공동체로 공공주택 조성

예술인 협동조합인 막쿱에서 1년간 운영이사를 맡은 김웅현 이사는 “막쿱은 SH공사가 중구 만리동 2가에 공급하는 공공 임대주택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본래 만리배수지 관리자용 관사 부지였다. 서울시가 29가구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면서 ‘예술인 협동조합형 공공주택 건립계획’을 세워 2013년 6월 입주자를 모집했다. 2012년 육아를 매개로 한 가양동 협동조합 공공 주거단지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시가 조성한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이다.

특이한 것은 입주자들을 개별 모집하지 않고, 협동조합을 주도적으로 이끌 단체를 먼저 선정한 뒤 나머지 입주자들을 선정케 한 것이다.

▲막쿱에 입주한 예술가들. 사진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김 이사는 “2013년 8월경 대표 단체가 정해졌다. 응모 자격은 공동으로 한 주택에 거주할 5인 이상의 예술인이 구성한 그룹이었다. ‘우물’이라는 단체가 뽑혔고 다음 달 나머지 입주민들이 선정됐다”고 전했다.

입주민들은 대부분 저렴한 주거비용과 예술인 공동 주거지라는 점에 이끌려 모인 사람들이었다. 김 이사는 “나 자신도 그랬지만, 협동조합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서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는 의구심도 컸다”고 털어놨다.

2014년 12월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설립 신고를 마쳤다. 김 이사는 “입주민 선정부터 협동조합 설립 신고까지 1년 반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 주택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입주민들은 설계에 참견했고, 시공 과정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입주민인 예술가들의 요구사항들도 반영됐다. 협동조합을 위한 교육도 진행됐다.

“협동조합 하니 민주주의 배우네” 

서울시는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설립되도록 도왔다. 각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상담, 협동조합 설립 지원을 위한 인력도 배치했다. 서울시 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에 요청해 별도의 ‘예비조합 밀착지원 서비스’도 제공받았다.

▲막쿱에서 진행된 연극의 관람객들. 많은 지역 주민이 함께했다. 사진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김 이사는 “주택의 소비자이면서 공용 공간을 운영하는 사업자의 복잡한 성격을 지닌 탓에 조합원들이 이에 대한 이해를 갖고 운영 주체가 되기까지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단계마다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 지원을 받아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막쿱은 초기 입주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협동조합 사례에 관한 영상자료 시청, 협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강좌, 예술인 마을 구상을 위한 워크숍 등이었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 탐방을 통해 공동육아, 마을카페와 식당, 대안학교 등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입주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은 조합원 간의 회의였다. 김 이사는 “협동조합 운영이 민주주의의 축소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결정 하나를 하기 위해 많은 회의를 거듭해야 했다”고 말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도 민주주의가 낯설고 힘들었다”거나 “어릴 때부터 토론이나 토의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의견을 모아 무언가 결정하는 게 어려웠다” “회의가 끝이 보이지 않아 지칠 때도 있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가 다른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지기도 했고, 잦은 모임에 불만을 표시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대부분 조직 생활이나 협업보다는 각자 자신의 작업을 해온 예술인들이라 더 어렵게 느끼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고 김 이사는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운영의 틀이 잡혀 갔다.

지역 주민과의 교류 강화할 각종 행사들

막쿱은 4~5층짜리 회색 건물 3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1인 가구, 2인 가구 등 가족 수를 고려해 평수도 다양하다. 곳곳에 조각이나 그림이 전시돼 있고, 바로 앞 공원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도록 정겨운 놀이터도 마련됐다. 

1층 로비는 막쿱 입주민들이 상시 이용하도록 개방돼 있고, 공용 냉장고도 있다. 옥상의 공용 텃밭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김 이사는 “옥상에 화분을 놓고 상추, 허브 등 여러 작물을 심어 서로 나누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공동으로 대청소를 한 뒤 음식을 함께 해먹으며 이웃 간 정을 나눈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지역 주민과 꾸준히 교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진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지난 5월 막쿱은 예술인 공동체답게 출범식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렀다. 건물 곳곳에서 성악가들이 공연을 했고, 행위예술가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역 주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어린이 미술 강좌, 성인 강좌 등도 이어졌다.

김 이사는 “막쿱은 기본적으로 공동주택 운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이기는 하지만,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사업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실 이는 입주자 선정의 조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건축,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예술가들이 조합원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주거공간 넘어 함께하는 문화공동체로”

사실 막쿱은 호화로운 데라곤 없는 공공 임대주택이다. 단지 예술가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뤘다는 내용이 화려하다. 그러나 간혹 다른 예술가들에게 “막쿱 입주자들은 부르주아 예술가”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만큼 보통 예술가들의 주거 환경이 좋지 않고, 안정된 주거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 덕분인지 첫 입주자 선정 이래, 막쿱에서 중도 탈퇴한 인원은 두 세대에 불과하다. 앞서 조성된 가양동 육아 협동조합이 공동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긴 준비 과정과 의견 차이로 과반수의 조합원이 교체된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김 이사는 “비슷한 조건의 주택이 있다고 해도 막쿱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합원들이 많다. 이렇게 형성된 유대감과 신뢰는 앞으로 공동 주거나 문화예술 사업을 위한 협동조합 운영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협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경험한 문제들도 적지 않다. 김 이사는 “입주 자격으로, 다른 임대주택과 비슷한 자산이나 소득 수준의 제한을 둔 것은 예술인 공동체에는 맞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임대주택이 공공 자산인 만큼 자격 제한이 없을 수는 없지만, 조성 목적에 따라 입주 자격을 차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또 거주 기간을 2년마다 갱신하도록 한 점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2년이라는 기간 제한이 입주자로 하여금 ‘내 집’이라는 생각보다 ‘임시 거주지’로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건물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이는 실제로 건축 과정에 반영됐다. 사진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실제 협동조합 운영이 힘든 점도 있다. 협동조합에 요구되는 세무, 회계 업무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협동조합이란 법인을 유지하고 공간을 운영해야 하니 필요한 사항이라 해도 모든 협동조합이 이를 내부 역량으로 해결하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고 했다. 일례로 일본에선 특정 비영리단체(NPO)가 여러 주택의 관리를 대행해주는 등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해 놨다.

입주한 지 얼마 안 됐으므로 더 많은 일들이 앞으로 생길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협동조합 차원에서 관리 시스템 만들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김 이사가 말하는 이유다. 

여러 사업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1층 공용 공간을 이용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들이다. 조합원들이 각자 재능과 전공을 살려 주민을 위한 열린 강좌들을 수시로 열 계획도 갖고 있다.

막쿱은 지난 2013년 SH공사와 서울시가 예술가를 위한 집단 주거 공간을 구상한 지 2년 만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됐다. 향후 막쿱에 모인 예술가들이 어떻게 뜻을 모아 ‘예술 같은’ 공동체를 유지해 갈지, 만리동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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